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유치가 관건, HDC신라·현대백·신세계 유리 의견 많아
서울 시내 면세점을 차지하기 위한 국내 기업들의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됐다. 지난 6월 1일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권 신청을 마감하는 이날 총 21곳이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중 대기업 몫인 면세점 사업권 카드는 두 장. 여기에 유통 계열사를 갖춘 대기업이 대거 뛰어들었다. HDC신라면세점(호텔신라·현대산업개발 합작법인)·호텔롯데·신세계DF·현대DF(현대백화점컨소시엄)·SK네트웍스·한화갤러리아·이랜드그룹 등 총 7곳이다. 경쟁률은 3.5 대 1이다. 면세점 신규 사업권 신청 전부터 달아오른 경쟁은 마감 이후 사업 계획서의 내용이 하나둘씩 밝혀지며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오너들이 직접 나서 총력전을 펼치는 ‘면세점 입찰 대전’, 그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이들이 가장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부문은 바로 ‘입지’다. 가장 큰 지지를 얻는 곳은 HDC신라면세점이다. 시내에 마땅한 부지를 찾지 못하던 호텔신라의 이부진 사장과 올 초 용산 아이파크몰에 면세점을 세운다는 도전장을 던졌던 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이 손을 잡았다. HDC신라면세점이 들어설 용산 아이파크몰은 KTX·1호선·경춘선 등이 연결되는 역사 내에 있다. 이러한 철도 교통망을 활용해 서울에서 지방까지 뻗어나가는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면세점 면적은 2만7400㎡로, 7곳 중 최대다. 현재 시내 면세점 사업장 중 가장 큰 롯데면세점 소공점(1만3236㎡)을 넘어섰다.
이에 뒤질세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명품관(본관)을 면세점 부지로 낙점했다. 면적은 1만8180㎡다. 정 부회장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명동과 면세점·남대문시장·남산을 잇는 관광 코스를 조성할 방침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면세점 후보지로 여의도 63스퀘어를 낙점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여의도 지역으로 유치해 63스퀘어를 쇼핑·관광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63스퀘어 내 면세점 규모는 9900㎡다. 호텔롯데와 SK네트웍스는 패션의 중심지인 동대문에 승부수를 던졌다. 각 롯데피트인(8387㎡)·케레스타(1만5180㎡)에 면세점을 유치해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동대문 상권을 되살리고 관광 활성화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입지’ 전쟁 마치고 2라운드 돌입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유일하게 강남에 승부수를 던졌다.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점 내 1만2000㎡에 면세점을 낸다는 계획이다. 이곳은 코엑스 단지와 연결돼 있어 관광 인프라가 뛰어나다. 막판까지 고심하던 이랜드그룹은 홍대 상권을 택했다. 최근 서울 최고의 관광지로 급부상한 홍대 지역에 들어설 면세점 면적은 1만4743㎡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는 “대기업의 경영 능력이나 운영 은력은 모두 뛰어나기 때문에 입지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상생 측면도 중요하므로 지역사회와 어떻게 어울릴지 좋은 전략을 내놓은 기업이 선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치열한 ‘입지 전쟁’이 끝나자 2라운드 막이 올랐다. 이번엔 ‘사회 환원’이다. 지난 6월 1일 입찰 마감 이후 급작스럽게 이 부문에서 경쟁이 불붙은 이유는 ‘밀봉’된 사업 계획 내용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패를 보인 곳은 현대백화점그룹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확보하면 면세점 영업이익의 20% 이상을 매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기부금 비율을 액수로 환산하면 면세점 사업 기간인 5년 동안 약 300억 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상장 기업이 영업이익의 1%를 기부금 형식으로 내놓는 것과 비교하면 현대백화점그룹의 20% 공약은 ‘파격적’이다. 이 같은 ‘통 큰’ 결정은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결정이었다. 이랜드그룹도 면세점 순이익의 10%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액수로 환산하면 약 493억 원 정도다.
두 곳 외에 나머지 다섯 기업들은 무리한 기부금 공약보다 그동안 해 왔던 기부 규모를 유지하면서 지역 발전을 위한 투자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부 규모는 대체로 2~5% 수준이다.
신세계DF는 기존 신세계그룹에서 해 왔던 것처럼 매출의 2.7%를 기부금으로 사회에 환원한다는 계산이다. 또한 남대문시장 환경 개선, 백화점과 면세점을 연계한 시장 우수 상품 발굴 등의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한화갤러리아는 지난해 집행한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수준인 5%를 유지하는 한편 지역 상권과 주민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실질적인 사회 공헌 활동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SK네트웍스는 영업이익의 2~4%를 기부금 형식으로 납부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동대문 상권 개발을 위해 향후 5년 동안 2000억~3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HDC신라면세점은 시내 면세점 구축을 위해 1차 연도에 총 3500억 원을 투입해 이 중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200억~300억 원을 사용할 계획이다.
이들 기업이 이와 같은 계획을 알리며 홍보전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해당 부문이 당락을 가를 수 있는 묘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은 경영과 운영 능력이 비슷해 그 외의 부문에서 당락이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를테면 중소기업 상생 협력과 사회 공헌도 등이다.
관세청이 공개한 면세 사업권 심사 평가표를 보면 ▷특허보세구역 관리 역량(250점) ▷운영인의 경영 능력(300점) ▷관광 인프라 등 주변 환경 요소(150점) ▷중소기업 제품 판매 실적 등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공헌도(150점)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및 상생 협력 노력 정도(150점) 등이다.
면세점 입찰 대전의 3라운드는 ‘명품 브랜드 사수’다. 업계에서는 명품 브랜드의 입점이 곧 ‘프리미엄 면세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만큼 글로벌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면세 특허 심사 기준인 ‘면세점 관리 역량’과 ‘경영 능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 매장은 고객 유입 효과가 높고 이에 따라 파생되는 부가가치가 높아져 면세점 상품 개발(MD) 구성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명품 브랜드 유치에 실패하면 사업권을 따내도 존폐의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진은 2003년, AK는 2010년 이런 이유로 경영 압박에 시달리다가 면세점 허가를 반납했다. 201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정부는 12개의 중소기업에 허가를 내줬지만 이 중 4곳이 허가권을 반납했고 1곳은 관세청으로부터 취소당했다. 남은 중소 면세점들은 재정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현대백화점그룹이 현대DF의 브랜드 유치 현황을 밝혔다. 현대DF 측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 최고의 프리미엄 면세점을 만들기 위해 이미 루이비통·구찌 등의 명품 브랜드를 비롯해 80여 개 해외 브랜드의 입점 의향서를 받은 상태”라고 전했다.
한 면세점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한 관계자에 따르면 “루이비통이나 샤넬 등의 톱 브랜드가 입점되면 그 이후 다른 브랜드의 입점이 수월해진다”며 “현대백화점이 사업권을 따낸다면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어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랜드그룹은 이번 경쟁에서 ‘협업’ 전략을 썼다. 세계 최대 면세점 기업인 듀프리와 업무 협약을 맺고 듀프리로부터 명품 제품과 화장품을 공급받는다. 나머지 다섯 기업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MD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이 가운데 경쟁의 불씨를 댕길 이슈가 다가오고 있다. ‘루이비통’ 입점을 성사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느냐, 마느냐의 순간이다.
“루이비통을 사수하라”
업계에 따르면 루이비통의 모기업인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6월 중순 한국을 찾는 것으로 알려져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LVMH는 루이비통·크리스찬디올·펜디 등 60여 개 브랜드를 거느린 회사다.
6월 중순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여는 디올 부티크 오픈 행사 참석 차 방한하는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있다. 오는 7월로 예정된 면세점 신규 사업자 발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LVMH의 명품 브랜드 입점을 원하는 면세점 사업자로서는 아르노 회장과의 돈독한 ‘관계 맺기’에 성공해야 할 미션과도 같다.
아르노 회장은 방한 때마다 국내 주요 면세점과 백화점 매장을 둘러보는가 하면 유통 업계 인사들을 만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백화점과 면세점 매장 입점이 성사된 사례도 있다.
실제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2010년 3월 한국을 찾은 아르노 회장을 만나기 위해 직접 인천공항으로 달려갔고 LVMH의 대표 브랜드 ‘루이비통’을 인천공항 신라면세점에 입점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2012년, 2013년 그의 방한 때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이부진 사장 등의 유통 업계 총수들이 잇따라 면담했다. 이 때문에 이번 방한 때 역시 아르노 회장이 누구와 면담을 하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은 명품 브랜드 입점이 매우 중요한 만큼 이번 아르노 회장 방문 시 재계 총수들이 총출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현재 전국 면세점 중 ‘루이비통’이 입점해 있는 곳은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뿐이다. 면세점 사업권 쟁탈전이 과열되면서 일각에서는 우려도 제기한다. 면세점 사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수인데다 백화점과 달리 상품을 사입(직접 구매)해야 하는 만큼 운영 노하우와 함께 재고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면세점 한 곳을 오픈하려면 임차료·사입비 등에 2000억 원 정도의 투자비가 들고 5년 안에 원금 회수가 어렵다”며 “만약 5년 후 재입찰에서 탈락한다면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유커(중국인 관광객)에 의해 성장한 면세점 성장세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면세점 최대 고객인 유커가 일본 등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영수 롯데면세점 전 대표는 “면세점 사업은 초반 자본투자도 많이 들어가고 재고 부담도 안아야 하는 등 운영이 쉽지 않기 때문에 철저한 역량 검증이 필요하다”면서 “기본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면세점이 돼야 하며 사업 구조를 면세점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트래블 리테일’ 사업으로 접근해 면세점·기념품·식당·크루즈 등 다양한 관광 분야로 진영을 갖추고 경쟁력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돋보기
면세점 최강 롯데가 0표 받은 이유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전문가 17인(증권사 애널리스트 10명, 유통 업계 전문가 4명, 학계 3인)에게 물었다. 이들에게 7기업 중 가장 유력한 후보 2곳과 변수를 일으킬 다크호스 1곳을 선정하게 했다.
그 결과 가장 유력한 후보는 ‘HDC신라면세점’이었다. 총 7명이 손을 들어 최다 득표를 얻었다. 뒤를 이어 현대DF가 4표, 신세계DF가 2표를 획득했다. 기존 사업자와 신규 사업자 간의 양보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다크호스 선정에서는 한화갤러리아와 이랜드면세점이 각 3표를 얻어 유력 후보로 꼽혔다. SK네트웍스는 1표를 얻었다. 롯데면세점은 추천 표가 없었고 무응답자도 6명이 나왔다.
특이한 점은 유통 담당 애널리스트 대부분이 신라에 손을 들어준 반면 업계 전문가 및 학계에서는 신라와 롯데의 성공 확률을 부정적으로 봤다는 점이다. 이들이 롯데와 신라의 성공률을 낮게 본 것은 애초 관세청이 지난해부터 5년마다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경쟁 입찰에 부치기로 정책을 바꾼 것이 대기업의 독과점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국내 면세점 시장 80%를 차지하는 롯데와 신라가 다시 사업권을 따게 된다면 다시금 독과점 이슈로 후폭풍이 크게 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결국 ‘경험’은 양날의 검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가 다수의 지지를 받은 것은 단연 ‘운영 능력’과 ‘입지’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이들의 사업 운영 능력과 입지적 조건을 들어 다수의 응답자가 신라를 꼽았다. 물론 이들 역시 신라의 독과점을 약점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신라 뒤를 이은 현대DF는 면세점 사업에 처음 진출한다. 하지만 그간 백화점을 운영해 온 ‘소싱 능력’과 관광객 유치가 활발할 것으로 보이는 ‘입지’를 강점으로 꼽았다. 입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현대DF가 입점 후보지로 꼽은 코엑스는 애경그룹의 AK부터 롯데면세점까지 운영 성적이 좋지 않아 지리적 강점에도 불구하고 큰 수익이 기대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현대DF의 중소기업 컨소시엄 부문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관련 사업자가 많아 운영 및 이익 배분에 취약점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현대백화점이 면세점 경영 능력이 없는 약점을 면세점 운영 중소기업 사업자와 손잡으며 해소했다는 분석이다. 신세계DF를 유력 후보로 뽑은 이들 역시 신세계의 ‘소싱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또한 신세계 본점을 면세점으로 바꾸겠다는 파격 전략에 오너의 강한 의지가 반영돼 있어 이 점 역시 성공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세계의 약점으로는 ‘주차 문제 미해결’을 지적했다. 설문에 참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애초 신청자를 모집할 때만 해도 ‘신세계는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시각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다크호스의 유력 후보는 이랜드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다. 가장 늦게 대결 진영에 뛰어든 이랜드면세점의 ‘외국 기업과의 파트너십’이 전문가들의 마음을 샀다. 경험이 없는 이랜드로서 듀프리와 완다그룹과의 협업은 최선의 전략이라는 평이다. 중국 최대 여행사 완다그룹은 연간 100만 명 이상의 중국 VIP 고객 이랜드 면세점에 보내기로 협약했다.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경험적 측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이 자체로는 의미가 있지만 경험이 없어 아웃소싱의 주도권마저 없다면 운영에 어려움을 겪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유입되는 홍대 인근에 면세점 후보지를 선정한 것도 최종 평가에 득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화갤러리아를 추천한 전문가들은 한화의 정량적 전략보다 정성적 관점에서 가능성을 보고 있다. 세간에 돌고 있는 한화와 정부의 유착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한화갤러리아가 이미 제주도 면세점 사업 운영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영 능력과 사업성 그리고 여의도라는 입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SK네트웍스가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들은 현재 SK네트웍스가 운영하는 워커힐면세점의 MD 구성과 저조한 운영 실적을 지적했다. 면세점 입지로 선정한 동대문 역시 중소기업 면세점에 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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