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부총리 측 “서울시장 후보들 도와달라는 요청 요지만 유쾌한반란·‘영·리해’ 활동 주력”
[홍영식의 정치판]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간 서울시장 단일화 성사의 정치적 의미는 ‘4·7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오 후보가 안 대표와의 단일화 경쟁에서 이긴 뒤 내세운 ‘개혁 우파 연대 플랫폼’은 내년 대선까지 연결된다. 물론 당장은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위한 연대 구상이지만 이게 대선까지 이어지면 ‘반문재인’ 전선의 중심축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오 후보는 단일 후보로 선출된 직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석열 전 검찰총장, 홍정욱·금태섭 전 의원 등 유능하고 정의로우며 합리적인 중도 우파 인사들을 넓게 삼고초려해 명실공히 든든한 개혁 우파의 플랫폼을 반드시 만들어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내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분들과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소통해 왔다”며 “미리 전화를 통해 도와주겠다고 언질을 준 분도 있다”고 했다.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윤 전 총장은 당장 서울시장 후보 지원 등 활동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과 가깝게 지내는 한 법조계 인사는 “오 후보 측의 요구가 있지만 윤 전 총장이 당장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선거가 끝나고 생각이 정리된 뒤 정치권 상황을 봐 가며 6~7월께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제3지대로 갈지, 국민의힘에 들어갈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유기준 전 의원은 “국민의힘에 들어가 장악해야 한다. 제3지대에서 대선 주자가 성공한 예가 없다”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정치 아마추어들이 제3지대에서 도모하다가 실패했다”고 했다.
“윤석열·김동연 함께 개혁 우파 연대 플랫폼 만들자”
다른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중도 우파를 표방하는 오 후보가 서울시장 경선에서 나경원 전 원내대표를 꺾으면서 기존 국민의힘으로는 확장성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했다. 오 후보가 ‘개혁 우파 연대 플랫폼’을 거론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윤 전 총장과 경제 전문가인 김동연 전 부총리, 오 후보, 안 대표 등이 제3지대에서 힘을 합친다면 이전 혈혈단신으로 뛰다시피한 반 전 총장과 고건 전 국무총리의 실패한 제3지대와는 상황이 다를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럴 경우 뚜렷한 대선 주자가 부각되지 않는 국민의힘에 외부 충격을 줘 소속 의원들을 흡수할 수 있는 상황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제3지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보수적 성향의 국민의힘과 중도 성향이 결합되면서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그 한 축으로 김 전 부총리가 거론된다. 그는 대선 주자로서 요구받는 조건들을 두루 갖췄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 전문가다. 현재 거론되는 유력 대선 주자 가운데 경제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 점은 그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는 요인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경야독 끝에 입법고시와 행정고시 모두 합격해 관료의 성공 신화를 이룬 것은 대선판에 먹힐 만한 매력적인 스토리다.
정치권의 잇단 러브콜에 대한 그의 의중이 궁금했다. 그의 생각을 듣기 위해 지난 3월 24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 지하1층에서 열린 ‘영(Young)·리해(Understand)’ 행사장을 찾았다. ‘영·리해’는 김 전 부총리가 주도하는 사단법인 유쾌한반란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젊은이들의 꿈과 경험, 실패와 좌절, 성취를 경청하고 공감하는 등 소통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김 전 부총리에게 정치의 ‘정’자도 꺼내지 못했다. 그의 관심이 온통 ‘영·리해’ 행사에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행사 인사말을 통해 “우리 사회에 소통과 공감이 너무 부족하고 증오와 갈등의 언어만 난무하는데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기성세대들이 배우려고 한다. 젊은이들이 선생이고 우리(기성세대)가 학생”이라고 했다. 이어 “기성세대와 청년의 소통을 넘어 지역 간, 성별, 영·호남 지역 간, 보수 진보 진영 등을 뛰어넘는 이해와 공감을 통해 소통의 폭을 넓혀 나가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젊은이들이 선생, 우린 학생…소통 통해 배우려 한다”
김 전 부총리가 정치에 대해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사단법인(유쾌한반란) 활동을 함께하면서 그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지인에게 물어봤다.
▶오 후보가 ‘개혁 우파 플랫폼’ 구상을 밝힌데 대해 김 전 부총리는 어떤 생각인가.
“오 후보가 그런 주장을 하면서 김 전 부총리를 찾아뵙겠다고 하고 계속 연락이 온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측에서도 도와달라고 한다. 양쪽으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지만 김 전 부총리는 지금 하고 있는 유쾌한반란 ‘영·리해’ 활동을 위해 초지일관 뚜벅뚜벅 가야 한다는 생각인 듯하다. 오 후보가 윤 전 총장과 김 전 부총리와 직간접적으로 의사 소통하고 있다고 하는데 연락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왜 이렇게까지 선을 긋고 있나.
“김 전 부총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후보들끼리 이러니 저러니 한다. 김 전 부총리는 거기에 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요청에 반응하면 어떤 식으로 얘기하든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서울시장 차출에 대해 거절했다. 제3지대 대선 주자로도 거론된다. 김 전 부총리의 생각은 뭔가.
“김 전 부총리는 지금의 진영 싸움 모습이 우리 정치 발전이나 국가 발전에 좋지 않다고 보고 있다.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고 사회 담론과 미래 발전을 위한 얘기를 하지 않으면서 진정한 진보·보수의 가치가 어디로 가고 없다는 것이다. 어느쪽이든 환골탈태해 제대로 된 가치와 거기에 따른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들과 소통해야 하는데 어느쪽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전 부총리가 책을 쓰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인가.
“34년 공직 생활 경험을 토대로 반성과 성찰을 하면서 국가 비전 등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으로 알고 있다.”
김 전 부총리는 여야로부터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달라는 요청도 받았지만 지난 1월 거절한 바 있다. 당시 그가 쓴 페이스북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서울시장 출마 권유와 요청을 여러 곳, 여러 갈래로부터 받았습니다. 지난 번 총선 때보다 강한 요청들이어서 그만큼 고민도 컸습니다. 여러 분이 어느 당, 중도 확장성 등을 이야기했지만 저의 고민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직(職)이 아니라 업(業)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여전히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답답한 마음과 함께 고민이 더 깊어졌습니다. 우리 정치가 언제까지 이기기 위한 경쟁에 매몰되어 싸워야 하는지. 국민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정책 경쟁의 장, 그리고 진영논리를 깨는 상상력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선거 때마다 새 인물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두 명 정도의 새 피 수혈이 아니라 세력 교체에 준하는 정도의 변화가 있어야 우리 정치가 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우리 정치에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판을 짜는 ‘경장(更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정치와 정책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 참여하는 생산자로 나서야 합니다. 동시에 사회 각 분야에서 유능하고 헌신적인 분들이 힘을 합쳐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뛰어난 우리 국민의 역량을 모을 리더십을 만들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사회변화에 기여’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나겠습니다.”
많은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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