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다했다’회의론 번번이 깨져, 실리콘 대체 신소재로 ‘한계’ 돌파 시동

‘무어의 법칙’ 50주년…혁신은 계속된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 인텔을 설립한 고든 무어는 페어차일드에서 근무하던 1965년 일렉트로닉스 매거진에 시간이 지날수록 반도체 회로에 더욱 많은 부품을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반도체 기술이 향상될수록 부품을 매우 작게 만들어 하나의 칩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대략 1년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씩 증가하고 제조비용은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무어의 기고문을 본 카버 미드 캘리포니아 공과대 교수는 이와 같은 반도체의 성능과 가격 간 상관관계를 그의 이름을 따 ‘무어의 법칙’이라고 이름 붙였다. 무어는 당시 집적도가 1년에 2배씩 증가한다고 말했지만 무어의 법칙이 등장하면서 그 기간이 18개월로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1975년 그는 2년마다 집적도가 2배가 될 것이라고 정정했고 이후 무어의 법칙은 2년마다 반도체의 성능이 2배씩 증가하는 것으로 정의됐다.

놀라운 설명력…다른 분야에도 적용
당시 많은 반도체 전문가들은 무어의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도체의 성능이 무어의 말처럼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만일 무어의 법칙이 실현된다면 불과 수십 년 후에는 거대한 컴퓨터와 맞먹는 연산 능력을 매우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돼야 하는데 이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무어의 법칙은 정확하게 실현됐다. 반도체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반면 크기는 빠르게 작아지면서 거의 모든 기기에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강력한 수준의 반도체가 탑재됐다. 반도체 기업들은 무어의 법칙을 증명하듯 작지만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반도체를 경쟁적으로 출시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시장은 물론 정보기술(IT)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무어의 법칙이 가져 온 변화는 실로 놀라웠다. 무어의 법칙이 등장했던 당시에는 집이나 자동차보다 비쌌기 때문에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컴퓨터를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휴대전화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이제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호주머니에 간편하게 휴대하고 다닐 수 있게 됐고 최근에는 거의 모든 기기에 고성능 컴퓨터가 들어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됐다.
게다가 무어의 법칙은 단순히 반도체 기술 혁신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무어의 법칙이 수십 년에 걸쳐 꾸준히 실현되면서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영역에 걸쳐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거의 모든 활동에서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IT를 사용하게 됐고 이에 따라 IT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기업 경영과 국가 운영 등 다방면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게 됐다. 이 때문에 인텔은 무어의 법칙이 현실로 이뤄지면서 미국 내에서 직간접적으로 최대 11조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원래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의 발전 추세를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그 인기가 급증하자 곧 여러 영역에 응용됐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되는 데이터의 양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증하는 반면 전송을 위한 비용은 반대로 하락한다거나 혹은 DNA를 처리하는 기술 수준은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비용 수준은 낮아진다는 법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무어의 법칙과 비슷한 이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무어의 법칙은 세상에 모습을 보인 지 올해 50년을 맞았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무어의 법칙을 재조명하고 그 의의를 기념하기 위한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어의 법칙이 더 이상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더 이상 무어의 법칙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 혁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무어의 법칙이 더 이상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은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그때마다 반도체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 혁신을 통해 무어의 법칙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일련의 주장들은 향후 무어의 법칙이 가야 할 길이 더욱 험난해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무어의 법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반도체에 그리는 회로의 폭을 더욱 작게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빠르게 줄어들었던 회로 폭은 현재 14나노미터에서 주춤하고 있다. 게다가 최신 반도체를 설계 및 제조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에 투입되는 비용이 이전보다 늘었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되고 있다. 반도체를 더욱 작게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첨단 기술 및 공정이 포함되므로 비용이 오히려 증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반도체의 집적 수준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설계나 공정의 미세화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개발비용은 오히려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기업들이 무어의 법칙 실현을 통해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술 혁신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고 결국 무어의 법칙도 더 이상 실현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회로 폭 미세화 한계…개발비 ‘눈덩이’
특히 최근에는 반도체 기술 혁신을 주도해 온 인텔조차 무어의 법칙을 더 이상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발표회에서 캐논레이크(Cannonlake) 프로젝트로 추진돼 온 10나노미터 반도체 양산이 2017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4나노미터 반도체가 2014년 출시된 점을 감안하면 무어의 법칙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소 2년 후인 2016년에 출시돼야 하지만 이를 지키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처럼 무어의 법칙이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견해가 줄을 잇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어의 법칙을 이어 가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여러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설계 및 공정 기술을 적용해 고성능의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위기론과 달리 무어의 법칙이 향후에도 그 영향력을 꾸준히 이어 갈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편 현재의 실리콘 대신 새로운 소재로 반도체 웨이퍼를 만들어 무어의 법칙을 이어 가려는 시도도 있다. 발열과 성능 저하 등의 문제로 실리콘으로는 더 이상 미세한 회로 폭을 가진 반도체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기존과 다른 소재를 적용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IBM은 지난 7월 실리콘과 게르마늄의 합금을 기반으로 약 7나노미터의 회로 폭을 가진 반도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IBM이 사용한 실리콘과 게르마늄 합금은 전자를 더욱 빠르게 이동시키고 발열도 현저히 낮기 때문에 기존보다 더욱 미세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전 세계 여러 대학 및 기업들은 얇고 균일하게 가공할 수 있으면서도 뛰어난 전도성을 가진 그래핀을 이용해 기존보다 우수한 성능의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따라서 만일 이러한 기술들이 성공적으로 상용화될 수 있다면 무어의 법칙은 향후 수십 년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향후에도 반도체 기술의 발전과 그 파급효과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과연 무어의 법칙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가 학계 및 산업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무어의 법칙 특성상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엄청난 투자와 기술 혁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위기론은 앞으로도 꾸준히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 걸쳐 더욱 우수한 성능의 반도체 기술 혁신을 요구하는 한 무어의 법칙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꾸준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