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23배 커지는 배터리 시장…‘제2 반도체’ 선점 경쟁
롯데·포스코 ‘증설 또 증설’…생산 능력 확대 박차
배터리 접었던 GS, 재도전하나…한화는 배터리 생산 장비로 틈새 노려
배터리 놓친 기업들, 소재 분야에서 게임 체인저 야심

[스페셜 리포트]
SK넥실리스 정읍 동박 공장 /SKC 제공
SK넥실리스 정읍 동박 공장 /SKC 제공
전기차 배터리(2차전지)는 전기차 시대를 맞아 ‘제2의 반도체’로 불리며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주요 그룹이 경쟁적으로 관련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10대 그룹 중 배터리 관련 사업에 진출하지 않은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후발 주자들은 이미 선두 업체의 과점화가 시작된 배터리 제조가 아닌 소재 사업을 통해 게임 체인저를 노리며 생산 능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후발 주자들의 소재 사업 진출 배경은 전기차 시장의 높은 성장성뿐만 아니라 향후 배터리 쇼티지(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해 소재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GM, SK이노베이션과 포드 등 최근 배터리 공급사와 완성차 업체가 합작사 설립으로 ‘배터리 동맹’을 강화하고 배터리 자급자족(내재화) 선언, 공급망 강화에 나서는 이유다.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수요는 2020년 310만 대에서 2030년 5180만 대로 17배, 전기차 배터리 수요도 139GWh에서 3254GWh로 23배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배터리의 글로벌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배터리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 배터리 ‘소재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배터리 소재는 배터리에 버금가는 ‘황금알’로 불린다. 배터리 4대 핵심 소재는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이다. 배터리 소재 시장은 2030년 1232억 달러(약 137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의 40% 이상, 배터리 소재는 배터리 가격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원가 경쟁력을 갖추고 공급망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소재 시장 공략이 필수적이다.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 확대에 따라 배터리 소재가 유망한 신사업으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이 소재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고 관련 사업을 검토하는 기업들도 눈에 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가운데)이 5월 15일 롯데알미늄 안산1공장에서 2차 전지 소재 공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롯데지주 제공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가운데)이 5월 15일 롯데알미늄 안산1공장에서 2차 전지 소재 공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롯데지주 제공
롯데, 후발 주자 만회 위해 공격 투자

롯데그룹은 한국의 대기업집단 가운데 배터리 사업에 뒤늦게 뛰어든 후발 주자로 평가된다. 롯데그룹은 배터리 사업과 연관성이 높은 석유화학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을 두고 있음에도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삼성(삼성SDI)·LG(LG화학)·SK(SK이노베이션) 등 주요 그룹이 화학 계열사를 통해 배터리 사업에 진출해 있는 동안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유통·화학 사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미래 먹거리 확보에 비상이 걸린 것이 배터리 소재 사업 진출의 계기가 됐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으로 선두 업체가 이미 굳어진 상황에서 롯데그룹은 성장성이 높은 배터리 소재 분야 강자를 노리고 있다. 롯데그룹은 후발 주자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와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5월 15일 롯데정밀화학 인천 공장과 롯데알미늄 안산 1공장을 방문해 “고부가 스페셜티·배터리 소재에 대한 투자를 더욱 확대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요소에서 신규 사업의 기회를 선제적으로 발굴해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전기차 수요 증가에 따른 배터리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 따라 소재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전기차 배터리용 전해액 유기 용매 사업에 진출했다. 대산 공장에 2100억원을 투자해 배터리 전해액 유기 용매인 에틸렌카보네이트(EC)와 디메틸카보네이트(DMC) 생산 시설을 2023년까지 짓기로 했다.

EC와 DMC는 리튬 이온 배터리의 4대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전해액에 투입되는 유기 용매다. 양극과 음극을 오가는 리튬 이온의 리튬염을 잘 용해시켜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한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투자를 통해 기존에 보유 중인 고순도 산화에틸렌(HPEO5) 설비를 바탕으로 전해액 유기 용매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유기 용매는 전해액 원가 비율의 30%를 차지해 성장성이 높지만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유기 용매 생산을 계기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소재 국산화도 꾀할 수 있다. 이번 투자로 롯데케미칼은 양극재에 들어가는 알루미늄 극박과 분리막에 이어 전해액 유기 용매까지 배터리 4대 핵심 소재 중 음극재를 제외한 3대 소재를 생산하게 된다.

롯데케미칼은 분리막소재(폴리에틸렌) 사업도 확장하고 있다. 2021년 판매량 1만 톤, 매출액 100억원 목표에서 2025년 판매량 10만 톤, 매출액 2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롯데알미늄은 1100억원을 투자해 헝가리에 알루미늄 양극박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2021년 11월 공장이 완공되면 롯데알미늄의 양극박 생산 능력은 연간 2만9000톤으로 커진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GS, 코스모신소재 인수 카드 만지작
GS그룹은 배터리 소재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꼽힌다. 올해 5월 초 허태수 GS그룹 회장이 배터리 소재 중 하나인 양극재를 생산하는 코스모신소재의 충주 공장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GS그룹이 신사업으로 배터리 소재 사업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날 충주 공장 방문에 홍순기 (주)GS 사장과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등 그룹의 최고경영진이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모신소재는 코스모그룹의 주요 계열사로, 2차전지용 양극활 물질,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용 이형 필름 등 정보기술(IT) 관련 소재를 생산한다. 양극재 생산 능력은 현재 연산 1만 톤으로 에코프로비엠의 6분의 1 수준이다. 올해 하반기 2만 톤, 2022년 3만 톤, 2023년 5만 톤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코스모신소재는 전기차 배터리용 NCM 양극재 시장을 강화하고 있다. NCM 양극재는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에 공급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LG에너지솔루션에 니켈 함량 83% NCM 양극재를 공급할 예정이다.

코스모그룹은 고 허만정 GS그룹 창업자의 4남인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인 허경수 회장이 이끌고 있다. 이 때문에 GS그룹의 방계 기업으로 분류된다. 업계에서는 GS그룹이 인수·합병(M&A) 또는 조인트벤처(JV) 설립, 지분 투자 등의 방식으로 코스모신소재와 배터리 사업에서 협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허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신사업은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친환경·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까지 확대해 기회를 찾아야 한다”며 “스타트업·벤처캐피털 등과 협력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고 GS의 투자 역량을 길러 기존과 다른 비즈니스를 발굴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GS그룹이 양극재 사업에 진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은 과거에도 GS그룹이 코스모신소재 인수를 검토한 적이 있고 배터리 소재 기업 지분을 인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GS칼텍스는 2010년 녹색 성장(Green Growth) 사업 추진의 일환으로 양극재 생산 기업인 대정이엠의 지분 29%를 인수하며 최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

2013년 GS칼텍스가 물적 분할하며 설립된 GS에너지가 대정이엠의 나머지 지분 71%를 인수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고 사명도 GS이엠으로 바꿨다. GS에너지는 수년간 1239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GS이엠의 실적 부진은 계속됐다.

2014년에는 GS에너지가 배터리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코스모신소재 인수를 검토하다가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주 매출처인 중대형 배터리 시장이 열려야 하는데 당시 생각만큼 전기차·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열리지 않았고 배터리 소재 후발 주자여서 점유율 확대에도 고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GS에너지는 2016년 LG화학에 GS이엠 양극재 사업을 약 550억원에 넘기고 배터리 사업에서 손을 뗐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2018년 호주 갤럭시리소스로부터 인수한 아르헨티나 리튬 염호 지역을 둘러보고 있다. /포스코 제공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2018년 호주 갤럭시리소스로부터 인수한 아르헨티나 리튬 염호 지역을 둘러보고 있다. /포스코 제공
소재도 ‘쩐의 전쟁’…생산 늘리는 SK·포스코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을 통해 한국 배터리 3사 중 가장 늦게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시작했지만 대규모 투자로 배터리 생산 능력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며 선두 탈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그룹의 배터리 관련 사업은 배터리를 만드는 SK이노베이션을 중심으로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가 분리막을, SK넥실리스가 음극재의 핵심인 동박을 생산하는 수직 계열화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SK그룹의 지주회사 SK(주)는 전기차 배터리 소재인 동박 제조사 왓슨에 2019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총 3700억원을 투자했다.

SKC는 동박 제조 자회사 SK넥실리스는 유럽과 미국 등에 투자해 2025년까지 생산 능력을 20만 톤 이상으로 키워 세계 최대 동박 기업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최근 이사회에서 연산 5만 톤 규모의 동박 공장을 유럽 지역에 건설하기로 의결했다. 유럽 진출 지역으로 폴란드를 우선 검토 중이다.

전기차 배터리 소재 후발 주자였던 포스코는 2010년 LS엠트론의 음극재 사업부(카보닉스)를 65억원에 인수한 것을 계기로 소재 사업을 본격화했다. 포스코는 계열사 포스코케미칼을 통한 양극재·음극재 등 배터리 소재 사업과 함께 리튬, 니켈 및 흑연 등 2차전지 핵심 원료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최근 배터리 핵심 소재 원료인 수산화리튬을 추출해 생산하는 광양 공장에 7600억원을 투자했다. 수산화리튬은 전기차 주행 거리를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니켈 함유량 80% 이상 양극재의 주원료로 최근 수요가 늘고 있다.

포스코는 아르헨티나에서 리튬 매장량이 확인된 염호에서도 연산 2만5000톤 규모의 리튬 생산 공장을 연내 착공할 예정이다. 호주의 니켈 광업·제련 전문 회사인 레이븐소프 지분 30%를 2억4000만 달러(약 27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등 배터리 소재 사업 밸류 체인 구축에 힘쓰고 있다.

포스코는 전기차 시장이 개화하기 전부터 지속적인 투자로 배터리 원료와 소재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했고 철강 매출에 비견되는 캐시카우로 키우고 있다. 포스코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리튬·니켈·흑연 등 원료부터 양극재·음극재까지 배터리 소재 일괄 공급 체제를 갖춘 강점을 활용해 2차전지 소재 산업 세계 시장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리고 연 매출 23조원 이상 규모로 성장시킨다는 목표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한화, 배터리 장비 숨은 강자…틈새시장 공략 집중

한화그룹은 배터리를 제조하지 않지만 배터리 공장에 필요한 생산 관련 장비를 제조한다. (주)한화 기계부문에서 배터리 소재·전극·조립·화성·모듈팩 공정 등에 필요한 설비를 만들어 턴키(turn-key) 방식으로 국내외 배터리 기업들에 공급하고 있다. 지금은 배터리 생산 관련 장비 사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약 10년 전에는 한화그룹도 배터리 소재 원료 사업을 하고 있었다.

한화그룹은 2010년부터 김승연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태양광 사업과 함께 본격적으로 배터리 소재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한화솔루션(당시 한화케미칼)이 1996년부터 양극재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해 2010년 초임계 수열 합성 공정에 기반한 리튬인산철(LFP)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한화케미칼 울산 2공장 내 600톤 규모의 LFP 생산 공장을 마련했다. 양극재에 이어 리튬티타늄옥사이드(LiTiO) 계열의 음극재까지 개발에 성공했지만 문제는 수익성이었다.

당시는 전기차 시장이 개화되지 않은 시기였고 배터리 관련 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4년여 만에 사업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태양광 사업이 분기 흑자를 달성하는 등 먼저 성과를 거두면서 한화그룹은 태양광 사업에 집중하게 된다.

한화그룹은 향후 배터리 관련 사업 확대 가능성에 대해 “다른 사업 부문에 비해 매출 비중은 크지 않지만 계열사별로 2차전지 관련 사업을 이미 진행 중”이라며 “각 계열사의 상황이 달라 사업 확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