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민의 진짜 요구는 ‘안전’…차량 이동 시간 동선 제한하거나 전동 카트 활용 가능
[경영 전략] “들어가야 합니다.” vs “들어갈 수 없습니다.”이해관계가 다른 두 집단이 팽팽히 맞섰다. 택배 차량의 아파트 단지 진입을 둘러싼 택배 회사와 입주민 간의 갈등이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다음날 집 앞에 상품을 가져다주는 익일 배송을 넘어 최근에는 당일 배송, 밤에 주문해도 아침에 집 앞에 와 있는 새벽 배송까지 제공되고 있다.
빠른 배송에 힘입어 누구나 온라인 쇼핑을 애용하게 됐고 자연히 택배는 삶의 일부분이 됐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단순히 두 집단 간의 힘 싸움으로 볼 수는 없다. 택배 갈등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풀면 좋을지 살펴보자.
왜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할까
택배 갈등이 시작된 원인부터 분석해 보자. 애초 원인 제공은 아파트가 했다. 택배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지하 주차장을 만들어 두고 단지 내 차량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아파트 측에서만 풀어야 할까.
“설계가 잘못됐고 그럼에도 자기만 생각하는 입주민들이 문제야”라고 해 버리는 순간 갈등 해결은 물 건너간다.
실제 많은 갈등은 상대에 대한 정보 부족 때문에 커진다. 의도가 있는 괴롭힘이 아니고서는 서로가 가진 정보를 주고받으면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정보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다시 보자. 아파트가 요구하는 차량 출입 금지의 이유는 간단하다. 안전이다.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반려동물과 산책하기 위한 공간에 커다란 택배 차량이 오가는 게 위험하다는 이유에서 출입을 막는다. 그래서 이들은 지하 주차장에도 출입이 가능한 저상 택배 차량으로 교체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택배 회사의 관점에서 정보를 찾아보자. 택배라는 것은 집 앞 배송이 기본이다. 이를 위해 당연히 차량이 필요하다. 그런데 차가 들어갈 수 없다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 측이 제시한 저상 차량으로 교체하려면 3가지 문제로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첫째는 효율성이다. 적재 공간이 좁아지니 한 번에 배송할 수 있는 양이 줄어든다. 둘째는 업무 강도다. 저상 차량에선 택배 운전사가 허리를 구부린 채 물건을 넣고 빼야 한다. 신체적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다. 셋째는 비용이다. 차량 구입에 택배 운전사의 개인 비용이 나갈 수밖에 없어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다.
양측의 정보를 분석하면 문제는 이렇게 정리된다. 아파트의 지상 환경을 ‘안전하게 유지’하면서 택배 운전사의 ‘업무 환경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문제를 분석하면 고민의 방향이 달라진다. 더 이상 차량 출입 여부가 문제가 아니게 된다. 갈등을 대할 때의 시작은 이렇게 해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욕구 분석’이다.
갈등 당사자들이 표면적으로 주장하는 요구 사항에 집착하지 말고 그 아래 깔려 있는 ‘진짜 원하는 것’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게 서로에 대한 정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우선 갈등하는 상대에게 ‘나쁜’ 인상을 갖고 있어 문제다. 그래서 정보를 들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때가 많다.
또 정보를 들었다고 해도 상대 입에서 나온 것은 믿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편향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다른 이유는 ‘지고 싶지 않아서’다. 갈등 해결 과정을 이기고 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정보를 오픈하는 것을 꺼린다. 상대의 제안에 대해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거부하기도 한다. 갈등 이슈를 ‘공동’의 문제로, 갈등 해결 단계를 공통의 ‘이익’을 키우는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유된 정보를 기반으로 ‘욕구’에 집중해야
상대에 대한 편향을 버리고 공통의 이익을 만들려는 과정으로 접근하면 서로 공유된 정보를 기반으로 ‘욕구’에 집중해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낼 수 있다. 대안을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 두 가지를 알아보자.
첫째 방법은 안건의 속성을 ‘쪼개기’ 하는 것이다. 쪼개기의 대표적 사례는 ‘레몬 갈등’이다. 두 아이가 딱 하나밖에 없는 레몬을 두고 서로 갖겠다고 싸우고 있다. 이를 본 부모가 한마디 한다.
“싸우지 말고 서로 반씩 나눠 가지면 어떻겠니.”
하지만 둘 다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버틴다. 이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갈등 관리가 되는 부모는 아이들에게 “레몬 하나를 다 가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이게 정보를 얻는 과정이다. 그러자 한 아이가 “레몬차를 만들어 먹고 싶은데 하나가 다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다른 아이는 “내일 학교에서 방향제를 만드는데 그 준비물이 레몬 한 개”라고 설명한다.
이 얘기를 들은 현명한 부모는 레몬 한 개가 가진 속성을 쪼갠다. 레몬을 ‘내용물’과 ‘껍질’로 나누는 것이다. 레몬차를 만드는 데는 껍질은 필요 없다. 그래서 이 아이에겐 껍질을 까 내용물만 준다.
그리고 다른 아이에겐 껍질만 준다. 방향제를 만들 때는 껍질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서로 싸울 필요가 없다. 바로 이것이 안건의 속성을 ‘쪼개서’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 원리를 택배 갈등에 대입해 보자. ‘안전 유지’라는 입주민들의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기 위해 ‘시간’을 쪼개면 어떨까.
아이들의 안전이 중요하다면 아이의 이동이 적은 시간에는 차량 이동을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 ‘공간’도 쪼개 볼 수 있다. 아파트 단지 전체에 차량이 다니는 게 안전의 위협 요소라면 택배 차량의 이동 동선을 정할 수도 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려면 단계를 나눠 접근해야 하듯이 갈등도 이슈를 쪼개 보면 답이 보일 때가 있다.
이 방법만으로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둘째 방법인 새로운 ‘안건 붙이기’를 생각해야 한다. 앞선 ‘레몬 갈등’ 사례에선 레몬차를 먹고 싶은 아이에게 만약 ‘목이 아파서’라는 욕구가 있었다면 ‘생강차’라는 대안을 제시해 볼 수 있다.
방향제 만들 준비물이 필요한 아이에게 레몬 껍질이 아닌 ‘귤’이라는 다른 방법을 제시해 ‘준비물 챙기기’라는 욕구를 만족시킬 수도 있다.
택배 갈등엔 어떤 안건을 붙일 수 있을까. 실제 몇몇 아파트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동 카트’가 이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안전이라는 입주민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차량 이동’을 없앴다.
이와 함께 택배 운사들의 ‘업무 환경’을 지켜주기 위해 손수레가 아닌 전동 카트를 지원한 것이다. 애초에 원했던 ‘지상으로는 차가 다니지 않아야 한다’는 요구는 충족되지 않았지만 그 아래 깔린 ‘안전’이라는 욕구를 만족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다.
‘안건 붙이기’는 애초 상대가 표면적으로 요구했던 것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상대로부터 파악된 정보를 토대로 알게 된 욕구에 집중해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다. ‘왜’ 그것을 원하는지에 집중해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갈등이 생겼을 때는 ‘정보’를 찾고 납득할 만한 ‘대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함께하기’다. 앞서 제시한 ‘시간 쪼개기’나 ‘안건 붙이기’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제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한쪽의 이익만을 위한 제안이 아니라 공동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라는 점을 양측이 ‘함께’ 이해할 수 있다. 모두에게 통하는 정답이 아니라 과정을 함께하며 ‘해답’을 찾는 것, 이것이 갈등 관리의 본질이다.
김한솔 HSG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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