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육 마이스터 1호, ‘축산업 확 바꿀 터’
무려 32과목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기들은 10살 가량 어린, 두뇌회전이 한창 빠를 때인 20대 초반의 젊은이들. 게다가 그들에게는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닌가. 그는 무조건 외우기 시작했다. 하루에 세 과목 보는 날은 그래도 해볼 만했다. 네 과목을 외우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래저래 두 과목은 포기. 소를 네 등분해 1시간 내에 뼈를 발라내고 진열상품으로 만드는 시험에서부터 회계·마케팅, 직업교육학 등 단 한 과목도 쉬운 것은 없었지만 다행히 결과는 좋았다. 응시합격자 105명 중 13등. 드디어 꿈에 그리던 식육 마이스터 자격증을 받게 됐다. 15등까지는 단상에 올라 시험위원장에게 직접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임.성.천. 이름 석 자가 호명되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른 104명이 기립박수를 보내줬다.지난 198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식육 제조 마이스터 자격증을 딴 임성천 훔메 대표(51)는 이날을 기억하며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모두가 반대하는 일. 그를 믿어주던 아내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식육을 가공한다는 게 그때만 해도 ‘백정 짓’이라고 했다. 그것도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독일까지 가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직업학교를 다닌 아이들과 같은 과정을 밟는 일이니 현명한 선택으로 봐주는 이는 없었다.“그래도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세상의 변화라는 게 누군가는 나서야 하는 일이니까요. 제가 독일까지 오게 된 것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임대표는 독일에서 식육전문점을 열 수 있고 후배를 양성할 수 있는 자격증인 ‘마이스터’를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따낸 인물이다. 현재 그는 철저히 장인정신에 바탕을 둔 한국형 식육전문점을 지향하는 업체 훔메유통을 운영 중이다.대학에서 축산가공학을 전공하던 평범한 학생이 ‘한국인 1호 독일 식육 마이스터’, ‘현대화된 식육전문점 전도사’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은 우연히 독일 육가공 기술연수 기회를 잡게 되면서부터. 독일에서 기술 전수를 위한 도제식 교육 시스템과 고기의 다채로운 활용에 감동을 받은 그는 한국에서 학업을 마치는 대신 우선 독일의 직업학교행을 결심했다. 그리고 3년 만에 식육 도제 자격증을 받았다. 한마디로 고기 전문가가 돼 돌아온 셈이다.이후 그는 육가공업체에 특채로 들어가 3년여간 근무하며 무수히 많은 육가공 신제품을 개발했지만 새로운 도전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편한 삶을 거부하고 프랑크푸르트 식육전문학교의 마이스터 준비과정에 입교했다. 마이스터는 도제가 된 후 약 3~4년간 도제수업을 다시 받아야 시험응시 자격을 받는 매우 까다로운 자격시험이다. 그는 국내 육가공업체 근무기간을 동 업종 종사로 인정을 받아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돈을 벌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다른 길이 있었을 겁니다. 내가 익힌 기술로 우리나라의 식육점을 현대화시키겠다는 목표로 마이스터 시험에 지원했죠. 그게 고통의 시작이 될 줄 몰랐지만요.”그는 마이스터가 된 뒤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다. 한국 최초의 독일식 정육점 ‘마이스터 델리’를 열었다. 우선 독일에서 배운 것처럼 기술 좋은 후배들을 백화점 등 매장에 내보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시지, 햄 등을 제조·판매하게 했다. 반응이 꽤 좋았다. 하지만 오픈하자마자 터진 외환위기. 창업 8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생고기와 양념된 고기반찬, 소시지, 통닭 등 다양한 아이템을 판매하는 복합매장 브랜드 훔메유통을 설립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스테이크를 숯불에 바로 구울 수 있게 가공한 즉석식품(ready-to-cook) 브랜드 ‘그릴파티’를 만들어 새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광우병이라는 악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에는 조류독감으로 돼지고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한국 정육점 문화를 바꾸는 일이 개인의 힘으로는 안되겠다 싶어 축산진흥공사 사장공모에 응해 취임하기도 했고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햄가공업체의 사장을 맡기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훔메유통 경영일선에 복귀하면서 이번에는 수익이 나지 않는 유통매장은 과감히 없애고 자체 외식모델을 개발해 레스토랑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인생행로 끝에 다행히 지난 8월에는 사업을 시작한 지 9년 만에 흑자가 조금씩 발생하기 시작했다,그는 지난 9월7~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06 축산물 브랜드 전시회 및 경진대회에 참가해 한국 정육점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행사를 열었다. 그에 따르면 1960년대만 해도 한국에는 위생개념, 생고기의 개념이 없었다. 70~80년대로 넘어가면 냉동육이 주름잡던 시대였다. 웰빙이 유행하면서 냉장 숙성육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최근인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식육업계 종사자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다. 따라서 직업의식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고기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래서 그는 고기를 다루는 가공기술을 전파하는 데 관심이 많다.그가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은 최근 외국 축산물 수입이 늘면서 정부가 축산업의 현대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점이다.“웰빙 바람으로 소비자들이 냉장육에 관심을 갖지만 그러자면 가공기술이 결합돼야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냉동육은 안 팔리면 보관하면 되지만 얼리지 않은 고기는 변하기 전에 다른 형태로 바꿔 판매해야 하니까요.”아무리 생산자들이 좋은 한우를 길러낸다고 하더라도 살아있는 채로 소비자에게 공급하지 못하는 만큼 식육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육가공 기술만 뛰어나다면 고기의 질은 원료의 가격 대비 수준을 보여주는 기준이 될 뿐이다. 이렇게 되면 농축산물시장 개방에도 끄떡없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축산발전을 위해서는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판매자의 능력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푸줏간, 백정과 같은 단어를 써가며 역사적으로 업신여겨 온 계층이 식육업자들이었죠. 하지만 그들의 직업정신만은 되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백정과는 어울리기조차 싫어했으면서도 그들이 파는 고기는 먹었지 않습니까.”그는 “백정이 소나 돼지를 잡아 고기를 새로 준비할 때는 늘 목욕재개하고 성스럽게 준비했다”면서 “그렇게 직업정신이 투철한 식육전문가들을 키워내는 게 나의 꿈”이라고 설명했다.그는 이것이 식육분야에만 국한된 내용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한국의 전 산업분야에 걸쳐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기로 이를 누가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는 것이다. 식육분야는 가장 낙후된 업종이지만 하루빨리 패러다임의 변화를 받아들인다면 식육업자도 사회에서 존경받는 직업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가가 많이 배출돼야 한국사회도 다양성을 띠게 되고 그런 가운데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실업수당을 더 준다고 해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요. 이제는 실질적으로 능력 있는 전문직업인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에 온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인터뷰를 마무리할 무렵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축산업을 향한 그의 사명감을 보여주듯 벨소리는 ‘움메’하는 우렁찬 소 울음소리였다. 휴먼 메츠거라이(Human Metzgerei·메츠거라이는 독일식 식육전문점으로 독일 명인의 엄격한 기술과 한국인의 장인정신이 더해진 식육전문점이라는 의미), 또는 휴먼 마이스터(Human Meister·온전한 직업인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식육전문가를 양성한다는 뜻)의 약자지만 소 울음소리를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는 그의 사업체명 ‘훔메’를 닮은 소리였다.임성천 훔체유통 대표1955년 서울 출생. 81년 건국대 축산가공학과 졸업. 84년 직업학교 3년 수료. 도제 자격 취득. 8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식육전문학교 수료. 독일 식육 마이스터 자격 취득. 91년 건국대 건국햄사업부장. 92년 건국대 농축개발대학원 축산물이용학과 졸업.97년 훔메유통 대표(현)©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