미국이 손 놓은 토륨 원자로 등에 막대한 투자, 2030년까지 원전 110기 가동

중국의 ‘원전굴기’…4세대 기술 넘본다
얼마 전 ‘축적의 시간’이라는 책이 한창 화제를 모았다. 이 책은 한국의 공학 연구·개발의 최전선에 있는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짜여 있다. 그 속에서 이들 각 분야의 교수들은 현장에서 느껴지는 한국의 심각한 위기를 직설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그러면서 단순히 개개의 산업 및 학문 분야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미래는 과연 있는가’라는 진지한 의문을 떠올리게 만들고 있다. 그 경고가 어찌나 무거운지, 집권 여당 대표도 추석 연휴를 앞둔 최고위원들에게 일독을 권하며 한 권씩 나눠줬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심각한 위기의 진원지 중 가장 중요한 곳은 역시 중국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중국을 단순한 ‘생산 공장’ 또는 ‘짝퉁 천국’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미 중국은 그간 쌓아 올린 노하우와 수많은 과학기술 인력, 막대한 자금, 느슨한 규제를 이용해 ‘혁신 공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양적 우위가 질적 우위로 이어지는 이른바 양질 전환의 선순환에 들어서며 세계를 선도하는 성과까지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이제는 선진국에서 경제성과 규제, 여론의 반발로 빛을 보지 못한 기술까지 중국의 손에서 재탄생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가 차세대 원자로다.

국산화·차세대 투자 ‘투 트랙 전략’
알다시피 동일본 대지진으로 촉발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원전) 사고는 원자력 르네상스에 치명타를 입혔다. 2000년대만 해도 원자력 에너지는 인류의 탄소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혀 왔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주요 선진국에서는 가급적 빨리 퇴출시켜야 할 에너지원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같은 거대 에너지 소비 국가로서는 원자력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금도 중국의 어마어마한 석탄 소비로 국내 대기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듯이 화석연료 의존에 따른 각종 부작용을 감당하려면 원자력 이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중국에서는 2016년부터 시작되는 제13차 5개년 계획 기간에도 매년 6~8기의 원전을 착공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2030년에는 총 110기 이상의 원전을 가동하는 세계 최대의 원자력 대국으로 올라선다는 방침을 굳혔다.
이 장대한 계획 속에서 중국은 전형적인 투 트랙 접근법을 쓰고 있다. 한쪽에서는 입증된 기술을 빠르게 추격, 국산화하는 동시에 미래 신개념 기술의 선도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먼저 중국은 이미 20개 이상의 원전을 건설하면서 현재 보편화된 경수로 기술을 습득, 발전시켜 왔다. 프랑스의 2(+)세대 원전 기술을 들여와 제작해 보면서 기술 국산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그 결과 최근에는 3세대 원전 기술 국산화해 성공해 1000MW급 ‘화룽 1호(ACPR-1000)’ 건설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중국은 원전 선진국들이 한창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4세대 원전 기술에도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4세대 기술은 현재 경수로(3세대) 기술에서 피할 수 없는 다량의 방사능 폐기물 문제를 크게 완화하면서도 건설비를 낮추고 안전성을 높인 신개념 원자로 기술을 통틀어 일컫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는 방식은 소듐(나트륨) 냉각 고속원자로(SFR)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해하려면 ‘고속’과 ‘소듐 냉각’이라는 두 부분을 알아야 한다. 우선 ‘고속’원자로는 말 그대로 기존보다 훨씬 빠른(에너지가 큰) 중성자를 이용해 우라늄이 반응한 이후 남는 고준위 폐기물까지 모두 핵분열 반응을 시켜 버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치명적인 방사능을 가진 폐기물의 양을 크게 줄이면서도 장기간 가동할 수 있다. 그다음 ‘소듐 냉각’은 원자로를 식히고 열을 전달하는데 기존의 물(경수) 대신 액체 상태의 소듐(나트륨)을 쓴다는 뜻이다. 소듐과 같은 금속은 끓는점이 높아 많은 열을 받더라도 그대로 압력이 낮은 액체 상태가 유지된다. 열을 받으면 기체(증기)가 돼 압력이 크게 올라가는 물에 비해 안전성이 크게 높아지게 된다.

우라늄 대신 토륨을 원료로 사용
한 가지 치명적인 결점은 냉각재로 쓰이는 소듐은 반응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소듐은 물과 만나면 폭발할 정도다. 이 때문에 소듐을 특수 용기 안에 완벽하게 밀폐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도 4세대 원전 기술 중에는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아 한국원자력연구원을 비롯한 세계 주요 원자력 연구 기관에서 큰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저력은 이처럼 유망한 후보 이외의 기술에도 넓게 발을 뻗고 있다는 점에 있다. 소듐 냉각 고속원자로보다는 관심이 떨어지지만 일부 원자력 과학기술자들이 줄기차게 가능성을 역설하는 기술 가운데는 토륨 용융염 원자로(TMSR)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흔히 원자력 하면 우라늄을 떠올릴 정도로, 현재 원자력발전 기술은 거의 전부 우라늄을 기본 원료로 하고 있다(플루토늄도 우라늄에 중성자를 흡수시켜 만든 인공원소여서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원자력 원료로 우라늄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바로 토륨을 이용할 수 있다. 토륨에 중성자를 쏘아 주면 방사성 붕괴(베타 붕괴) 과정을 거쳐 핵분열이 가능한 우라늄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다만 토륨을 그대로 연료로 이용하기에는 큰 약점이 있었다. 우라늄은 일단 원자 하나에 중성자를 쏘아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더 많은 중성자가 튀어나와 주변 우라늄 원자도 연쇄적으로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토륨은 우라늄으로 바꿔 주는 과정에서 중성자가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주변 원자들로 반응이 저절로 옮겨가지 않는다. 반응을 이어 가려면 계속 중성자를 집어넣어 줘야 한다. 말하자면 우라늄은 잘 마른 짚처럼 한 번 살짝 불을 지펴 주면 주위로 옮겨 붙어 활활 잘 타는 데 비해 토륨은 젖은 짚처럼 계속 불씨를 갖다 대고 있어야 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잘 타는 마른 짚이 있는데 젖은 짚을 쓸 이유가 없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이 점이 안정성 면에서 큰 장점이 된다. 바짝 마른 짚에 불을 잘못 붙이면 걷잡을 수 없이 불이 번져 아궁이는 물론 집이 홀랑 탈 수 있다. 이게 바로 원전 사고다. 반면 젖은 짚은 한눈을 팔면 금세 꺼져 버리니 아주 안전하다. 이 때문에 원전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요즘, 토륨이 주목 받는 것이다.
중국의 ‘원전굴기’…4세대 기술 넘본다
인해전술식 연구·개발 나서
그리고 이러한 토륨의 안전성은 용융염 원자로 기술과 접목했을 때 더욱 잘 활용될 수 있다. 염(salt)은 소금(염화나트륨)처럼 산의 음이온과 염기의 양이온이 만나 생성된 물질을 말하는데, 용융염은 이런 염을 가열해 녹여 액체 상태로 만든 것이다. 용융염 원자로는 이런 액체 상태의 염을 냉각제로 이용한다. 이 역시 소듐 냉각로의 소듐처럼 온도가 올라가도 압력이 높아지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고 효율도 우수한 원자로를 만들 수 있다. 이 기술이 더 좋은 점은 아예 핵연료로 쓰이는 토륨과 우라늄 화합물을 이 용융염에 같이 녹여 액체연료로 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면 원자로의 구조가 매우 간단해져 중소 규모의 원자력발전소도 쉽게 만들 수 있게 된다.
이 기술은 원래 1960~1970년대 미국의 오크리지 국립 연구소에서 활발히 연구되던 것이고 이미 당시 많은 가능성이 실증된 바 있다. 하지만 1970년대 미국이 정책적으로 원자력 연구를 구조조정하고 경수로 기술에 집중하면서 오랫동안 큰 진전을 보지 못한 비운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렇게 미국이 손을 놓아 버린 사이에 중국은 이 기술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상당한 노력을 퍼붓고 있다. 특히 이 연구는 중국과학원 산하 상하이응용물리연구소(SINAP)에서 맹렬히 이뤄지고 있다. 중국은 2020년까지 고체 연료를 이용한 10MW짜리, 액체 연료를 이용한 2MW짜리 실증용 원자로를 동시에 건설하고 이어 2030년 상업용 토륨 용융염 원자로를 만든다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만 700명이나 되는 막대한 인력이 투입되고 있는 인해전술식 연구·개발이 지속된다면 중국이 이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점점 고조되고 있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이런 속도라면 앞으로 불과 15년 뒤 중국은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가장 앞서 있는 4세대 원전 기술 보유 국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처럼 중국은 미래 인류 생존 및 번영에 필요한 공학기술의 상당 부분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 나가고 있다.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 기술 국가들이 여러 이유로 방치하던 분야까지 과감하게 진출해 기술 수준을 빠르게 따라잡고, 아예 한 발 더 나아가 실증 및 상용화를 선도하는 지경이다. 이러한 흐름 앞에서 우리는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을 더욱 냉철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저 중국이 서해 너머 해안가에 많은 원전을 짓고 있으니 사고가 나면 어쩌느냐는 조소 섞인 우려만 가득하다. 하지만 진정 걱정해야 할 것은 그런 수많은 원전을 지으며 쌓아 올리는 강력한 기술 경쟁력이다. 그런 원전이 모두 완공될 때쯤이면 기술력과 자본력으로 무장한 중국 원전이 전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더 나아가 한국도 그걸 수입해 써야 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중국의 꿈이 커질수록 우리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야 할 가을밤이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