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그룹 중 유일하게 복수 부회장 체제 이어 와
내년 ‘포스트 김정태’ 선임 앞두고 관심 집중

[비즈니스 포커스]
함영주·이은형·지성규 하나금융 부회장. [사진=한국경제신문·연합뉴스 등]
함영주·이은형·지성규 하나금융 부회장. [사진=한국경제신문·연합뉴스 등]
금융지주 회장의 전성시대다. 연임이 관행처럼 굳어진 데다 지주사의 계열사 통제력이 강해지면서 회장의 그룹 내 권한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차기 회장 후보군에 그룹 안팎으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단이 주목받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나금융은 1년 후 ‘포스트 김정태’를 낙점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팎의 변수들로 후임자는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부회장에 오른 3명(함영주·이은형·지성규)이 유력한 후보군으로 예상된다. 김정태 회장도 지주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 주요 금융그룹 중 부회장직을 두고 있는 곳은 하나금융과 KB금융(2020년 말 신설)뿐이다. 더구나 복수의 부회장이 있는 곳은 하나금융이 유일하다. 유독 하나금융이 이처럼 부회장단은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금융지주의 부회장’ 역사를 되짚었다.

2008년 매트릭스 조직 도입하며 부회장단 신설

하나금융은 2005년 종합 금융그룹으로 발돋움한 이후 2008년부터 부회장직을 신설했다. 승부사로 정평이 난 김승유 전 회장이 계열사 간 협업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매트릭스 제도’를 도입하면서였다. 당시 씨티은행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외국계 금융사가 이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한국의 금융권에선 하나금융이 처음 시도한 것이다.

매트릭스 조직은 지주회사 산하의 개별 법인을 현 상태로 유지하되 주요 업무를 전담 또는 수행하는 고객군별 그룹(Business unit : BU)을 지주회사에 설치해 각 계열사의 관련 사업을 총괄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조직을 가동하면 지주사는 그동안 법인 단위로 관리해 왔던 그룹 내 경영 평가를 BU 단위로 바꾼다. 법인이 달라도 연관성이 있는 사업부문은 법인 내 조직보다 더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 지도록 하는 것이다.

김승유 전 회장은 지주 부회장단이 기업금융BU·개인금융BU·자산관리BU를 담당하도록 했는데 인사와 예산을 행사하는 막강한 권력을 줬다. 이순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매트릭스 조직 체계는 유연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이 장점으로 꼽히는데 부문 수장에게 인사권이 있으면 추진력도 더해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언뜻 보면 김승유 전 회장의 권력이 분산되지 않을까 싶은데 반대 결과가 나왔다. 기존 지주사 체제에선 개별 법인의 대표나 이사회의 권한도 무시할 수 없어 김승유 전 회장의 권한 행사가 제한적이었다면 조직 개편 이후 김승유 전 회장의 1인 체제는 더 굳건해졌다. 3개 BU 부회장이 인사와 예산에 있어 전권을 행사한다지만 회장의 총괄 역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부회장단은 김승유 전 회장 시절엔 각 계열사도 겸직하고 등기 임원으로도 등록돼 소위 말해 ‘잘나갔다’. 김정태 현 회장이 당시 하나은행장과 개인금융BU 부회장을 겸직하며 결국 회장 자리에 올랐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정태 회장은 취임한 후 한때 부회장직을 폐지하기도 했다. 2015년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통합을 앞두고 김정태 회장을 중심으로 권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태 회장은 6개월 만에 부회장직을 부활시켰다. 외환은행 노조와의 갈등을 피하면서 두 은행의 직원들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이때 하나금융은 김병호 하나은행장과 김한조 외환은행장에게 각각 부회장직을 맡겼고 함영주 현 부회장을 KEB하나은행 통합은행장으로 올렸다.
하나금융지주는 왜 부회장이 3명이나 있을까
부회장,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 꼽힌다?

임기를 1년 앞둔 김정태 회장의 가장 큰 숙제는 ‘포스트 김정태’ 찾기다. 하나금융이 1년 안에 실력과 비전 등을 모두 갖춘 후보자들을 추려내고 승계 작업까지 안정적으로 해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면서 부회장단에 이목이 다시 쏠리고 있다. 신설 당시 부회장단의 역할은 회장 후보군의 평가대가 아니었지만 어느샌가 그룹 안팎에서 그런 시각이 커졌다.

사실 함영주 부회장이 2018년부터 단독 부회장으로 그룹 안살림을 맡으며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자로 꼽혀 왔는데 소송 및 금융 당국의 징계 등 법률 리스크를 안게 되자 하나금융은 2020년 부회장단을 3명으로 꾸렸다. 올해 역시 3인 체제다. 함영주·이은형·지성규 부회장은 각각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글로벌·디지털 사업을 이끈다.

그럼에도 금융계에선 함영주 부회장이 1순위 회장 후보로 평가된다. 함영주 부회장이 김정태 회장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ESG 사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은 ESG 경영을 이사회 차원의 주요 핵심 사안으로 격상시켜 이사회 내 ESG 관련 위원회인 지속가능경영위원회와 소비자리스크관리위원회를 신설했다. 또 2030년까지 채권 발행·여신·투자 등을 포함해 총 60조원의 ESG 금융을 조달하기로 했다. 4월 22일 이런 내용을 담은 ESG 중·장기 추진 목표 선언식에 김정태 회장과 함영주 부회장이 나란히 등장하기도 했다.

한편 하나금융의 3인 부회장 체제는 금융권에도 영향을 줬다. KB금융은 2020년 말 조직 개편을 통해 부회장직을 신설하고 KB손해보험 대표를 지낸 양종희 부회장을 선임했다. KB금융이 지주 내 부회장직을 만든 것은 2010년 이후 10년 만이다. 뚜렷한 2인자가 없는 우리금융도 수석부사장직을 신설했다. 2006년 이후 14년 만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부회장 자리가 회장으로 가는 프리패스권은 아니지만 차기 회장 후보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