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Z세대 시위/사진=연합뉴스
불가리아 Z세대 시위/사진=연합뉴스
유럽에서 Z세대 반정부 시위로 지도자가 사임하는 첫 사례가 나왔다. 불가리아 총리가 11일(현지 시각)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AFP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로센 젤랴스코프 불가리아 총리는 여당 지도자 회의 후 “정부는 오늘부로 사임한다”고 밝혔다. 그는 “연령, 인종,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사임을 지지하고 있다”며 “이러한 시민의 열정을 지지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표는 야당이 제출한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 표결을 앞두고 나왔다.

시위는 2026년도 예산안 초안을 계기로 촉발됐다. 정부가 사회보장 분담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내놓자, 시민들은 이를 “만연한 부패를 은폐하려는 세금 인상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정부는 예산안을 철회했지만, 분노는 누그러지지 않고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했다.

내년 1월 1일 예정된 유로화 도입 이후의 물가 상승 가능성도 민심을 악화시켰다. 불가리아는 2007년 유럽연합(EU)에 가입했지만, 높은 인플레이션 탓에 유로존 가입을 연기해왔다.

이번 시위는 Z세대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조직된 젊은 시위대는 레이저를 이용해 국회의사당 외벽에 ‘사임하라’, ‘마피아 물러나라’ 등의 문구를 투사했고, ‘Z세대가 온다’ 같은 문구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인플루언서와 배우들도 참여하며 열기는 더욱 고조됐다.

상점 종업원 게르가나 겔코바(24)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더는 만연한 부패를 용납할 수 없어 시위에 참여했다”며 “친구들 대부분 불가리아를 떠났고 돌아올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도브로미르 옐리아즈코프 마켓 링크스 사회학 연구소 소장은 “불가리아 사회가 현 정부의 통치 모델에 대해 매우 광범위한 반대 여론을 형성한 상황”이라며 “정부와 의회에 대한 신뢰도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 근접해 있다는 것은 심각한 정치적, 제도적 위기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라고 분석했다.

불가리아는 국제퉁명성기구(TI)의 부패인식 지수에서 최하위권에 속한다. 2020년 보이코 보리소프 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부패 시위 이후 7차례의 조기 총선을 치른 바 있다. 보리소프가 이끄는 GERB당이 지난해 총선 1위로 지난 1월 현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한편 정부와 기득권에 대한 Z세대의 분노는 불가리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수개월간 네팔, 마다가스카르, 모로코, 멕시코, 탄자니아 등에서도 Z세대가 부패와 불평등에 맞선 반정부 시위를 진행했으며, 이는 일부 지도자들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