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좋을 때보다는 나쁠 때가 더 많아요. 나도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별 볼일 없을 때가 대부분이었어요. 이럴 때는 책을 보면서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준비하면 다시 기회가 옵니다.”성준경(66) 한국알앤씨 회장은 은행에서 퇴출된 사람들을 상담할 때면 으레 자신의 얘기를 먼저 털어놓는다. 한국알앤씨는 퇴직자들의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컨설팅 회사. 97년부터 프리랜서로서 퇴직자들을 상담하고 이들의 탈출구를 마련해주었던 성회장은 지난 6월 한국알앤씨 회장으로 부임했다.그가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퇴직자들의 ‘도우미’로 열심히 뛰는 이유는 그 역시 꿈을 못 이루고 회사를 나와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서다. 한미은행 창업멤버로 승승장구했던 그는 지난 88년 전무를 끝으로 옷을 벗었다. 은행장이나 계열사 사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그만 날개가 꺾였던 것. 샐러리맨으로서는 한창 일할 52세였다.그 뒤 중소기업 사장으로 인생을 다시 시작했지만 부임한 첫 날 양철 지붕 밑에서 비를피하며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을 때는 말 할 수 없는 회한이 솟구쳤다. 이런 탓에 성회장은 회사에서 퇴출된 사람들의 박탈감을 잘 안다.퇴직자들의 재활 프로그램 운영“사실 과장 차장으로 퇴직하는 은행원들은 밖에 나와서 할 일이 없어요. 은행이 부실해진 것이 이들 때문은 아닙니다. 경영하는 사람들 잘못입니다. 그래서 불만도 많고 심리적으로도 불안해요. 괜히 손해본 것 같고 그래서 이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대단합니다. 그렇다고 사회에서 은행원 출신을 곱게 봐주지도 않잖아요.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은 내 얘기를 해주면서 희망을 주는 겁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언젠가는 다시 빛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서 적성검사도 해주고 나머지 인생의 계획도 짜줍니다.”최근 2년 동안 성회장은 국민은행과 한빛은행 퇴직자 1천3백여명을 대상으로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다양한 창업 아이템 정보를 제공하고 해외 이민의 길까지 제시했다. 때론 퇴직자들끼리 공동창업을 제안하기도 하는데 최근엔 한빛은행 퇴직자 8명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돕기도 했다. 이들은 창업지원과 벤처 인큐베이팅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알앤씨파트너를 설립했고 성회장은 이곳에 투자할 엔젤투자자를 모아주거나 필요한 인력을 유치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건강? 뭐 특별히 건강관리하는 것은 없고 그저 물건 들고 걸어 다니는 것이 전부입니다. 만약 내가 은행에서 나오지 않고 잘 닦여진 길만 걸었으면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일하지 못했을 거에요. 그리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우리 회사가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고 내용이 알찬 퇴직자 지원업체가 되는데 공헌하고 싶습니다.”대전에서 태어난 성회장은 지난 63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에 입행했다. 조사부를 거쳐 청와대 외자 수석비서실 행정관을 지냈고 한국은행 도쿄지점 조사역과 경제과장을 역임했다. 81년 한미합작 은행인 한미은행 설립을 주도하고 88년 전무를 끝으로 은행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세진 나라계전 사장을 맡았고 한국능률협회 교수를 역임했다. 5남3녀중 장남인 성회장은 작고한 성민경 검사와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았던 성완경 인하대 미술학과 교수가 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