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 이 된 플랫폼에 불만 높아…자사 몰 키우고 소비자 직접 판매 안간힘

[비즈니스 포커스]
동원그룹은 ‘동원디어푸드’를 최근 신설 법인으로 설립하고 D2C 강화에 나섰다.
동원그룹은 ‘동원디어푸드’를 최근 신설 법인으로 설립하고 D2C 강화에 나섰다.


동원그룹은 전 계열사의 온라인 사업을 전담하는 ‘동원디어푸드’를 최근 신설 법인으로 설립했다. 동원디어푸드는 동원F&B가 운영하던 식품 전문 온라인 몰 ‘동원몰’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전문 몰 ‘츄츄닷컴’, 동원홈푸드의 신선식품 전문 몰 ‘더반찬&’ 등을 운영하는 사업 주체가 됐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갈수록 커지는 온라인 쇼핑 시장 규모에 발맞춰 자사 온라인 몰의 힘을 더욱 키우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동원디어푸드는 계열사별로 각각 운영돼 온 여러 온라인 몰들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식품 유통 업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소비자 직접 판매(D2C : Direct to Consumer)’ 강화다. D2C는 제조 업체가 쿠팡이나 네이버 같은 거대 유통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직접 온라인 몰을 구축해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동원뿐만 아니라 한국의 주요 식품 업체들이 고객들을 이른바 ‘자사 몰’로 모시기 위한 고민이 내부적으로 한창이다.
이커머스 최저가 경쟁의 피해자
“지금의 온라인 유통 산업이 건강한 생태계를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최근 식품업계의 D2C 강화 배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가 이런 주장을 내놓게 된 이유는 이러했다.

식품 업체가 하나의 제품을 내놓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과 연구·개발(R&D) 비용은 상당하다.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제품을 잘 팔리게 하기 위해선 당연히 쿠팡이나 네이버와 같은 플랫폼에 제품을 입점시키는 것이 필수가 된 시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타난다. 플랫폼이 일종의 ‘갑’이 되고 식품 기업은 ‘을’이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 벌어지는 이커머스 기업들의 최저가 경쟁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식품 업체들은 플랫폼들이 빈번하게 경쟁사보다 싼값에 제품을 납품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쿠팡이나 네이버처럼 힘이 센 플랫폼이 이런 제안을 건네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제조사로서는 큰돈을 투자해 만든 제품을 이런 식으로 판매하고 수수료까지 지불해야 하는 구조가 불편할 따름이다. 또한 그러면 제품을 팔아도 마진이 거의 남지 않아 수익성도 떨어진다.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플랫폼을 거쳐 판매가 이뤄진 제품의 고객 정보나 구매 유형 등의 데이터는 모두 해당 플랫폼이 갖는 구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온라인 데이터에 기반한 마케팅 전략을 펼치려고 해도 실행에 옮기기 힘든 실정이다.

그렇다고 플랫폼만 비난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점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플랫폼이 가진 힘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다”며 “결국 이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사 몰의 힘을 키우는 D2C 전략 강화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D2C를 강화하면 이런 구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유통 경로를 줄여 가격 경쟁력을 제고하고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또 자사 몰에서 이뤄진 소비자들의 구매 데이터를 직접 읽고 분석해 마케팅 전략을 펼칠 수 있고 신제품 개발에도 반영할 수도 있다. 최근 한국의 주요 식품 대기업들이 자사 몰의 영향력 확대에 열을 올리는 배경이다.
“우리도 나이키처럼”…D2C 전략 강화하는 식품사
예컨대 동원몰은 상품 구색을 계속 확대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그러모으고 있다.

현재 동원몰은 동원그룹 계열사에서 만드는 3000여 종의 식품과 식자재뿐만 아니라 생활 주방 용품, 미용 제품, 가전 제품, 유아동 제품에 이르기까지 13만여 종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일종의 오픈 마켓 형태로 진화한 모습이다.

그 결과 2020년 기준 누적 회원 수 100만 명을 넘었고 연간 주문량도 100만 건에 달하는 온라인 몰로 성장했다. 매출 성장세도 가파르다. 동원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동원몰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약 20% 늘었다.
미국에서도 ‘탈아마존’ 움직임Hy(구 한국야쿠르트)의 행보도 이와 비슷하다. 지난해 기존 온라인 몰인 ‘하이프레시’를 ‘프레딧’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면서 큰 변화를 줬다.

유제품·신선식품·건강기능식품뿐만 아니라 화장품·리빙·유아 용품 등 비건·친환경·유기농 상품까지 다루는 종합 온라인 몰로 변신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2020년 68만 명 정도였던 회원 수는 올해 초 100만 명을 돌파했다.
Hy는 ‘프레딧’을 새롭게 선보이고 신선식품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용품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Hy는 ‘프레딧’을 새롭게 선보이고 신선식품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용품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식품업계의 맏형 격인 CJ제일제당은 2019년부터 D2C 강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존에 운영하던 CJ온마트를 대대적으로 개편해 CJ더마켓을 선보인 것이다.

CJ제일제당은 CJ더마켓 론칭 이후 온라인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더욱 집중해 나가기 시작했다. 회원에게만 제공하는 대규모 ‘특별 할인’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몸집을 키워 나가고 있다. 출범 1년 만인 지난해 회원 200만 명을 돌파했다. 매출은 500억원에서 700억원대로 불어나며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앞선 두 기업의 자사 몰과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면 CJ더마켓은 현재 CJ제일제당에서 만든 제품들 위주로만 판매 중이다. 다만 앞으로 영향력을 더욱 키우기 위해 타사의 제품 판매 비중을 더욱 높이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CJ제일제당은 ‘CJ더마켓’에서 대규모 세일 행사를 선보이며 신규 고객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CJ더마켓’에서 대규모 세일 행사를 선보이며 신규 고객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D2C는 급부상하는 트렌드가 됐다. 미국만 놓고 보더라도 제조 업체들이 온라인 유통 공룡으로 불리는 아마존을 벗어나는 움직임이 수년 전부터 거센 상황이다.

수수료를 아끼고 고객 데이터를 직접 확보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미국은 D2C 시장 규모가 2017년 7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23조7500억원으로 커졌다.
“우리도 나이키처럼”…D2C 전략 강화하는 식품사
나이키가 가장 좋은 예다. 2019년 더 이상 아마존에서 제품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후 다양한 마케팅 전략과 신제품을 출시하며 D2C로 전환한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한국의 식품 기업들도 이 같은 미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물론 식품 기업들의 D2C 행보를 바라보는 전망이 마냥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우선 한국은 해외 국가들에 비해 플랫폼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게다가 식품은 고객들의 충성도가 낮다는 특징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패션이나 의류 쪽은 충성도가 놓은 고객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이키 같은 브랜드가 D2C에 성공했다”며 “반면 식품은 다르다. 새로운 맛이나 가격이 구매를 좌우한다. 따라서 식품 업체들이 자사 몰을 성장시키는 것은 뚜렷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