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 경로 주행 등 자율주행 상용화에 유리…B2B 시장으로 대량·일괄 계약 가능해

[테크 트렌드]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8년 8월 21일 운송용 대형 트레일
러 자율주행차량으로 의왕-인천 간 약 40km 구간 고속도로 자율주행에 성공했다. /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8년 8월 21일 운송용 대형 트레일 러 자율주행차량으로 의왕-인천 간 약 40km 구간 고속도로 자율주행에 성공했다. / 현대자동차 제공]


“다음을 생각하라. 어떤 일을 하는 데 잘하고 있다면 거기에 오래 머무르지 말고 다른 놀라운 일을 찾아 해야 한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 내라.”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전 세계 매출 1위, 자타 공인 물류 공룡인 월마트가 자율주행차 업체 크루즈에 27억5000만 달러를 추가 투자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월마트는 이미 구글 웨이모,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자율주행 부문 선두 그룹과 오래전부터 투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물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월마트는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있다. 바로 ‘자율주행 배송 트럭 시스템’이다.

배송 트럭 시장이 자율주행에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또 최근 자율주행차가 가장 먼저 상용화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배송 트럭 시장이 손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 기술적 구현에 용이

고속도로를 따라 쭉 붙어 군집 주행하는 트럭들은 같은 길을 반복적으로 다닌다. 주행 환경이나 경로에 특이점이나 위험 상황이 갑자기 발생할 일이 적다. 도심처럼 인간, 내 차, 다른 차, 동물, 사물, 교통 시스템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가 빅데이터로 기존에 학습하지 않은 상황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예측 가능하지 않은 일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자율주행 구현이 용이하다. 교통 빅데이터의 양과 질도 도심 차보다 덜 요구되고 변수가 적다. 제어하기가 쉽다는 것은 개발비가 도심 자율주행차나 자율주행 로봇에 비해 적게 든다는 뜻이다.

화물 트럭은 승용차에 비해 차체가 높고 부피도 크다. 자율주행에 필요한 카메라·라이다·레이더 센서를 높은 차체에 설치하기 때문에 넓은 지역을 모니터링하고 커버할 수 있다. 자율주행을 위한 교통 빅데이터를 보다 많이 빠르게 수집하고 분석하고 공유할 수 있으므로 자율주행 기술 구현 수준도 제고할 수 있다.

2. 운영비 절감 효과

자율주행이 접목됐을 때 개인 승용차 대비 운영비 절감 효과는 트럭 쪽이 월등하다. 전체 트럭을 모두 자율주행차로 하거나 혹은 운전자는 선두 차에만 있고 그 뒤에 따라오는 수십여 대의 트럭들만 자율주행차로 운영해도 인건비는 대폭 줄어든다. 운전자가 불필요하니 인건비 고려 없이 24시간 365일 운행할 수 있다.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단순 군집 주행하는 트럭들은 연료도 적게 소요된다. 효율적인 가감속과 변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로 통신하며 적당한 차 간 간격을 유지하기 때문에 트럭이 받는 공기 저항도 최소화된다. 차 간 거리가 효율적으로 조정되니 도로 정체도 없어진다. 전체적으로 에너지 소비가 줄기 때문에 환경 보호에도 기여할 수 있다.

사람·차·사물·교통 시스템이 복잡하게 얽히지 않은 단순 배송 노선의 자율주행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운전하는 것보다 안전하다. 끊임없이 서로 통신하며 운행하고 프로그래밍된 대로 방어 운전을 하므로 사람처럼 졸음 운전, 과격 운전, 장거리 운송에 따른 피로 사고나 우발사고가 없다. 자연히 사고 대응 비용, 보험 처리 비용, 유지·보수 운영비 역시 자율주행 배송 트럭이 획기적으로 줄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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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큰 시장 규모, 큰 이윤 창출

대형 배송 트럭 물류 시장은 시장 규모 자체가 크다. 세계 최대 트럭 물류 시장인 미국은 국토가 넓어 전미 물류 중 트럭 수송이 중량으로 72.5%를 차지한다. 미국 전체 운송비의 80% 이상이다. 사람이 운전하던 내연기관 트럭이 자율주행차로 교체된다는 것 자체도 이미 물리적으로 큰 비즈니스가 된다. 자율주행차 적용으로 이 시장의 효율성이 더 높아지고 핫해지고 관련 부가 서비스가 넘치게 된다면 워낙 기본 모수가 큰 시장이기 때문에 이윤은 복리로 불어날 것이다.

게다가 배송 트럭은 물류 업체와 자동차 메이커 간의 B2B 시장이다. B2B 특성상 한 번 계약하면 일괄적으로, 대량으로 비즈니스가 이뤄진다. 자율주행 배송 트럭에 필요한 제품으로는 통신망 인프라·카메라·센서·하드웨어·소프트웨어가 있다.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으로 변화하면서 새로운 시장도 생겼다. 자율주행차 내 콘텐츠 서비스, 차 보험 서비스, 기술 서비스도 판매-구매-사용-유지·보수 등의 수요가 발생한다. 이들이 모두 일괄적으로, 대량으로 신속히 상용화돼 시장에 쏟아진다고 생각해 보라. 자율주행과 관련된 제품·서비스 시장 모두에 윈-윈인 엄청난 규모의 비즈니스다.

4. 규제로부터 자유

정부 규제 당국으로서는 자율주행 승용차, 자율주행 로봇은 안전, 도덕적 이슈, 사회적 이슈 등 상세하게 짚고 넘어갈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정부, 소비자, 자동차 메이커, 자동차 부품 메이커, 환경 단체, 언론이 합의점에 도달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오래 그리고 많이 든다. 하지만 자율주행 배송 트럭은 이 문제에서 자유롭다. 상대적으로 심플한 로직으로 규정을 만들고 상용화도 보다 빠를 수 있다.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화물이기 때문에 혹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사회적 여파가 적어 기술 시도에 심적 부담도 덜하다. 아직 베타 상태의 기술을 과감히 시도하고 빠르게 피드백 받는 필드 테스트를 통해 완성도를 확실히 높이고 빠르게 상용화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여러 연관 산업들을 이곳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40톤 트럭이 자율주행이 가장 먼저 결합될 차종이다.” 테슬라가 2020년 4분기 실적 발표에서 밝힌 얘기다. 업계의 핫한 먹거리는 귀신같이 찾아내 선점하기로 유명한 기획사가 데뷔 조를 정했다. 배송 트럭을 주목하라.

정순인 LG전자 VS사업본부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