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운드 출범과 정부 정책 방향글로벌 경제 현실 직시해야 ‘실익’많은 우여곡절 끝에 뉴라운드 협상이 극적으로 출범했다.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이번 카타르 도하 회담에서 회원국간 논란이 심했던 농업 지적재산권 반덤핑 환경 등 민감한 문제는 내년 1월부터 2004년까지 계속될 개별협상을 통해 최종 모습이 조율될 것으로 예상된다.뉴라운드 협상은 1947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 진행됐던 기존의 협상과는 다르다. GATT와 WTO체제하의 국제협상은 세계 각국간에 놓인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약하는 무역장벽을 해소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반면 뉴라운드 협상은 종래에는 각국의 고유문제로 간주돼 왔던 상이한 경제정책, 기준, 관행을 통일시켜 ‘공정한 경쟁기반(Level Playing Field)’을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 만약 뉴라운드 규범이 통용되면 경제적 측면에서는 세계 각국들이 국명만 다를 뿐이지 하나의 지구촌 사회가 되는 것이다.뉴라운드 체제하에 세계경제는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경제력 격차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부에서는 냉전종식 이후 이념(Ism)의 공백상태를 선진권과 개도권을 전제로 한 신종속이론이 대체할 것이라는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으나 WTO체제는 우리를 비롯한 개도국들이 출범 이전에 기대했던 무역상의 이익을 제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WTO체제하의 세계경제 질서는 ‘서고동저’라 불릴 만큼 개도국들에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당초 뉴밀레니엄을 앞두고 뉴라운드 협상을 출범시키려 했던 99년 11월 말 시애틀에서 열린 제3차 WTO 각료회담을 계기로 각종 국제협상에서 개도국과 비정부기구(NGO)들의 거센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따라서 뉴라운드 협상이 진정한 의미의 국제교역 규범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이 개도국들의 입장을 어느 선까지는 반영해 줘야 한다. 문제는 세계경제가 범세계화되면서 우리를 비롯한 개도국(소규모 개방경제국)들의 경제정책이 무력화(Ineffec-tiveness)된다는 점이다.세계경제 동조화로 개도국 경제변수 무력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동조화 추세가 심화되면서 개도국의 경제변수가 더 이상 그 나라의 경제실상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은 금융자본이 실물경제 규모보다 약 4배나 많고 자본성격도 단순히 금융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자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는 경제변수가 개도국의 경제실상을 반영하는 얼굴이 못된다.앞으로 뉴라운드 규범이 통용되면 이런 추세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현실에서는 미국 연준리 의장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영웅이 된다. 노벨상으로 비유한다면 경제학상은 선진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평화상은 개도국 정치지도자나 비정부기구(NGO)들에 돌아갈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그렇다면 한국과 같은 개도국들의 경제정책은 어떻게 수립돼야 하나. 많은 논란이 예상되지만 개도국 경제정책들은 보다 미시적으로 접근해야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이제는 개도국 경제각료들이 거시경제 정책으로 폼잡는 시대는 지났다.개도국 경제각료일수록 경제현실을 제대로 읽고 있어야 한다. 그럴려면 뒷전에 서서 많은 이해계층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 경제정책도 시장흐름에 순응하면서 정책을 아끼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번 뉴라운드 협상에 따라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는 산업계나 국민들의 입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그동안 우리 경제정책 운용의 관행처럼 경제각료들이 직접 나서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정책을 운용할 경우 앞으로 진행될 개별협상에서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앞으로 뉴라운드 협상이 재추진되면 세계화와 동조화 추세는 급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시대에 경제각료들이 영웅이 되려고 생각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정책을 바라보고 추진해야 한다.한상춘·한국경제신문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한국경제 ‘득&실’수출 회생 … 쌀시장 개방 ‘발등의 불’뉴라운드가 출범함으로써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도 만만찮다. 시장개방 폭이 넓어져 외국의 상품과 서비스가 쏟아져 들어오게 됨은 물론 우리나라 상품도 다른 나라 시장에 파고들 여지가 많아졌다.●2005년께 쌀시장 개방 불가피농산물 협상의 3대 축은 △시장접근의 ‘실질적 개선’ △국내보조의 ‘실질적 감축’ △수출 보조의 ‘단계적 폐지’로 요약된다. 2개 문구에 등장한 ‘실질적(Substantial)’이라는 표현이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남았다. 당초 우리 대표단은 ‘점진적(Progressive)’이라는 단어를 넣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핵심 문구 수정에는 실패했지만 농산물 수출국들의 모임인 케인즈 그룹의 공세를 적절히 방어하고 막판에 ‘협상 결과를 예단하지 않고’라는 표현을 삽입하는데 성공, 후속 협상과정에서 절충할 여지를 남겼다는 평이다.하지만 결정적인 절충이 없는 한 2005년부터 쌀 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며 농산물 평균관세율도 현재의 60%에서 대폭 인하될 전망이다. 쌀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시장까지 개방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아 근본적인 농업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교육·법률·회계법인 국내 진출서비스 분야는 개도국과 선진국간의 격차가 큰 탓에 협상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은 통신 법률 교육 등 선진국보다 경쟁력이 낮은 분야를 대폭 개방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또 에너지도 서비스분야 협상 대상에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서비스시장이 개방되면 통신서비스 분야에 외국인 지분이 50% 이상 허용될 수 있으며 외국인대학 설립과 외국 법률·회계법인의 국내 진출이 허용된다.협상 계획에 따르면 내년 6월까지 각국이 상대국에 대한 협상 요구안을 제출해야 하며 이에 대한 응답서는 2003년 3월말까지 제출해야 한다.●반덤핑규제 남발 방지로 수출길 넓어진다한국의 주요 관심사인 반덤핑협정 개정문제는 내년부터 협상을 시작한다. 그러나 미국은 기존 협정의 개념과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동시에 반덤핑 관세 등 법적 조치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반덤핑 규범 개정을 주장해 온 한국과 EU 일본 등은 앞으로 미국과의 힘겨운 싸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얻은 것과 잃은 것한국은 뉴라운드 개막으로 직·간접적인 이익과 함께 잃는 것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우선 장점은 다자간 무역체제를 일관되게 지지해 온 덕분에 협상 주도그룹에 낄 수 있는 입지를 확보했다는 것. 특히 공산품 시장을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과 교역 조건 개선, 외국의 반덤핑 공세 약화는 핵심 성과로 꼽힌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뉴라운드를 통해 각국 공산품 관세가 34% 일괄 인하될 경우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연간 0.34%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섬유·의복산업이 12.4% 증가해 가장 큰 혜택을 입을 전망이다. 또 세계 서비스시장이 25% 추가 개방될 경우 한국의 GDP는 0.5~1.09%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또 반덤핑 협정 개정협상에서 제소요건이 강화되면 미국 등의 반덤핑 제소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 유럽에 이어 반덤핑 제소를 가장 많이 당하는 국가로 꼽혀왔다.이는 철강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세계 4대 통상분쟁 품목을 모두 가지고 있어 다른 나라의 공세가 거셌기 때문. 제소요건 강화로 반덤핑 조치를 남용하는 미국과 개도국에 대한 견제도 가능해진다.한편 농업 등의 분야에서의 손실도 막대할 전망이다. 농업 개도국 지위 유지가 쉽지 않게 되고 쌀 시장 전면개방에 대한 압력도 거세진다. 또 수산보조금 감축으로 수산업의 기반이나 다름없는 영세어민 대부분이 존립 기반에 위협을 받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