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시장 규모 100배 성장…스타트업이 주도하던 시장에 식품업계 강자들 뛰어들어

[스페셜 리포트]
‘집밥’ 열풍이 불면서 밀키트 시장이 폭풍 성장하고 있다. 2017년만 하더라도 20억원대에 불과했던 시장이 지난해 약 2000억원이 됐다. 불과 4년 동안 100배 가까이 시장이 커졌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시장 내 경쟁도 점차 치열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현재 밀키트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놀랍다. 업력이 10년도 채 되지 않은 스타트업이 시장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밀키트 시장의 잠재력에 뒤늦게 주목한 식품 대기업들은 ‘후발 주자’로 사업에 뛰어들어 이들과 본격적인 경쟁을 펼치고 나섰다. 식품업계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밀키트 시장을 두고 스타트업과 대기업, 이른바 ‘다윗’과 ‘골리앗’의 치열한 점유율 싸움이 시작됐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폭풍 성장 밀키트 시장 승자는
불과 4~5년 전만 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생소하기만 한 단어였던 밀키트는 이제 하나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형성할 만큼 시장이 커졌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밀키트의 대략적인 시장 침투율(1년에 한 번 이상 밀키트를 구매한 소비자 비율)은 10% 정도로 추산된다. 10명 중 한 명 이상이 1년 내 밀키트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는 얘기다.

‘햇반’과 같은 즉석밥의 시장 침투율이 35%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소비자들의 밥상 위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식품업계 변방에서 중심으로 자리를 이동 중이다.

그 배경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집밥’ 열풍이 자리한다. 외식 기피 현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집에서 간편하게 건강한 한 끼를 해결하려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 신선한 식재료를 먹기 좋은 형태로 담아 주는 밀키트는 ‘건강’뿐만 아니라 요리하는 ‘시간’까지 절약해 주는 강점이 부각되며 소비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레시지 점유율 63%로 압도적 1위‘빠른 배송’이 보편화된 것도 밀키트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과거처럼 주문한 상품이 집앞에 도착하기까지 하루에서 이틀이 소요됐을 경우를 가정해 보자. 배송 과정에서 식재료의 신선함이 떨어지고 무더운 여름에는 음식이 상할 수도 있다.

이제는 이런 우려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커머스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물류 인프라 확충에 나선 끝에 ‘새벽배송’을 넘어 최근에는 ‘당일배송’ 서비스까지 점차 보편화되는 상황이다. 더욱 신선도가 높은 제품을 빠르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고 있다. 즉 밀키트 시장이 성장하는데 유리한 환경이 갖춰진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런 요인들을 감안할 때 앞으로 밀키트 시장의 규모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유러모니터는 밀키트 시장의 규모가 2025년 7000억원대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업계 일각에서는 5년 내 1조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폭풍 성장 밀키트 시장 승자는
이렇게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에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 수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밀키트를 점찍고 나선 이유다.

흥미로운 부분은 현재 이 시장을 주도하는 곳들이 스타트업이라는 사실이다. 프레시지와 마이셰프가 그 주인공이다. 대기업들이 밀키트에 눈독을 들이기 이전부터 시장을 선점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현재 업계 1위는 프레시지다. 2016년 설립돼 업력이 5년에 불과한 기업이 현재 밀키트 업계 선두다. 유러모니터가 지난해 펴낸 보고서를 보면 프레시지의 밀키트 시장점유율은 약 22%로 집계됐는데 실질적인 점유율은 더 높다.

최근 다양한 기업들이 자사의 브랜드를 내걸고 밀키트를 판매 중인데 프레시지는 이들 중 대부분의 기업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제조자개발생산(ODM) 형태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지 관계자는 “유러모니터 조사를 보면 PB·기타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해당 브랜드 대부분이 프레시지에서 제품을 공급받아 자사 로고가 박힌 포장을 씌운 채 판매 중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부분을 고려할 때 자체적으로 추산한 시장점유율은 현재 약 63% 정도 된다”고 덧붙였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폭풍 성장 밀키트 시장 승자는
실제로 프레시지는 자사 브랜드를 내건 밀키트 상품의 판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OEM과 ODM을 주축으로 하는 ‘퍼블리싱 사업’에 더욱 주력하며 밀키트 시장에서 몸집을 더욱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앞으로 많은 기업들이 OEM과 ODM 방식으로 밀키트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밀키트는 진입 장벽이 높다. 일일이 채소를 썰고 담는 노동 집약적인 생산 구조를 갖고 있다. 게다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콜드 체인 시스템 등도 갖춰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손 놓고 바라만 보기도 어렵다. 시장 자체가 워낙 빠르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문제에 직면한 기업들이 자체 브랜드를 내건 밀키트를 생산하기 위해 OEM과 ODM 방식으로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프레시지는 판단했다. 이들을 위한 조력자 역할을 하면서 더 빠르게 몸집을 불려 나가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마이셰프, 퍼블리싱에 주력 청사진

지난해 4월 약 700억원을 투자해 하루 평균 최대 10만 개의 밀키트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완공한 것도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다.

프레시지 관계자는 “식품 전문 기업부터 소상공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뢰자들이 간편식 시장에 관한 지식과 자본 없이도 레시피 하나만 가지고 시장에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레시지는 전국의 소상공인들과도 함께 협업해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프레시지는 전국의 소상공인들과도 함께 협업해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상품의 기획부터, 패키지 구성, 가격 정책까지 컨설팅해 유통망도 함께 개척해 주는 방식이다. 그렇게 유명 맛집들의 의뢰를 받아 대표 메뉴를 밀키트로 개발하고 있고 한화호텔앤드리조트와 같은 유명 대기업들과도 함께 협업 제품을 출시했다.

프레시지 관계자는 “올해 200종이 넘는 신제품을 이런 형태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이를 통해 밀키트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한층 더 두텁게 다진다는 목표를 세웠다.

마이셰프도 업계를 선도하는 스타트업 중 하나다. 2011년 한국 최초로 밀키트 사업을 시작한 곳이 바로 마이셰프다. 꾸준히 외연을 확대하며 지난해 매출 270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올해도 상승세는 이어지고 있다. 5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셰프의 사업 구조도 프레시지와 비슷하다. 자사 브랜드를 내건 밀키트 제품과 함께 퍼블리싱에 주력하며 매출을 늘릴 수 있었다. 추구하는 사업 방향도 일치한다. 마이셰프 역시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밀키트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해 프레시지처럼 다양한 기업들의 밀키트 생산 공장으로서의 역할을 맡아 매출에 ‘날개’를 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폭풍 성장 밀키트 시장 승자는
이를 위해 현재 첨단 기술을 접목한 밀키트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오는 12월께 완공해 가동에 들어간다.

마이셰프 관계자는 “현재 제조 공정은 일일이 재료를 다듬는 노동 집약적인 생산 과정으로 인해 효율성이 높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며 “첨단 자동화 공장이 지어지면 이런 비효율적인 공정들을 제거해 생산 효율성을 가공식품 자동화 공장 수준의 80~90%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자동화 공장의 효율성이 입증되면 이 같은 공정 시스템을 해외로 수출할 계획도 갖고 있다.
Hy·CJ제일제당도 시장 공략 본격화프레시지와 마이셰프 등 스타트업들이 서로 경쟁하던 밀키트 시장은 2017년부터 본격적인 변화의 바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식품 대기업의 시장 진입이다.

긴 세월 동안 쌓아 온 식품 생산 노하우와 유통망·마케팅 등을 적극 활용하며 하나 둘 밀키트 사업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가 불러온 집밥 열풍에 현재는 식품 대기업뿐만 아니라 유통업계 호텔 업계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든 상태다.

이들 중 상당수는 프레시지와 마이셰프 등에 생산을 의뢰해 제품을 만들고 있지만 ‘정공법’을 선택한 기업들도 여럿 있다. Hy(구 한국야쿠르트)와 CJ제일제당이 대표 주자다. 자체적인 밀키트 생산 시설과 인력을 구축하며 빠르게 점유율을 늘려 나가고 있다.

Hy는 대기업 중 가장 이른 2017년 밀키트 시장에 진출했다. ‘잇츠온’ 브랜드를 론칭을 통해서다. 목적은 신성장 동력 창출이었다. 당시 밀키트라는 개념조차 생소했지만 Hy는 해외 시장 동향에 주목에 밀키트 출시를 결정했다.

Hy 관계자는 “미국 등 해외에서 밀키트라는 새로운 형태의 상품이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며 “한국에서도 소비자들이 밀키트를 찾고 소비할 것이라고 확신을 얻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전달 방식도 남달랐다.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프레시 매니저(구 야쿠르트 아줌마)’가 냉장 시스템을 갖춘 카트에 상품을 담아 직접 문 앞까지 배송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택배로 제품을 전달하는 것보다 훨씬 제품을 신선하게 전달할 수 있는 강점을 부각시키며 소비자들을 공략했다.
Hy는 1만여 명에 달하는 프레시 매니저를 통해 밀키트 제품을 배송한다.
Hy는 1만여 명에 달하는 프레시 매니저를 통해 밀키트 제품을 배송한다.
충성 고객들이 확보되면서 생산 과정에도 변화를 줬다. Hy는 잇츠온 밀키트 론칭 초반만 하더라도 프레시지가 생산한 제품을 재포장해 판매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자체 시설에서 밀키트를 생산하며 제품 다변화와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Hy는 현재 밀키트 시장점유율 2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CJ제일제당은 밀키트업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가정 간편식(HMR) 출시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밀키트에 적용하며 빠르게 외연을 확장 중이다.

2019년 처음 ‘쿡킷’이라는 밀키트 브랜드를 선보이며 밀키트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론칭 2년 만에 업계 3위를 기록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CJ제일제당이 론칭한 밀키트 브랜드 쿡킷. 다양해지는 소비자 니즈를 반영해 2주마다 최소 4종의 테마 메뉴를 출시한다.
CJ제일제당이 론칭한 밀키트 브랜드 쿡킷. 다양해지는 소비자 니즈를 반영해 2주마다 최소 4종의 테마 메뉴를 출시한다.
현재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계속해 다양해지는 소비자 니즈를 반영해 2주마다 최소 4종의 테마 메뉴를 새롭게 선보이겠다고 선포했다. 국내외 호텔 조리 경력을 보유한 총 11명의 전문 셰프들을 직접 영입해 이를 추진하고 있다.

상시 운영 메뉴도 현재 20~25개에서 연말까지 30여 개로 늘릴 예정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트렌드나 계절적 요인 등을 고려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개발해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밀키트 시장에서 프레시지가 압도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시장 규모가 점차 커지고 식품 대기업들이 밀키트 생산에 내부 역량을 결집하는 만큼 시장의 흐름이 빠르게 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돋보기
5세대 HMR ‘밀키트’, 해외에서도 각광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폭풍 성장 밀키트 시장 승자는
밀키트는 가정 간편식(HMR)의 한 종류다. 먹기 좋게 손질된 식재료와 양념, 여기에 조리법까지 함께 제공하는 5세대 HMR을 뜻한다. 2008년 스웨덴의 스타트업 ‘리나스 마카세(Linas Matkasse)’가 처음으로 이 단어를 사용했다. 2012년 미국의 스타트업 ‘블루에이프런’이 밀키트 배달 서비스를 현지에서 최초로 도입해 주목받으면서 이 단어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밀키트 시장의 열기가 뜨거운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예컨대 미국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밀키트 주문이 크게 늘어났다. 미국 밀키트 시장 규모는 2017년 약 25억 달러(약 1조4400억원)로 추산되는데 2025년엔 약 50억 달러(약 5조57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역시 블루에이프런·헬로프레시 등과 같은 스타트업이 현재까지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월마트·아마존과 같은 온·오프라인 유통 공룡들이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인수·합병(M&A) 움직임도 활발하다. 예컨대 미국의 대형 종합 유통 업체 크로거는 현지 밀키트 시장에서 경쟁 중이던 홈셰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