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아이템 수백만원에 거래되기도...규제책 마련 시급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한 군부대. 휴가를 나간 이등병이 복귀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 군당국이 사병을 찾은 곳은 집 근처 PC방. 사회에서 온라인 게임을 즐겼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해당 게임 아이디를 역추적해 체포할 수 있었다.인터넷상에서 아내나 애인의 나체사진을 회원들끼리 교환하는 일명 ‘사진 스와핑’을 한 동호회가 경찰에 적발됐다. 공무원과 학원장 및 대학생 등 17명으로 구성된 사진동호회 회원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음란사진동호회를 개설한 뒤 자신들의 아내와 애인의 나체사진 및 성관계 사진을 전시,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국내 초고속인터넷서비스 가입자가 1,000만명을 돌파했다. 인구 100명당 17.16명 수준으로 2위인 캐나다의 8.4명에 비해 2배가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치인 2.9명보다도 6배나 많다. 하지만 이렇게 막 뚫린 정보고속도로로 인해 생기는 피해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올해 초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일어난 국내 사이버 범죄는 2000년 2,444건에서 지난해 3만3,289건으로 무려 13배가 증가했다. 이중 1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44%라는 점이 더욱 놀랍다.이미 온라인게임에 이용되는 사이버아이템이 실제 오프라인에서 개당 수백만원에 거래되고, 날이 갈수록 인터넷 도박사이트는 인기를 더하고 있다. 이렇게 블랙인터넷이라 불리는 인터넷의 어두운 그림자는 이제 기존 인터넷의 순기능까지 갉아먹고 있는 게 현실이다.슬럼화되는 인터넷 카페‘손님 90% 이상이 (성관계를) 원하는 손님이라 (2차가) 안되는 언니들은 좀 힘들어요. 호텔을 끼고 있어 대부분 손님들이 위(호텔)로 가기 때문입니다.’서울 명동의 모 룸살롱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유흥업소 관련 카페에 올린 구인광고다. 11월 현재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만 유흥업소 관련 카페 40여개가 운영되고 있다. 이중 한 카페는 무려 3,000명이 넘는 회원들이 가입해 공개적으로 유흥업소의 구인구직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단순히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는 것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며 “관련 조항법규도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인터넷 커뮤니티는 국내 오프라인 모임의 활성화를 가져다줄 정도로 인터넷 순기능의 대명사 역할을 했다. 과거 인터넷 동창회 모임 아이러브스쿨이 평소 뜸했던 동창들간의 소식을 전파해주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최근 커뮤니티가 급증하면서 불법적인 온라인 모임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됐다.익명성을 토대로 자살, 스와핑(배우자를 바꿔 성관계를 가지는 행위), 모방범죄 등 사회의 일탈을 꿈꾸는 세력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창구 역할까지 떠맡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커뮤니티가 오프라인 모임으로 연결된다는 데 있다.얼마전 회사원 안모씨는 ‘30대 독신자 클럽’이란 생소한 인터넷 카페의 정기모임에 참석해 황당한 일을 겪었다. 카페 내 채팅창에서 만나 급작스레 번개(즉석만남)로 연결됐다. 하지만 모임 분위기는 온라인상의 분위기와 딴판이었다.즉석에서 눈이 맞은 남녀는 주위사람들이 낯뜨거워할 정도의 스킨십을 벌였고, 회원 중 한 남자는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노골적으로 구애공세를 펼쳤다. 더욱이 자신에게도 한 여성이 허벅지에 다리를 올리는 등 성추행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 급기야 자리를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성인 2명 중 1명은 친구와 음란물을 돌려보고, 10명 중 최소한 1명은 직장에서 인터넷 음란사이트를 본다. 지난 11월7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서울 경기지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유해문화 노출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한 관계자는 “사실 음란사이트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문제는 이제 음란물을 보는 것을 아무도 범죄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밝혔다.최근 이런 음란사이트들이 어린이들에게까지 퍼지고 있다. 음란물도 과거 ‘평범한’ 성인물 위주에서 최근에는 선진국에서는 최악의 범죄로 여기고 있는 아동 포르노사진도 심심찮게 적발되고 있다. 올해 국내 사이버수사대에 적발된 음란사이트 운영자는 고등학생, 중학생, 심지어 모자까지 등장했다.성인 중 13% 직장에서 음란물 훔쳐봐국내의 법규를 피해 해외에 서버를 두고 국내 네티즌 등을 상대로 음란물을 제공하는 한글 포르노사이트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 9월 검찰이 ‘한국인터넷성인문화협회’를 통해 현황을 파악한 결과 2001년 1월 4∼5개 정도였던 해외 한글 포르노사이트가 지난 8월 현재 202개로 폭증한 것으로 집계됐다.경남 거제에 살고 있는 김상은씨(30ㆍ가명)는 한 달째 PC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잠은 피곤할 때 의자에 앉은 채 자고, 식사는 PC방에서 사먹을 수 있는 용기면과 ‘핫바’ 등으로 때우고 있다. 김씨가 빠진 것은 국내의 한 인터넷 포커사이트.처음에는 재미였지만 이제는 생활이 됐다. 원래 국내 굴지의 조선소에 일했던 엔지니어였지만 한 달 전 회사에 사표를 낸 후 아예 PC방에 눌러앉았다. 지금도 회사동료들이 PC방까지 찾아와 복귀를 권유하고 있지만 복귀할 생각은 전혀 없다.온라인게임 중독 수위 문제가 불거지면서 온라인게임의 아이템 현금거래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온라인게임에 사용되는 아이템들은 대부분 아이템만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사이트에서 이뤄진다. 아이템에 따라 적게는 수만원에서 많게는 800만원이 넘게 거래된다.이들 거래 사이트는 법적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에 아이템의 현금화가 손쉬워 게임의 중독성을 더하는 결과를 낳았다. 리니지 사용자 중 실제로 리니지게임을 직업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회사처럼 4~5명이 조그만 ‘작업장’에 모여 하루 종일 리니지를 한다. 각종 아이템을 수집, 현금화해 수익을 낸다.이렇게 블랙인터넷이 인터넷 자체의 순기능까지 잠식한 데는 업체, 사용자, 정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사이버상의 트렌드에 대해서 정부나 업체의 경우 아무도 나서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딜레마에 빠진 인터넷 designtimesp=23203>의 저자 홍윤선 사장은 “일탈현상이나 범죄는 음지나 회색지대에서 주로 생기는 것처럼 인터넷도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며 “정부, 업체, 전문가가 나서서 인터넷 공간에 적합한 행동윤리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돋보기 / 기로에 놓인 리니지폭력성 비난하고 다른쪽선 상주고 ‘아리송’지난 10월17일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 대해서 18세 이상이 이용 가능하다는 ‘성인용’ 판정을 내렸다. 영등위측은 “리니지의 경우 PK(게임 중 상대 캐릭터를 죽이는 행위)에 의한 아이템 획득 시스템, 게임 방법 자체가 청소년에게 맹목적인 폭력성과 사행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이에 반해 지난 11월4일에는 온라인게임 업체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가 제1회 대한민국 문화콘텐츠 수출대상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2001년 1월부터 2002년 6월30일까지 해외 진출한 문화콘텐츠 제작 업체를 대상으로 수출실적과 신규시장 진출 노력 등을 감안해 선정했다고 말했다. 실제 엔씨소프트는 같은 기간 동안 746만달러(약 100억원)의 수출실적을 올렸다.최근 한 달새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둘러싸고 터져 나온 이 두 사건은 딜레마에 빠진 인터넷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중독성과 사이버 아이템의 현금거래로 지탄받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세계 최고 초고속통신망을 활용한 수출효자 품목으로 손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온라인 게임의 중독성을 제작사에만 돌려야 하는 데는 고개를 흔든다.실제 리니지 유저인 임성진씨는 “리니지에 사용되는 PK나 환경들이 폭력적이라고 한다면 우스운 일”이라며 “다른 PC게임이나 엽기 영상물에 비해 오히려 양호한 편”이라고 못박는다.하지만 리니지의 사회적 파급효과와 사이버 아이템의 현금거래 문제점은 여전히 풀 수 없는 숙제로 남아 있다. 리니지의 실제 사용자는 220만명, 최대 동시 접속자수는 12만명에 이른다. 이중 30%가 미성년자다.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실생활에서 아이템이 현금거래 되는 것이지만 이용자들이 오프라인에서 거래하는 것까지 제작자가 저지하는 것은 힘들다”며 “하지만 여태까지 이렇게 진행된 데는 사회적인 책임을 일부 소홀히 한 점이 있다”고 밝혔다.한 전문가는 “여기까지 오게 된 일차적인 책임은 제작사가 만든 게임환경에 있다”며 “하지만 여태껏 방관하고 있던 정부와 대안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공간이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