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금융의 성공 방정식

이제 농협금융지주회사가 출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순수한 토종 자본이자 점포 수, 자산 규모 등의 측면에서 사실상 국내 최대 금융지주회사의 출범을 앞두고 벌써부터 금융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농협 내부의 기대와 설렘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농협이 걸어왔던 과거 50년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농협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넘버5' 농협금융 생존 해법은] 전략적인 ‘위치 재설정’ 필요하다
우선 농협은 문자 그대로 협동조합이다. 신·경 분리를 통해 굴지의 금융지주회사가 탄생한다고 하더라도 협동조합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 조합원의 자조·자립을 위해 존립하고 주인인 조합원과 단위조합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만큼 불특정 다수로 구성된 시장을 상대로 무한정 이윤을 추구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아름답지만 힘없는’ 조합주의로 무장한 채 ‘추하지만 강한’ 자본주의와 싸워야 하는 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경(신용·경제) 분리 이후 경제 사업이 대형 민간 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본금을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경제 사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용 사업 역시 더없이 추하고도 강한 금융자본주의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고 엄격하기 이를 데 없는 금융 규제의 벽을 넘어야 하는 만큼 경제 사업보다 더 많은 자본금이 필요할 것이다. 협동조합의 소유·지배구조를 유지하면서 거액의 자본금을 추가로 조달하는 일은 농협이 당면한 가장 어려우면서도 시급한 과제다.

협동조합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농협의 또 다른 과제는 업무 영역에 관한 것이다. 농협은 상업성을 띠는 수익 센터로서 신용 사업과 경제 사업을 별도의 지주회사를 통해 겸업하는 동시에 공공성을 띠는 비용 센터로서 지도 사업도 영위해야 한다.

금융시장 강자로의 부상은 순탄할 듯

사실 신·경 분리가 오랜 기간 쟁점이 돼 왔던 배경에는 경제 사업이 수익 센터임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내지 못하고 지도 사업이 본연의 목적인 농업과 농민을 위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비용만 소모해 왔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경 분리의 기본 취지도 신용 사업의 안정성, 경제 사업의 경쟁력, 지도 사업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농업과 농민을 발전시키는데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복합적 취지가 실현되지 못하면 농협금융지주회사는 초석이 마르기도 전에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될 것이 확실하다.

문제는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신·경 분리 외에 공·상 분리(즉, 지도 사업을 통해 추진되는 농업정책금융의 분리)라는 가려진 숙제도 함께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부적 과제를 풀고 나면 신용 사업 본연의 문제가 남는다. 그런데 농협금융지주회사가 금융시장의 강자로 떠오르는 건 의외로 순탄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판단은 이용 편리성을 중시하는 금융 소비자의 선호를 감안할 때 농협이 지점 및 영업점, 단위조합 및 경제 사업 자회사 등을 포함한 네트워크 측면에서 누구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를 바탕으로 소매금융 업무를 확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농협은 고객과의 장기적인 거래를 통해 얻어지는 다양한 인적·물적 정보를 종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특유의 ‘감’을 중소 및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관계 금융을 강화하는데 적극 활용해 도매금융 영역을 개척하는 데에도 비교 우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들 네트워크 및 관계 금융상의 이점은 카드 사업 및 보험업 등의 겸업 기반을 확대하는 주요 원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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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성·성장성·수익성 등 취약

하지만 기존의 농협은 금융 소비자의 수익성 선호를 충족시키기 위한 상품 개발 및 운용 능력, 비합리적·불건전 여·수신 관행을 혁신하기 위한 심사 및 내부 통제 능력, 시장 원칙에 입각한 상시 구조조정 업무를 뒷받침할 신용 정보 풀링·공유 시스템 구축 및 통합 위험 관리능력 등의 측면에서 여전히 개선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영업 행태 및 기업 문화 측면에서는 국제 기준과 정합성을 제고해 나가는 한편 수익성 중시의 가치 경영을 정착해 나가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무엇보다 금융지주회사를 경영해 본 경험이 전무한 현 상황에서는 업종별 자회사의 시너지 효과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서둘러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주회사의 사업을 핵심 부문과 보조 부문으로 구분해 별도의 사업 목표를 부여하고 농협 전체의 목표와 조화를 꾀하는 일 △대내적으로 조직의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해 지주회사 차원의 인사관리 및 인재 육성을 중시하고 대외적으로는 조합원 및 준조합원, 지역주민 및 고객, 정부 간 이해 관계를 조정하는 일 △지주회사의 경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보고·승인 체계, 계수 관리, 자회사 업적 평가 및 감사·준법감시 체제를 정비하는 일 등이 있다.

농협은 비록 규모면에서는 대형 은행 그룹에 속하고 농업금융과 소매금융에도 비교 우위를 지니고 있지만 건전성 및 수익성은 전체 은행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업무의 다양성이 취약하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2009년 이후 자본 적정성은 회복했지만, 성장성을 나타내는 총자산 및 시장점유율 추이는 물론이고 수익성을 나타내는 제반 지표 역시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3대 금융지주회사가 선두권 다툼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일부 중형 은행도 대형화·겸업화를 통해 수익성과 규모의 확대를 꾀하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할 때, 그리고 이미 국내 소매금융 시장이 거의 포화 상태에 있고 농업금융 역시 향후 농협의 고유 영역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업무 범위가 한정된 농협의 전략적 포지션은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농협금융지주회사는 농협의 정체성, 업무 등과 관련된 제약 조건을 해소하면서 대형화·겸업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는 동시에 성장성·수익성·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위치 재설정이 필요한 시점에서 출범하게 된다.

농협금융지주회사가 출범하는 것은 시간문제이지만 성공하는 것은 결코 시간문제가 아니다. 지금 농협은 수많은 금융 소비자·농민·조합원의 기대와 우려를 포함한 지극한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넘버5' 농협금융 생존 해법은] 전략적인 ‘위치 재설정’ 필요하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일본 도쿄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은행법학회 부회장.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심사위원. 국민연금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 고려대 법무대학원 강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