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쇼크’ 이후 과감한 사업 재편으로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변신한 소니

[글로벌 현장]
21세기의 소니·20세기에 머무른 파나소닉…사업 재편이 명운 갈랐다
14조230억 엔(약 148조원) vs 3조3503억 엔.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 기업 소니와 파나소닉의 시가 총액이다. 소니는 일본 3위, 파나소닉은 42위다. 2008년까지만 해도 파나소닉의 시가 총액은 2조7000억 엔으로 1조9000억 엔의 소니를 앞섰다. 13년간 파나소닉이 제자리걸음하는 동안 소니의 시가 총액은 7배 증가하면서 위상이 바뀌었다.

두 기업의 현주소를 잘 나타내는 장면이 지난 2월 나왔다. 소니는 2월 3일 2020 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순이익이 1조850억 엔으로 전년 대비 86% 늘어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예상대로라면 소니는 1946년 창업 이후 처음으로 순익 1조 엔을 달성한다. 당초 예상치는 5100억 엔이었지만 실적이 급격히 호전되면서 반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두 배로 늘려 잡았다. 발표 이후 소니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2000년 3월 1일 세웠던 시가 총액 기록(14조6833억 엔)을 21년 만에 갈아치웠다.

하루 전인 2월 2일 파나소닉은 지난해 순익이 전년보다 34% 감소한 1500억 엔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소니의 10분의 1 수준이다. 예상 매출액은 6조5000억 엔으로 30년 전보다 적다. 거품 경제 마지막 해인 1991년 파나소닉의 매출은 6조5990억 엔이었다. 영업이익은 1984년 기록한 5757억 엔을 36년째 깨지 못하고 있다.
21세기의 소니·20세기에 머무른 파나소닉…사업 재편이 명운 갈랐다

21년만에 시가총액 기록 갈아치운 소니
전문가들은 사업 재편이 두 전자 대기업의 명운을 갈랐다고 분석한다. 소니가 간판 사업이었지만 실적이 저조했던 플라스마 TV와 노트북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서비스업 중심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변신하는 동안 파나소닉은 제조업체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워크맨’으로 1980~1990년대 세계를 제패한 성공에 취한 소니는 인터넷 시대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2003년 4월 순이익이 전년보다 40% 추락한 ‘소니 쇼크’가 터졌다. 이후 주력인 전자 사업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 동안 5차례 적자를 냈다.

생존을 위해 소니가 선택한 길은 전자 사업의 비율을 낮추는 사업 재편이었다. 가격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는 제조업에서 벗어나 기업이 가격 주도권을 쥐기 쉬운 서비스업으로 변신하자는 시도였다. 소니 사업 재편의 큰 방향은 기업 집단 할인(conglomerate discount)과 스마일 커브(smile curve)로 요약된다.

기업 집단 할인은 그룹의 전체 가치가 계열사들의 합에 못 미치는 현상이다. 문어발식 경영의 폐해다. 소니는 그룹 가치의 합에 마이너스가 되는 사업을 지금까지의 명성과 관계없이 처분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2년 화학 사업을 일본정책투자은행에 매각한 것을 시작으로 2014년 7월 ‘VAIO’ 브랜드로 전 세계 노트북 시장에서 지명도가 높던 PC 사업과 TV 사업을 차례로 정리했다. 세계 최초로 실용화에 성공한 리튬이온 배터리 사업도 2017년 무라타제작소에 매각했다.

반면 지분 65%를 갖고 있던 금융 계열사인 소니파이낸셜홀딩스는 4000억 엔을 투입해 100% 자회사로 만들었다. 소니생명보험과 같은 금융 계열사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데다 핀테크 기술 혁신을 접목하면 성장 잠재력이 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유 지분을 100%로 늘림에 따라 소니의 연결 기준 순익도 매년 400억~500억 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일 커브는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중간 단계인 제조 공정보다 처음과 마지막 단계인 연구·개발, 브랜드 마케팅, 애프터서비스의 부가 가치가 더 높다는 경영 이론이다. 각 제조 공정의 부가 가치를 그래프로 그리면 미소를 짓는 것처럼 ‘U자형’이 된다는 데서 ‘스마일’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사업 재편 결과 과거 주력 사업이었던 제조업의 비율은 크게 낮아졌다. 그 대신 게임·음악·영화·금융 등 서비스 산업과 이미지 센서 등 부품 산업의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핵심 사업부 대부분이 스마일 커브의 양 끝단에 자리한 것이다. 게임·음악·금융 등 이익률이 높은 사업을 엄선해 재투자를 반복한 덕분에 소니는 일본 8대 가전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1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제조업 마인드'를 버리지 못한 파나소닉
2011~2012년 2년 연속 8000억 엔(약 8조4661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낸 파나소닉도 사업 재편을 시도했다. 2012년 6월 취임한 쓰가 가스히로 파나소닉 사장은 ‘낡은 파나소닉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에 편중됐던 사업 구조를 기업 간 거래(B2B)로 바꾸기로 했다. 거액 적자의 원흉이었던 플라스마 TV와 의료 기기 사업에서 잇달아 철수했다.

하지만 전기차(EV) 배터리 등 자동차 부품과 ‘공간 솔루션’으로 명명한 주택 사업을 새 성장 동력으로 선정한 것은 오산이었다. 2015년 확보한 전략 투자금 1조 엔 대부분을 자동차 관련 사업에 투입했지만 2019년 466억 엔의 적자를 냈다.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사업은 지난해 처음 흑자를 냈지만 LG전자와 중국 CATL의 추격으로 수익성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공조와 조명에 집중한 주택 사업 역시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수익력을 보완하려던 전략이 실패로 돌아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이후 결별을 선언한 가전 의존도가 오히려 더 높아졌다. 지난해 4~9월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이 소비자 가전에서 나왔다.

파나소닉은 건전지·콘센트·용접기 등 전통 산업과 시스템 키친 같은 백색 가전에서부터 반도체 관련 제조 설비와 5세대 이동통신(5G) 기지국까지 문어발식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 핵심 산업이 없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파나소닉의 지난해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목표인 5%의 절반 수준인 2%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라이벌 소니뿐만 아니라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일본전산으로 이직하는 엔지니어가 나와 그룹 전체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1990년 전후 세계 10위권에 들었던 반도체 사업은 수년간 적자가 이어진 끝에 작년 9월 대만 기업에 팔았다. 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 5위권이었던 태양광 패널 사업도 한국과 중국에 밀려 손해를 보다가 2월 1일에야 철수를 결정했다. 비주력 사업을 선제적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경쟁에서 밀리고 도태된 끝에 헐값에 처분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조업 마인드를 버리지 못하는 기업 문화가 지적된다.

파나소닉은 ‘중기 경영 계획’의 원조다. 1956년 ‘220억 엔이었던 매출을 1960년까지 800억 엔으로 늘린다’는 제1회 중기 경영 계획을 처음 발표한 이후 3년마다 경영 계획을 세우고 있다. 파나소닉이 중기 경영 계획에서 가장 중시하는 목표는 매출이다. 역대 파나소닉 사장도 “매출 10조 엔”이라는 목표를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기업의 경쟁력이 수익성과 자본 효율로 평가받는 시대가 됐는 데도 고도 성장기에나 달성할 수 있는 매출 목표를 붙들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파나소닉은 2014년 중기 경영 계획에서 또다시 ‘창업 100주년인 2018년까지 매출 10조 엔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2016년 매출이 7조 엔대로 떨어지고서야 파나소닉은 이익을 중시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도쿄(일본)=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