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유통업은 없다'『유통업이야말로 일반 국민들의 생활을 불안하게 만드는 실업문제와 물가고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입니다. 1970년대 석유값파동(오일 쇼크)으로 극심한 실업문제와 물가고에 시달렸던 일본도유통업을 통해 이 두 가지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유통 전문 컨설팅회사인 다이아몬드 컨설팅의 오쿠보 다카시 사장은 불황기 때 유통업의 중요성을 이렇게 역설했다. 유통업은 매장에서 일할 사람을 다수 필요로 하는데다 매장 업무는 성별이나 연령, 기술 보유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분야이기때문에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고용 창출 효과가 높다는 설명이다.오쿠보 사장은 『1970년대 오일 쇼크 때 일본의 많은 실업자들이유통업의 시간제 계약직으로 흡수됐다』고 덧붙였다.유통업의 발달은 물가고를 해결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대표적인 예가 할인점이다.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지역 밀착형 할인점이 전국 곳곳 어디에서든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많아야 소비자들이 물가고 속에서도 「숨통」을 틀수 있다는 설명이다. 『불황기일수록 소비자에게 상품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유통업의 역할은 더욱중요해진다』고 오쿠보 사장은 지적한다.◆ 실업과 고물가, 유통업이 해결 가능오쿠보 사장은 일본 고이즈미 그룹 유통사업부에서 판촉부장과 경영기획부장 등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에 건너와 신세계백화점 본부장과 상무, 삼성물산 유통본부 사장 등을 역임했다. 또 대구백화점과대백플라자의 경영 고문으로도 활동했으며 현재는 삼성물산 유통본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쿠보 사장이 국내 유통업계에서 일한지는 올해로 12년째. 다이아몬드 컨설팅은 오쿠보 사장이 1994년에 설립한 유통 전문 컨설팅 회사로 미쓰비시 종합연구소와 업무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지금까지 한국의 유통업체 특히 백화점은 고도 성장 속에서 「무경쟁」의 시대를 지내왔습니다. 유통업이라기 보다는 부동산 사업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정도로 건물 하나 지어 놓은 뒤 매장 임대해서 임대료를 받는 식의 「땅 짚고 헤엄치기」사업을 해왔습니다.그러나 이제는 IMF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는데다 외국 업체들의잇단 진출이 예상되면서 경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면 한국의 유통시장은 고도의 시스템과 노하우를 갖춘 외국 유통업체에 모조리 정복당할지도 모릅니다.』오쿠보 사장은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유통업이 도약하느냐 몰락하느냐 하는 전환점』이라며 유통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가지면에서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는 유통 전문 인재를 양성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과학적인 유통 시스템을 구축하라는것이다. 오쿠보 사장은 『이런 말을 하면 많은 경영자들이 지금 당장 살아남는 것도 문제인데 무슨 돈으로 인재를 육성하고 시스템을구축하느냐 라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3년 앞을 바라본 장기 비전을 지금 수립해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한국 유통업에미래는 없다』고 역설한다. 오쿠보 사장이 인재 육성과 시스템 구축을 강조하는 이유는 유통산업 자체가 합리적인 시스템에 기반한「과학」인데도 한국의 유통업계가 이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오쿠보 사장은 『한국 유통업체들은 「우리는 한국형 백화점이다,우리는 한국형 할인점이다」라고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세상에한국형 유통업이라는 것은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유통업에는 미국형이니 일본형이니 한국형이니 하는 지역에 따라 다른 「형」이없다는 설명이다. 『유통은 곧 시스템이고 성공하는 시스템이란 지역에 따라 다른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공통』이라는게 오쿠보 사장의 설명. 매장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종류가 지역에 따라 달라질수는 있지만 유통업을 움직이는 경영 시스템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과학」이라는 것이다.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유통 시스템의 목적은 결국 저비용 경영(Low Cost Management)이다. 저비용 경영이란 고객과 점포 상품서비스 등 유통산업을 이루는 여러 요소에 대한 분석을 통해 비용은 어디에서 발생하고 고객만족은 어디에서 달성할 수 있는지를 찾아내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말한다. 이런 저비용 경영은 점포운영을 위한 포맷(Format: 공통 방식) 즉 여러 점포에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체인 시스템(Chain System) 도입을 통해서만 실현할수 있다고 오쿠보 사장은 말한다.오쿠보 사장은 『한 유통업체가 여러 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다고해서 모두 체인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모든체인점을 일관되게 운영할 수 있는 공통 방식(포맷)이 있어야 궁극적으로 비용 절감을 이룰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오쿠보 사장은 또『이런 저비용 경영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유통업체가 어떻게 변신하고 개혁해야 하는지부터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며 현 시점에서 인재 육성이 필요한 이유를 덧붙여 설명했다.비용 절감을 위해서는 아웃소싱(Outsourcing: 외부 위탁)도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오쿠보 사장은 『한 유통업체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할수는 없다』며 『외부에 맡겼을 때 더 적은 비용으로똑같거나 더 좋은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면 그 분야는 과감하게 떼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영전략 수립이나 컴퓨터 시스템 운영,재고관리, 소비자 의식 조사, 인테리어 등을 모두 아웃소싱 분야로고려해 볼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형 백화점·할인점은 없다오쿠보 사장은 또 유통 업태별로 정체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강조했다. 『슈퍼마켓과 백화점, 패션전문점, 할인점 등이 모두 통합된게 한국의 백화점』이라는게 오쿠보 사장의 지적. 앞으로는 이런 「짬봉」식의 업태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백화점이든 할인점이든 슈퍼마켓이든 나름대로 각각의 특성을 찾아 스스로를 차별화시키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쿠보 사장은 『한국의 경우 아직까지는 인구 한사람당 유통 매장 수가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훨씬 적은 편이기 때문에 백화점을 포함해 모든 유통업태가 성장 가능성이 있다』며 『각 업태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끌어당길 고유의 개성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여러 업태 중에서도 오쿠보 사장이 IMF 이후 가장 유망할 것으로보는 유통 형태는 소비자의 생활과 밀착된 체인점이다. 백화점이나대형 할인점보다는 소비자들의 생활 가까운 곳에서 품질좋은 생활필수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전국적인 체인점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쿠보 사장은 특히 전국 어디에서나 균일한 품질의상품을 균일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유통 체인점이 등장해야 한국 소비자들의 생활 수준도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평등해질 수 있다고말한다. 『한국의 물가는 일본보다도 비싼 것 같다』는게 한국에서12년간 산 오쿠보 사장의 고백.오쿠보 사장은 『체인점이 내거는 슬로건이 있는데 미국은 「경제민주화의 실현」이고 일본은 「생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며『기본적인 생활 필수품의 경우 어느 지역에 사는 소비자든 서로비슷한 수준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게 체인점의 기본 개념』이라고 설명한다.오쿠보 사장은 마지막으로 『일본에서는 1970년 오일 쇼크 이후에야 비로소 유통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며 『현재의 위기가 한국 유통업에도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낙관적인 기대로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