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부터 기업여신 신중, 수수료 수입 확대·외환거래 치중 ‘안정 속 성장’
씨티은행은 국내 시중은행이 외형성장에 골몰하는 동안 리스크정책위원회를 통한 내실 다지기에 주력했다.외국계 은행이 우리나라에서 장사를 잘 한다는 건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이야기. 씨티은행은 67년 기업금융 업무로 한국에 진출하고 86년 주력인 소비자금융 업무를 개시한 이래 한해의 예외도 없이 흑자를 내고 있다. 최근 2년간 1조2천억원 어치의 투자상품을 판매했으며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금융시장과 금융사들이 혼란에 빠진 이후부터는 한층 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눈이 번쩍 뜨일만한 비밀이 있거나 수재들만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계산 비법이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실적의 비결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자금부 이범영 이사는 “그저 간단한 계산일 뿐”이라고 답했다.신용등급 떨어지는 회사채 아예 외면실제로 씨티은행의 자산 구조와 수익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일반 은행과 마찬가지로 원화 및 외화 여수신, 신용카드 자산, 유동성 확보용 유가증권, 콜머니가 자산 구성 항목이고 수익은 예대마진과 수익증권 판매 대행, 외환 및 파생상품 거래 등 브로커 업무의 수수료 등으로 이뤄져 있다.단기 유동성 확보용 유가증권 자산은 국공채 뿐이다. 보유 채권은 거의 1백% 국채라고 보아도 좋다.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회사채나 투기채 등도 편입할 수 있지만 보수적 운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이사는 지난 30년 동안 부실채권으로 인한 손실이 0%에 가까운 것으로 보아도 좋다고 했다. 이익을 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반드시 최선의 운용이라고도 볼 수 없지만 아무튼 이것이 씨티은행의 원칙이다.물론 국내 시중은행과 외국은행 지점과는 수익구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외국계 은행들은 자금조달 수단으로 금리가 높은 예금보다는 자신들의 높은 신용을 활용해 단기 콜머니를 최대한 이용하기 때문에 금리 면에서 국내 금융기관과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만이 지속적인 수익 발생의 원인은 아니다. 국내 금융사들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리스크만 떠안는다는 간단한 계산을 외면하고 외형성장 경쟁에 골몰하다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반면 씨티은행은 아시아 외환위기 이전부터 철저한 재무분석을 통한 여신심사원칙을 지켜왔다. 과거와 같은 경제 성장률의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으로 기업 여신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대신 수수료 수입의 확대와 외환 거래에 치중하기 시작하는 전략을 택했고 특히 외환 위기 이후에는 발빠른 변신을 보여줬다. 이같은 영업의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조금 더 들어가 보면 특히 시중은행들과 비교되는 것이 리스크관리 시스템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사도 서둘러 리스크관리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 외형만 겨우 갖춘 상태. 씨티의 리스크관리는 자산부채위원회가 주도한다. 위원회는 한국지점장 자금부 영업부 기획부 심사부의 수장 등 회사 핵심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시장 상황을 분석하며 그에 따른 은행 전략을 수립하고 은행 전체 포트폴리오의 만기구조 통화구조 갭에 대한 지침을 세워 시행한다. 리스크정책위원회에서는 한국 지점의 자산규모 및 영업계획을 분석해 각종 리스크 한도를 정한다. 자금부에서는 상품 특성을 감안, 전체 리스크 한도를 정해 놓고 있으며 환딜러들은 현재 포지션 구성 및 손익 현황을 매일매일 보고해 집계한다. “운용에 있어 매뉴얼에 철두철미하고 내부 정책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 뿐이다.” 매우 간단하지만 막상 실행은 쉽지 않은 원칙이다.중개업무 시장 확대 등 수요창출에도 두각중개업무 시장의 확대에 따른 새로운 수입원 창출 역시 씨티가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분야다. 과거에 국내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오로지 은행서 대출받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기업들이 증권 시장에서 유무상 증자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직접 조달 하는 자금의 규모가 급증했다. 우량 기업들이 건실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해외 전환사채(CB) 신주 인수권부사채(BW, 주식예탁증서(DR) 등의 유가증권 발행을 통해 해외에서 저금리로 자금을 직접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이 도래했다.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 점점 더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금융기관의 역할은 그만큼 줄어든다. 반면 씨티은행과 같은 ‘세계적 선수’들은 세계 시장에서 국내 기업 고객들에게 토털 솔루션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이이사는 “기업 고객의 이같은 필요에 세계적 네트워크를 갖춘 씨티 금융 그룹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이닉스 반도체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씨티은행이 신디케이트론을 주도했고 씨티그룹의 일부인 살로먼스미스바니 증권이 GDR발행 업무의 주간사가 돼 하이닉스를 유동성위기에서 한숨 돌리게 했다. “국내 은행들이 이런 업무를 단기간에 소화하기는 어려우리라고 봅니다.”인터뷰원효성 마케팅·카드 이사“한국 금융문화 선도 자부”수익나는 시장만 공략한다, 땅짚고 헤엄치는 장사만 하니 수익 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들 지적하는데.흔한 오해와는 달리 수익 비율로 따지면 기업금융 부문이 더 크다. 소매금융과 기업금융에서 발생하는 수익에서 균형을 맞추려는 게 우리 회사의 정책이다.요즘 소매 금융 분야에 대단히 역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최근 트래블러스그룹과 합병한 본사의 정책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씨티가 전통적으로 소매금융과 세계 시장에 강점이 있는데 반해 트래블러스는 상대적으로 기업금융과 미국내 시장에 강세를 보이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합병 후 기업 및 미국 로컬 시장 비중이 커졌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새로 부상하는 아시아 시장과 소매 분야를 강조하는 듯 보인다.외국계 은행으로서 한국 시장에선 어떤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보는가.그간 씨티는 한국 금융업계에 여러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슈퍼타임’이라는 1 ∼3년짜리 신탁 상품을 최초로 내놓음으로써 은행에 장기로 돈을 묶어둔다는 개념을 만들었다. 당시에 소비자들에게 은행이란 그저 예 적금이나 붓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목 좋은 곳에 지점만 갖고 있으면 무조건 장사가 되던 상황에서 금융 상품을 광고를 통해 판다는 개념도 처음 도입했다. 결국 상품 차별화가 되면 새 수요도 창출할 수 있다는, 지금은 상식이 된 비즈니스의 원칙도 당시엔 없었다. 결국 소비자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오늘날에 이른 것이라고 본다.차후 가장 주력하는 업무는 어떤 영역이 될까.투자상품 분야다. 예대마진에서 수익을 내는 전통적인 은행 업무는 이제 수지가 안맞고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 같다. 소비자에게도 즐거운 경험이 못된다. 수신 영역에서는 투자와 파생상품 외환상품 등으로 다양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간접투자 상품은 당분간 판매 대행에만 주력하려 한다. 국내 시장에 투자하는 상품 뿐 아니라 해외 펀드 상품 가짓수도 늘어날 것이다. 이제 국내 시장에서 업종별로 분산투자하는 것만으로는 리스크를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적 분산투자가 필요하다. 유통에만 치중하는 것은 은행 수익에 도움이 될뿐더러 다양한 상품도 갖출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선 더 좋은 일이다.씨티 그룹의 대 한국 시장 거시 정책은 무엇인가.크게 보면 고객이 일상적으로 필요한 모든 금융 서비스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결국 씨티의 전략도 수익 경영 금융기관간 업종 허물기 등 국내 시중 은행장 신년사 같은 데 보면 맨날 나오는 얘기랑 다른 게 하나도 없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아닐까.©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