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출신 ‘통신 CEO’의 승부수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 3사의 시장 쟁탈전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서비스와 단말기를 쏟아내며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이석채 KT 회장과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닮은꼴 최고경영자(CEO)다.둘 다 전직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이다. 한때 대한민국의 통신 정책을 지휘했던 두 CEO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통신사 수장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이동통신 단말기 시장과 유무선 복합 시장에서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석채 KT 회장과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에다 경력도 화려하다. 이 KT 회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 보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재정경제원 차관을 거쳐 1996년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미 듀크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통신프리텔 사장,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장을 거쳐 2002년 정보통신부 장관을 맡았다.
두 사람은 또 합병 회사의 CEO로 일하면서 시너지 창출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회사의 합병은 이질적인 기업 문화와 물밑으로 흐르는 알력 관계 등으로 초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회장의 KT는 아이폰·아이패드 출시 등으로 합병의 단맛을 한껏 맛봤다. 이 부회장의 LG유플러스는 스마트폰 사업에서 SK텔레콤과 KT에 밀리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과감하게 ‘탈통신’ 승부수를 던지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역전의 용사
이 회장과 이 부회장은 격동기에 회사를 맡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회장이 아이폰으로 돌파구를 찾은 반면 이 부회장은 ‘탈통신’으로 위기 탈출을 꾀하고 있다.
이 회장이 CEO로 취임한 2009년 KT는 하향세가 뚜렷했다. 이전 6년간 외형적 성장은 멈췄고 2조 원이던 연간 이익은 1조 원 수준으로 뚝 떨어져 있었다. 더욱이 KT의 주 수익원이던 유선 부문 매출이 매년 6000억 원씩 감소했다.
이 회장은 흐트러진 조직을 추스르는데 전력을 다했다. 납품 비리 관행을 잘라내기 위해 칼을 뽑아들었고,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졌던 KT와 KTF의 합병도 성사시켰다. 게다가 2009년 11월 아이폰 도입으로 스마트폰 전쟁을 야기했다.
이 회장은 지난 1월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이폰 도입에 대해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해 IT 산업의 전반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아이폰은 KT의 변화를 이끈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보다 1년 뒤인 2010년 초 LG텔레콤·LG데이콤·LG파워콤 등 LG그룹의 통신 3사가 합병한 LG유플러스 CEO로 취임했다. 출발은 산뜻하지 못했다. 통신 업계 관계자들은 “LG유플러스가 2010년 통신 시장이 스마트폰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라인업 확보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기자 간담회에서 “네트워크의 열세, 브랜드의 열세, 가입자의 열세가 악순환돼 어렵다”며 “2년 정도 어렵더라도 이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시점”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었다.
이 부회장이 취임하자마자 ‘탈통신’을 외친 것도 LG유플러스의 구조적인 열세를 ‘새로운 길’을 통해 극복하자는 차원에서다. 통신 업계는 LG유플러스가 이 부회장의 노력으로 지난해 ‘탈통신’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신대륙을 찾아서
이 회장의 핵심 사업은 역시 스마트 단말기다. 지난해 KT는 아이폰·아이패드 등 스마트 단말기 도입으로 크게 성공했다. 이동전화 고객은 지난해에만 102만4332명이 증가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600만 명을 넘어섰다. 증가율도 통신 3사 가운데 가장 높은 6.8%를 기록했다.
올해에는 스마트 홈 분야와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를 강화할 계획이다. 3G 이동통신망(WCDMA)·와이파이·와이브로 등 소위 3W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추진한다. 지난해부터 급증하고 있는 데이터 트래픽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해 4만 곳에 구축한 올레 와이파이 존을 10만 곳으로 확대한다.
이 회장이 아이폰에 이어 내놓는 카드는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각종 데이터·소프트웨어를 서버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인터넷으로 필요할 때마다 내려 받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자료를 내려 받을 수 있어 편리하다. 이 회장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을 구현했고 세계적 기업들이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밖에 KB국민은행·IBK기업은행 등 은행권과 삼성서울병원·강남세브란스병원 등과도 제휴함으로써 신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승부수는 올해도 ‘탈통신’이다. ‘탈통신’은 한마디로 기존의 통신이라는 틀을 깨면서 혁신적인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새로운 통신 장르를 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비전도 ‘비욘드 텔레콤(Beyond Telecom)’으로 정했다.
이 부회장은 탈통신 서비스를 900만 기존 가입자가 아닌 5000만 명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제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선보인 ‘유플러스 존(U+zone)’이좋은 사례다 ‘유플러스 존’은 전국적으로 100만 개 이상의 AP(Access Point)를 네트워크로 묶어 100Mbps 속도의 무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ACN(AP Centric Network) 서비스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전화를 이용할 수 있는 ‘유플러스 070’, 개방형으로 누구나 활용 가능한 광고 플랫폼인 ‘유플러스 AD’도 마찬가지다. 이는 통신 서비스가 네트워크·마케팅·디바이스 경쟁 시대를 지나 서비스 경쟁, 솔루션 경쟁으로 가야 한다는 게 이 부회장의 지론이다.
이 부회장은 올해 세계 최대 규모의 ‘유플러스 존’을 완성하고 4세대 이동통신 LTE(Long Term Evolution:유럽식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의 전국망 조기 구축을 철저히 준비할 방침이다. 또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20여 종을 출시하는 등 전체 단말기의 70%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 밖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중소기업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제휴했고 인제대 백병원·관동대 명지병원 등 의료 기관과도 제휴, 의료 서비스 솔루션과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에도 본격 진출했다. ‘고객 만족’ 이구동성
신대륙을 찾아가는 길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올해 두 CEO가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것은 ‘고객 만족’이다.
이 회장은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2011년 목표를 고객 서비스 혁신’으로 정하고 ‘무결점 서비스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무결점 상품 출시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한편 고객의 소리를 상품 개선에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품질 경보제’와 ‘보상제’도 시행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 말 CS추진본부·통합고객전략본부 등으로 구성된 SI(Service Communication Center) 부문을 신설했다.
이 부회장 역시 최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든 생각의 중심은 고객”이라고 강조한다. ‘스마트 폭탄’이 된 아이폰처럼 고객이 말하지 않고 생각도 못하고 있지만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요구를 읽어내고 이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부회장은 출범 첫해인 지난해 회사 이름까지 바꿨다. LG U+는 고객(YOU)에게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플러스)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두 CEO의 화려한 이력이 말해주듯, 그들은 사회 통념상의 성공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두 CEO는 임직원들의 삶의 질 높이기에도 관심이 많다. 이 회장은 ‘훌륭한 일터’ 가꾸기에 힘을 쏟고 있다. 여성 임원을 대폭 늘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KT의 여성 임원은 15명으로 국내 대기업 중 가장 많다.
이 부회장은 매달 한 번 이상 지방 현장을 순회하는데, 이례적으로 직원 가정을 방문할 때가 많다. 그는 “LG유플러스가 임직원이 일할 수 있는 ‘행복한 둥지’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가정이 행복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석채 KT 회장
약력 : 1945년생. 68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82년 미 보스턴대 경제학박사. 92년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95년 재정경제원 차관. 96년 정보통신부 장관. 96년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2009년 KT 대표이사 회장(현).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약력 : 1948년생. 71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76년 미 듀크대 공학박사. 96년 KTF 대표이사 사장. 2001년 KT대표이사 사장. 2002년 정보통신부 장관. 2005년 광운대 총장. 2010년 LG유플러스 대표이사 부회장(현).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