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1월 4일. 거울생산업체인 자산기업의 이용덕사장(52)은 이날을 결코 잊지 못한다. 이사장이 30년간 기업을 경영해오면서 이때 만큼 충격을 받은 적은 없어서다. 이날은 마침 주말이라 휴가차제주도 서귀포에 가 있었다. 저녁때쯤 회사에서 급한 일이 있다며전화연락이 왔다. ?사장님, 회사에 조그마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전화를 건 이해윤상무는 사건내용을 빨리 말하지 않고 자꾸 머뭇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고 다그쳤다. ?공장이 불에 탔습니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그는 머리가 어찔했다. 메공장이 불에 타다니…. 수십억원을 투자, 고생끝에 완벽한 자동화라인을 설치해놓았는데 불이라니.멕일반소비제품의 경우 보험에 들어있다면 불이 나더라도 큰 손해를볼 것이 없었으나 거울은 가동을 멈추면 엄청난 피해가 몰려오기때문에 화재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주문을 받아놓은건설회사등에 납기를 지키지 않으면 다음 주문이 끊어지는데다 대부분이 어음거래여서 가동이 중지되면 자금줄까지 막혀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었다.밤새껏 전화통화로 체크해본 결과 화재는 자동도장라인에 장착된센서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적외선오븐이 과열돼 일어났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센서를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데다 다른 라인도 많이 손상돼 적어도 3~4개월은 걸려야 복구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사장은 ?그렇게 오랫동안 공장을 멈출 수는 결코 없다?며 ?한달이내에 복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고 당부했다.◆ 화재로 ‘사원들의 응집된 힘’ 얻어이튿날 첫비행기로 올라와 공장에 막상 도착해보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라인 전체가 새까맣게 타 잘 보이지조차 않았다. 이사장은 정신을 가다듬고 월요일 새벽 6시 전직원을 집합시켰다. 일단 모인 직원들에게 칠판에 없어진 것을 모두 적게 했다. 꾸중보다는 ?힘을 내자?고 격려했다.그러자 직원들이 앞장서기 시작했다.누구하나 몸아끼지 않고 검게탄 공장안을 헤집고 다니며 흑인들처럼 까맣게 된 얼굴로 정신없이일했다. 복구를 위한 플로차트를 짜서 각자 맡은 일을 신속하게 해나갔다. 완벽한 역할분담체제로 일했다. 볼트를 맡은 사람은 청계천에 나가 맞는 부품을 최대한 빨리 구해오고 식사담당은 온종일라면만 끓여댔다. 모두들 열기에 차서 일했다. 운좋게 센서도 국내에서 구할 수 있었다. 당초 아무리 빨라도 한달은 걸릴 것으로 계산했던 복구가 불과 열흘만에 끝을 맺었다. 자산기업이 화재가 난지 10일만에 다시 가동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업계에 알려지자 격려금이 쇄도하기도 했다.화재후 첫가동에 들어간 날은 막걸리파티를 열고 보람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사원들간의 결속이 얼마나 큰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이사장은 이 화재로 상당한 재산피해를 입긴 했으나 「사원들의 응집된 힘」이란더 값진 재산을 얻게 되었다. 이후부터 이사장은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사실 이용덕사장은 우리나라 거울산업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그가 거울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지난 65년부터였다.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형님이 시작한 거울공장에서 작업과 영업을 함께 했다. 은평구 갈현동의 대지 1백2평 건평 50평의 공장에서 거울뒷면에 은을 입히는 작업을 하거나 전국의 아파트공사현장을 돌며거울 주문을 받았다.그러나 이때 제작한 거울들은 오래 쓰면 거울면이 썩어버리는 폐단이 있었다. 이사장은 74년도에 어떤 식당에 들어갔다가 아주 특이한 사실을 발견한다. 오래된 거울에 페인트로 글씨를 쓴 부분만 썩지 않은채 잘 보존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사실을 제비표페인트에 알려주고 합당한 페인트를 개발해줄 것을 요청했다. 거울용 특수수지도료가 개발되면서 건설회사들이 자산기업 브랜드의 「보오미거울」만 찾았다. 특히 주택공사는 무려 3년간 특수수지를 쓴 보오미거울만 썼다.이를 발판으로 지난 79년 파주에 1천2백평의 공장부지를 마련했다.이때 파주에 자리를 잡은 자산기업은 현재 대지 4천5백평에 건평2천2백평의 완전 자동화된 거울생산공장을 갖추게 되었다. 파주에서 법원리로 들어가는 길 왼편에 자리잡은 자산기업의 공장안에 들어서면 로봇들이 판유리를 스스로 날라다 라인위에 놓고 거울을 제작해가는 과정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더욱이 거울 하나를 만드는데 온갖 정성을 다 쏟는다는 사실에 차츰 경이감을 느끼게 된다.옛날 거울을 쳐다보면 얼굴이 약간 일그러져보이는 것들이 많았다.그러나 보오미거울은 이런 거울은 결코 나올 수 없겠다는 사실을알게 된다. 플로트공법으로 만들어진 첨단판유리를 재료로 쓰는데다 면세척공정, 은을 입히는 공정, 코팅도장 공정, 열처리 건조공정 등이 완벽하게 전산처리시스템에 의해 가동되기 때문이다. 거대한 판유리가 1백m에 이르는 제경라인을 통과하면서 생생한 거울로탈바꿈한다.거울을 절단하는 공정도 컴퓨터가 제어한다. 직선 곡선등을 완벽하게 잘라 내용도에 맞게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보오미거울을 쓰는 건설회사는 주택공사 현대건설 신동아건설 선경건설 등 국내 유명건설회사 대부분이다.◆ 컴퓨터제어자동면취기 신규 도입키도이처럼 보오미 거울이 업계에서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오직 거울에만 30년이상 몸바쳐온 이사장의 피와 땀이 서려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이사장은 이런 공과를 『사원들의 응집된 힘의 결과?라며 자기자랑을 숨긴다.이사장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현장에 뛰어드는 바람에 대학은 늦게서야 다닐 수 있었다. 건국대를 졸업한 그는 최근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다니며 늦게나마 새로운 경영이론을 공부하기도 했다. 이제독일의 거울인증기관인 DIN테스트에 합격할 만큼 품질을 갖추었지만 돌이켜보면 너무나 먼지바람나는 험한 길을 이겨내고 걸어왔다고 술회한다.화재가 나기전인 지난 84년에는 거래업체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심한 자금난에 부대끼기도 했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건설업체인 홍덕실업이 1억2천만원의 대금을 부도낸 것이었다. 이 회사는 홍천과부산 등에 많은 아파트를 세웠는데 여기에 납품한 유리값을 한푼도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회사가 발행한 어음이 85년 5월부터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사장은 이들 어음을 막느라 몇달을 발이닳도록 뛰어다녔다. 다가오는 어음을 감당하지 못해 혼자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많이 울기도 했다.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거울사업을 계속해온터라 이사장의 거울에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대부분 기업을 해서 돈을 벌면 사업을 다각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사장은 거울외에 다른 사업엔 관심이 없다. 복층유리가공업체를 하나 더 설립했지만 그의 동생에게 경영을맡겼다. 이사장은 앞으로도 더 좋은 거울을 만든는데만 온힘을 쏟을 것을 다짐한다. 최근 시설비가 많이 드는 컴퓨터제어자동면취기를 새로 도입한 것도 이러한 이사장의 거울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