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말 이후 두 차례 ‘AI 겨울’ 경험…명확한 비즈니스 모델 고객 가치 필요

[테크 트렌드]
‘환상과 실망의 역사’…인공지능 붐, 이번에는 다를까
인공지능(AI)이 시대의 키워드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AI가 이렇게나 사람들의 기대감을 고조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랫동안 과학자들과 투자자들은 AI에 대한 환상을 품어 왔다. 사람들은 AI라는 환상적인 아이디어에 열광했고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결과가 나오지 않자 그 실망감도 컸다. 그렇다. AI 트렌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AI의 환상과 실망의 역사를 살펴보자.

마빈 민스키가 던진 XOR 문제

1956년 AI 개념의 첫 시작으로 여겨지는 ‘다트머스 콘퍼런스’가 개최됐다. 컴퓨터·인지과학 분야 석학 20여 명이 모여 미래를 예측한 학회에서 당시 다트머스대 부교수였던 존 매커시는 AI를 이렇게 정의했다.

“학습의 모든 측면 또는 지성의 다른 특징이 원칙적으로 매우 정밀하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에 인공적으로 지능을 만들 수 있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AI가 언어를 사용하게 만들고 추상적 개념을 형성하게 하며 현재 인간에게 남겨진 여러 종류의 문제를 해결하고 스스로를 개선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연구할 것이다. 신중하게 선정된 뛰어난 연구자 그룹이 여름 동안 이 문제를 함께 연구한다면 우리는 이 문제들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AI에 대한 다트머스 여름 연구 프로젝트 제안서, 존 매커시, 1955년)

다트머스 콘퍼런스는 브레인 스토밍의 장으로 약 한 달간 운영됐고 다음과 같은 7가지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환상과 실망의 역사’…인공지능 붐, 이번에는 다를까
이 콘퍼런스에 참석한 초기 AI 연구자들은 AI의 잠재력에 대해 높은 자신감과 확신을 보였다. 특히 콘퍼런스 개최에 앞장선 매커시 부교수는 인간의 지성이 정밀하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지능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지적 능력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고 기술 개발도 빠르게 진전되지 않았다. 인간의 지능이라는 것은 쉽게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고 추상적이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실질적인 AI 연구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없었다.

AI의 결과물이란 무엇인가. 현재 수많은 AI 애플리케이션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어 AI가 진짜 무엇인지 헷갈릴 만도 하다. AI는 얼굴을 인식하기도 하고 음악을 듣고 음악의 종류를 맞히며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심지어 사람 없이 자동차가 운행될 수 있도록 돕기까지 한다. 여기에서 얼굴 인식은 인간의 시각 능력을, 음악을 인식하는 능력은 인간의 청각 능력을 모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율주행은 인간의 시각 능력, 의사 결정 능력, 운동 능력 등을 모두 결합한 것이다.

이렇듯 AI라는 기술은 특정 기능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지능은 구체적이지 않고 범용적이고도 다양한 능력을 갖고 있다. 생각해 보자. AI가 구현하고자 하는 지능은 무엇일까. 인간의 이성일까. 아니면 감성일까. 이도 아니면 상상력, 체스 능력, 운동 능력일까.

그러다 보니 뭔가 될 것 같으면서도 결과물을 보면 과연 이게 지능인가 하는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반복된 수많은 과도한 기대와 실망이 AI의 역사가 돼 왔다. 그리고 과도한 실망 뒤에는 한동안 AI에 대한 회의감으로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기간이 두 차례 있었는데, 우리는 이를 ‘인공지능 겨울(AI winter)’이라고 부른다.

1950년대 후반 프랭크 로젠블라트 박사의 퍼셉트론으로 AI 붐이 일기 시작했다. 퍼셉트론은 논리 연산의 기본이 되는 AND와 OR 연산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수많은 연구자들과 투자자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십여 년간 AI에 대규모의 투자가 이어졌지만 AI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1969년 다트머스 콘퍼런스에 참여했던 멤버 중 한 명인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마빈 민스키 교수가 XOR 문제를 제시하며 AI, 특히 퍼셉트론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첫 AI 겨울이 시작됐다.

민스키 교수의 XOR 문제는 간단히 말하자면 퍼셉트론의 선형 모델로는 위와 같은 4가지 점을 하나의 직선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한계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퍼셉트론을 여러 겹으로 쌓아올린 다층 퍼셉트론(MLP : Multi Layer Perceptron)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에 민스키 교수는 다층 퍼셉트론을 학습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지구상에서 MLP를 학습시킬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은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마빈 민스키

이후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폴 웨어보스가 역전파(backpropagation)라는 방법을 발명했고 같은 주제로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도 역전파 관련 논문을 발표한다. 역전파는 다층 구조의 퍼셉트론를 체계적으로 학습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준 알고리즘으로 민스키 교수가 제기했던 XOR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미 꺼진 AI 연구의 불씨를 다시 살릴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기술력 입증해야 겨울 피할 수 있어

기존의 AI 겨울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에게도 다시 AI 겨울이 찾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AI 기술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쪽에서는 투자자의 기대와 현실의 온도 차이를 느끼는 것이 일상이니 말이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AI 연구자들이 모여 있기만 하면 많은 벤처 투자사가 묻지 마 투자를 감행했다. 하지만 2021년 현재는 아무리 뛰어난 AI 기술을 보유했더라도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을 요구한다. 명확한 고객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AI 회사만이 살아남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필자가 속한 뤼이드가 비전펀드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AI 기술이 학습 효과라는 고객 가치를 만들어 냈고 이를 입증했기 때문이다. 이제 AI 기술은 논문에서, 더 나아가 실제 고객에게 전달되는 가치로 그 기술력을 입증해야 한다. 이것이 AI의 겨울을 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믿는다.

송호연 뤼이드 이사(VP of AIO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