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필요 즉각 대응 가능 ... 국내 의류업계, 신속대응체제 도입
필자는 198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MBA공부를 했다. 그 당시 보스턴 중심지 백화점에 가보면 일본 섬유제품이 일반 내의에서 패션 제품까지 진열장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이때는 미국 경제가 한창 어려웠다. 월남전이 불명예스럽게 끝나고 제2차 석유파동 이후 실업자가 늘면서 소비가 침체했다.그런데 일본에서 가격은 싸고 품질은 좋은 의류제품이 많이 수입되어 미국의 의류업계가 위기에 빠졌다. 공급체인 관리는 미국 의류업체가 이런 위기를 타개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이때 미국의 의류업계에서 도입한 공급체인관리가 QR(신속대응 체제;Quick Response)이다.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장소에, 필요한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QR의 기본 목표이다.QR를 도입하면 계절별 판매계획을 세우고도 이를 한꺼번에 생산하지 않고 우선 일부만 생산한다. 소매점에 출고한 뒤 전국 주요 매장에서 실제 팔리는 상황을 조사한다. 그리고 팔리는 품목만 추가 생산해서 소매점에 보충한다.이렇게 하려면 공급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신속하게 제품을 공급하는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 편물 같으면 실을 염색한 뒤 편물을 짜면 공기가 길어진다. 편직물을 미리 짜두었다가 유행에 맞추어 소량씩 염색하면 시장에 빨리 대응할 수 있다. 물론 실보다 편직물은 고르게 염색하기가 힘들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필요한 설비를 도입해야 한다.의류업체가 QR를 도입하려면 도매점과 소매점 사이에 협력 관계를 맺고 늘 정보를 소통해야 한다. 또한 직물회사, 방적회사, 염색회사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 과거에는 이들은 서로 이해가 상반되는 관계에 있었다. QR를 도입하려면 서로 신뢰하고 협조하는 동반자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당시 미국의 섬유와 의류업체는 일본에서 수입되는 싸고 좋은 섬유제품 때문에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섬유와 의류관련 업체들은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QR를 도입하면 공급체인 전체가 큰 이익을 얻는다. 팔리는 제품을 신속하게 공급받을 수 있으면 소매점은 미리 많은 제품을 주문해 발생할 수도 있는 재고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다. 의류업체는 제품을 생산하지 못해 판매하지 못하는 기회 손실을 피할 수 있고 적은 재고로 사업을 할 수 있다.◆ 가공식품업계 효율적 고객대응 체제1990년대에 들어 오면서 미국 가공식품업계에서는 새로운 공급체인 관리방식을 발전시켰다. ECR(효율적 고객대응 체제; Efficient Customer Response)가 그것이다. 가공식품업체의 경쟁이 심해져 제품 종류는 계속 늘어나고 소비는 정체하고 유통기간이 장기화하는데 대응하려는 것이었다.ECR에서는 첫째, 제품을 품종별로 잘 관리해서 재고 회전과 매장 효율성을 높이려고 한다. 특히 식품의 경우는 신선도를 관리하여 정해진 유통기간을 넘기지 않도록 한다. 둘째, 팔린 제품은 짧은 시간에 보충, 진열한다. 셋째, 공급체인이 서로 협력하여 유통업체와 소비자에 대한 판촉활동을 효율화하고 넷째, 신제품 개발과 시장도입이 효과적이 될 수 있도록 공급체인 사이에 최대한 협력한다.ECR에서는 우선 제품을 유형별로 나눠서 관리(Category Management)한다. 카테고리별로 유통업체, 제조업체, 원료공급업체 같은 공급체인 관련자들이 협조체제를 만든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궁리해서 신제품을 개발하고 공급체인을 관리해서 공통의 이익을 높이려고 한다.또한 팔린 제품을 효과적으로 보충하려고 한다. 판매 상황에 맞춰 제품을 보충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공급업체가 직접 제조업체나 판매업체의 재고를 관리, 이중의 재고관리를 피하고, 제품을 되도록 창고에 넣지 않고 차량과 차량간에 옮겨 싣는 크로스 도킹(Cross docking)방법을 채택하고, 중간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제조업체에서 직접 소매점포에 배송하는 방안을 강구한다.◆ 공급체인 관리란공급체인관리(SCM, Supply Chain Management)에는 원자재가 제품으로 만들어지고 이것이 유통경로를 거쳐 최종소비자까지 전달되는 절차와 그에 관련되는 활동이 포함된다. 여기에는 구매와 조달, 생산, 주문 처리, 재고 관리, 운송, 창고, 고객 서비스 업무가 포함된다. 제조업체의 업무 활동만이 아니라 공급업체, 공급업체의 공급업체, 제조업체, 배송업체, 도매업체, 소매점의 모든 활동이 포함된다.공급체인 과정에서 많은 원가가 발생한다. 처리과정에서도 원가가 발생한다. 재고가 쌓이면 자금이 잠기고 금리부담이 생긴다. 수요예측이 잘못되거나 판매시기를 놓치면 불량재고가 생겨 이를 처분하는데 다시 비용이 발생한다. 공급체인을 잘 관리하면 원가를 줄이고 기업 이익을 크게 올릴 수 있다.1997년 미국 산업 평균으로 공급체인 관리에서 발생하는 전체 비용이 매출액의 11.6%로 집계됐다. 한편 공급체인을 잘 관리하는 회사의 비용은 6.3%였다 (1997년 PRTM벤치마킹 보고서). 공급체인을 잘 관리하면 매출액이익률이 5%나 개선된다는 이야기다.한편 공급체인을 잘 관리하면 고객의 필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래서 판매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새로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의류산업의 QR는 판매동향에 신속히 대응, 유행하는 물건을 즉각 공급할 수 있게 해준다. 주문 생산의 경우는 납기를 즉시 약속하고 짧은 기간에 제품을 공급한다. 공급체인 관리는 기업의 원가절감과 판매기회 확대를 통해 새로운 이익을 만들어 낸다.◆ 국내 의류업계 신속대응 체제 도입최근에 와서 우리나라에서도 제일모직과 LG패션 등 여러 회사에서 QR를 도입하고 공급체인 관리에 나섰다. 제일모직은 갤럭시, 카디날, 빨질레리, 캐주얼 등의 4가지 카테고리의 의류제품을 판매한다. 캐주얼의 경우에는 스타일, 색상, 사이즈를 고려하면 한 카테고리에 2백가지 품목이 있다.제일모직에서는 이 모든 제품에 대해 전국 매장 계산대의 판매시점 데이터를 온라인으로 받는다. 주단위로 주요매장의 점포장들과 판매, 생산, 기획부서가 함께 모여 QR 미팅을 가진다. 여기에서 시장동향과 소비자 반응을 검토하고 추가 공급방향을 정한다. 제품전시·수주회의를 연 2회에서 4회로 늘리고 기본 생판계획을 연 4회에서 8회로 늘렸다. 생산관리 시점을 세분화함으로써 보다 기민하게 수요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비축생산을 최소화하고 되도록 판매시점에 근접하여 생산한다.소매점에는 제품별 출고 수량을 줄이고 판매 반응에 따라 후속 물량을 매일 배송한다. 팔리지 않는 품목은 다른 매장에 옮겨주고, 시기가 지나기 전에 제품을 처분하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소매점 재고와 자금부담을 줄이고 여신 기일도 단축한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