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과 부패문제가 경제성장과 증시발전에 또다시 걸림돌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만 하더라도 연일 터지는 뇌물사건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이 문제를 한국투자시 장애요인으로 지목해 주목된다.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뇌물과 부패 정도는 시장경제 원리가 활성화되지 못한 국가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이런 국가에서는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행정규제와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독점적 이윤인 경제적 지대(Rent)가 발생한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은 치열한 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과 부패가 만연하는 소위 ‘지대추구형 사회(Rent Oriented Society)’가 된다.아이로니컬하게도 최근 몇 년간 전세계적으로 뇌물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선진국·개도국 가릴 것 없이 이 문제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심화되는 듯한 분위기다.비록 뇌물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각종 거래시스템 정비 등 인프라 측면에서는 많이 개선됐으나 사람들의 가치관이 갈수록 배금주의 또는 물질 만능주의로 흘러 각국의 부패도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거의 모든 경제활동에 뇌물과 같은 비경제적인 요인이 게재돼 있다. 실제로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세계 각국의 부패지수(CPI)와 뇌물 공여지수(BPI)를 보면 우리나라는 두 지수 모두가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지난해 발표된 CPI지수에서는 조사대상 91개국 중 42위로 나타났고, BPI지수의 경우 19개국 중 18위를 차지했다.특히 2년마다 뇌물을 주는 쪽인 기업 등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통해 작성되는 BPI가 최근 들어서는 그 나라의 부패 정도를 파악하는 데 중시된다. 처음 발표된 2000년의 경우 우리의 BPI지수는 3.4로 같은 아시아권인 싱가포르(5.7)나 일본(5.1)보다도 크게 뒤졌다. 조사대상 19개국 중 중국만 우리보다 높게 나왔을 뿐이다. 올해는 5월 중에 발표될 예정이어서 상당히 주목되는 상황이다.2000년 BPI지수 싱가포르·일본에 크게 뒤져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베커 교수는 뇌물과 부패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각종 규제와 인가 △공무원의 자유재량권 등을 꼽고 있다. 동시에 △관료의 질 △공공부문의 임금수준 △정당의 자금조달 등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요즘 우리 사회에서 연일 터지고 있는 뇌물과 부패사건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부패와 뇌물이 한 나라 경제성장과 증시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는 보는 시각에 달라져왔다.레프와 헌팅턴은 부패가 투자결정 등 경제성장을 위한 결정에 방해가 되는 정부의 경직성을 제거시키기 때문에 효율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런 논리는 종종 일부 동남아 국가들의 고속성장을 설명하는 데 근거로 활용됐다.루이는 각 개인의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과 소득수준에 따라 시간이라는 자산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가장 소중한 자산인 개인들은 시간절약을 위해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한다는 주장이다.털럭과베커와 스타이거도 뇌물이 공무원들의 저임금을 보충해 주기 때문에 정부가 낮은 조세부담을 유지할 수 있어 부패가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반면 부패를 지지하는 듯한 위의 이론적 주장들은 많은 측면에서 논박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경직성은 제거할 수 없는 사회의 외생적 특질이 아니다. 한 사회의 경직성과 규칙들은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로 생성된 것이며, 뇌물은 사실 공무원들이 받아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둘째 가장 높은 액수의 뇌물을 제공하는 자가 반드시 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자는 아니며 오히려 초과이윤 추구에 가장 능한 자라고 할 수 있다. 뇌물을 투자로 간주한다면 뇌물제공자는 반드시 이 투자가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인지 검토해야 한다.보몰과 머피는 전통사회나 부패한 사회에서 유능한 개인들은 생산적인 사회활동을 줄이고 이윤추구 활동을 늘릴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셋째 급행료(Speed Money)의 지불은 관료들로 하여금 절차의 진행 속도를 일부러 더 늦추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뇌물은 인가부여와 같은 절차의 순서를 변화시킬 수도 있으며 전체 절차 수행에 걸리는 평균 시간을 더 늘릴 수도 있다.또한 부패와 추가이윤 추구가 정치적 유착이나 저임금의 보충수단으로서 단기적으로는 유용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역사적으로 볼 때 한 나라의 경제성장과 증시발전에 뇌물이나 부패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장경제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경제발전 초기단계에는 관료들에게 급행료를 치르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이하인 저소득 개도국들이 해당된다.문제는 경제와 증시발전 단계가 높아질수록 뇌물과 부패는 시장기능을 마비시키고 외부불경제를 초래하면서 경제성장과 증시발전을 저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특히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접어들 때 뇌물과 부패고리를 청산하지 못하면 성장이 멈추면서 주가와 자국통화 가치가 급락하는 상황이 발생한다.이런 현상은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 경험한 바 있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진입한 당해연도에 외환위기를 당한 것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면 대부분 예측기관들은 중장기적으로 부자국가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조건으로 깨끗하고 투명한 경제시스템을 꼽고 있다.현 정부의 예상대로라면 금년에 우리 국민소득이 다시 1만달러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최근 들어 뇌물과 부정부패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대부분 사회지도층 인사와 연루돼 있어 일부 국민들 사이에는 한풀이성 소비와 같은 위기일탈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점이다.결국 우리 경제와 증시 및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뇌물과 부패고리를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있겠으나 현 시점에서 최소한 네 가지 조치는 시급히 전제가 돼야 한다.무엇보다 대통령을 포함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솔직하고 뚜렷한 공약이 있어야 하고 어떤 뇌물과 부패도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각종 규제와 조세혜택과 같은 정책들을 축소하는 동시에 필요한 규제는 자의적이지 않도록 제도화해 뇌물과 부패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 공급측면에서도 공무원의 임금을 인상하고 통제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특히 갈수록 문제가 될 정당의 자금조달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뇌물과 부패 정도를 줄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마지막으로 뇌물과 부패를 줄이는 방안으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비중을 늘리는 수단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통상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부패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실시한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 결과를 보면 이같은 사실이 입증된다.이 조사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 사항을 살펴보면 세금을 회피하는 행위에 대해 여성응답자의 61.5%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데 반해 남성들은 54.5%로 낮았다. 길거리에서 돈을 주웠을 때 여성응답자의 51.6%가 반드시 되돌려 줘야 한다는 주장인 데 반해 남성들은 그 비중이 4.9%로 크게 낮게 나왔다.결국은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비중이 10%포인트 증가할 경우 국가청렴도 지수는 0.25포인트가 올라가고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하는 부패도 지수는 1.2포인트가 내려간다는 분석이다. 이는 여성이 남성들에 비해 부패네트워크가 약하고 뇌물수수 방법 등에 있어서 사회화가 덜 됐기 때문이다.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