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마니아만 25만명 육박...파이프 탐사 . 항공촬영 등 다목적 활용

지난 9월 경기도 김포에서 1,000여명의 관중이 참여한 가운데 박진감 넘치는 카레이스가 벌어졌다. 출전차량은 모두 60여대. 속도전은 물론이고 각종 장애물을 돌파하는 기상천외한 운전술을 뽐내느라 불꽃이 튀었다. 물론 실제 자동차경주는 아니다. 이른바 ‘KMRCA’라 불리는 무선조종장난감자동차 레이스다.남자아이를 둔 아버지라면 원격조종기로 움직이는 장난감자동차를 한 번 이상 샀을 것이다. 원격조종은 주파수교환을 이용한 무선조정장치인 ‘RC’(Radio Control)를 통해 이뤄진다. 이런 종류의 장난감은 자동차, 보트, 헬리콥터 등을 비롯해 수백가지가 넘는다.심지어 제트엔진을 장착한 RC제트기까지 출현했을 정도다. 이런 RC장난감에 적용된 첨단기술은 주파수 송수신말고도 많다. 차체나 기체 같은 동체제작에 티타늄이나 카본 같은 첨단소재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런 까닭에 RC장난감가격은 어린아이들의 용돈으로 구입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유럽산 RC자동차의 경우 비싼 것은 섀시, 엔진, 조종기를 포함해 한 대에 600만원을 호가한다. 국내에서 시판 중인 경승용차보다도 비싼 셈이다.아카데미과학·하이텍RCD 중심 수출 주도몇몇 마니아들 사이에서 수입품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한 RC모델시장은 지난 85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대표적인 업체가 프라모델 전문업체인 아카데미과학이다. 이 회사는 그동안 RC모델 제품의 생산량을 꾸준히 늘려 현재 전체제품생산량의 25%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기존 주력제품인 프라모델보다 훨씬 더 고부가가치 아이템이기 때문이다.성능도 유럽이나 일본제품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전체생산량의 40% 정도를 수출하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 15년 동안 이 회사가 판매한 RC모델은 25만대 정도나 될 만큼 국내 RC모델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국내 RC자동차경주대회를 후원하며 계속해서 수요층을 넓혀가고 있다.또 다른 국내 RC모델 전문업체인 하이텍RCD는 국내 최대 RC모델 송수신기 및 서보, 전자변속기 제조업체로 손꼽힌다. 동체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RC모델의 핵심기술인 송수신기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현재 전체생산량의 90% 가까이를 수출하고 있을 정도다.머치모아는 RC모델용 매치드배터리, 모터 등을 자체생산하는 RC전동차 전문메이커다. 로코맥스는 RC용 충전기와 방전기를 생산한다. 나노시스템은 RC카용 속도측정장치인 RC미터를 개발한다.현재 국내 RC모델 시장규모는 연간 150억원 정도. 순수 국내 업체보다 일본제품을 들여와 파는 총판업체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거대 RC 및 프라모델생산업체인 타미야의 한국총판인 한국타미야를 비롯해 역시 일본의 RC 전문 메이커 교쇼의 한국총판인 한국모형이 대표적이다.이밖에 요코모, 피코, 노바로시, 팀로시 등의 한국총판인 갑산하비와 서펜트사의 한국총판인 하비몰, 일본의 RC메이커 HPI의 한국총판인 TSD 등이 있다. RC모델에 적용되는 부품은 전세계적으로 그 규격이 표준화돼 있어 완제품이 아니더라도 부품 하나만 잘 만들어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아카데미과학의 이지영 RC사업부 팀장은 “경기용 RC자동자 타이어 하나만 봐도 하루에 수십만원어치를 써야 한다”며 “이탈리아의 GRP사의 경우 RC모델용 타이어만으로 매년 12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팀장은 또 “현재 상당량의 RC모델 생산기지가 대만 등지로 옮겨가고 있다”며 “국내 업체들도 자체 기술을 계속 개발해 첨단장난감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차세대 첨단산업 이끌 견인차로 각광세계 RC모델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이 약진하는 가운데 기존 장난감시장에도 RC기술이 접목돼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미 미니카시장에도 RC바람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일본 장난감제조업체인 토미사의 경우 리모컨으로 달리는 미니카 ‘비트차지’를 출시해 올해 초까지 무려 100만대나 팔았다.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히트작이 없는 게 사실이지만 현재 보유하고 있는 RC기술을 취미용 장난감에 잘만 적용하면 그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실제로 이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상황이 지난 5월30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졌다. 월드컵 전야제 때 공식행사를 마무리하는 이벤트로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들이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이 비둘기는 사실 살아 있는 새가 아니라 RC기술로 움직인 ‘사이보그새’였다.국내 항공벤처기업인 뉴로스가 마이크로엔진을 만드는 기술력에 항공기술을 접목한 RC모델이다. 김승우 뉴로스 사장은 “새와 곤충의 날갯짓은 기존 고정익 비행기나 헬리콥터보다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며 “날개를 펄럭여 공중에 뜨며 자유로운 방향전환과 고도조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이 업체는 2년 가까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마침내 취미용 완구제품 수준의 로봇새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시험비행 도중 진짜 새로 착각한 다른 새들이 달려들어 부리로 쪼았을 정도다. 이 로봇새는 홍콩과 뉴욕 등지에서 열린 토이로봇전시회에 출품돼 외국바이어들로부터 격찬을 받기도 했다.항공대, 세종대 등 RC 동호회 회원들이 로봇새를 날려본 결과 모형비행기에 비해 훨씬 짜릿한 재미를 느꼈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런 이유로 일반 판매를 앞두고 벌써부터 제품 주문이 밀려 있는 상태다.일각에서는 이런 RC장난감이 첨단산업을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장난감 전문업체인 토이매니아몰의 정동욱 사장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거나 접근이 위험한 공간을 탐사하는 데 RC자동차를 이용할 수도 있고, 항공촬영에 사이보그새 같은 RC비행체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