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영세업자 보호 위해 신규 등록 제한…레미콘 믹서 트럭 부족에 운반비 급등

[비즈니스 포커스]
건설 기계 수급 제도 연장·해제에 달린 건설·레미콘업계 운명
철근 공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에 레미콘까지 제때 수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레미콘 기업의 생산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운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업과 레미콘 운송업자 간 이견이 발생하며 마찰이 빚어진 결과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7월 건설기계수급조절위원회를 열고 7월 31일 만료되는 ‘레미콘 믹서 차량 등 건설 기계의 신규 등록 제한 조치’를 2년 더 연장하거나 해제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건설 기계 수급 제도라고 불리는 이 조치는 2009년 8월 도입됐다. 국토부가 공급 과잉으로 판단되는 영업용 건설 기계에 대한 신규 등록을 제한해 영세 건설 기계 운전자나 임대업자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제정했다.

2년 단위의 재심의를 통해 건설 기계 수급 제도 연장이나 해제 여부가 결정된다. 대상은 레미콘 믹서 트럭과 덤프트럭, 펌프카 등 3종류인데 그중 레미콘 믹서 차량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건설 기계 수급 제도 연장·해제에 달린 건설·레미콘업계 운명
레미콘 공장 늘었는데 믹서 트럭은 제자리걸음

레미콘 기업은 출하 능력 대비 보유·계약 믹서 트럭이 매우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9년 수급 제도 실시 후 레미콘 공장은 지난해 기준 200여 곳이 늘어났다. 반면 레미콘 믹서 트럭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공장당 평균 차량 계약은 2009년 23.5대에서 2019년 기준 19.8대로 줄었다.

생산 공장이 많아져 출하량은 늘어났지만 이를 운반할 믹서 트럭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더 많은 믹서 트럭과 계약하기 위해 생산 기업끼리 경쟁이 나타나며 운반비가 급등했다.
건설 기계 수급 제도 연장·해제에 달린 건설·레미콘업계 운명
레미콘 가격은 2009년 ㎥당 5만6200원에서 지난해 10월 기준 6만2100원으로 10.5%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운반비는 3만313원에서 5만1121원으로 68.4%나 급등했다.

레미콘 산업과 믹서 트럭의 수급 불균형 심화는 건설업계와 국민에게 영향을 미친다. 레미콘은 건축 공정 중 가장 중요하고 공기(공사 기간)가 긴 골조 공사에 사용되는 핵심 재료다.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공사비에서 골조 공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20%다. 또 골조 공사가 레미콘 수급 불안으로 중단되면 후속 공정을 진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건설업계가 수급 제도로 비싼 가격에 레미콘을 공급 받으면 실수요자인 국민은 집값 인상 등의 피해를 보게 된다. 7월 열릴 수급조절위원회에 레미콘업계뿐만 아니라 건설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건설 기계 수급 제도 연장·해제에 달린 건설·레미콘업계 운명
본래 취지와 멀어진 건설 기계 수급 제도

12년간 유지된 건설 기계 수급 제도는 본래 제정 취지와는 무색한 수많은 폐해의 단초가 됐다. 당초 영세업자의 수익을 개선할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부작용과 폐단이 나타나며 사회·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 정책과 맞물려 운반 사업자의 8·5제(8~17시 운행), 토요 휴무 등으로 건설 현장에 레미콘 적기 공급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찾아왔다. 믹서 트럭의 신규 등록이 제한됨에 따라 기존 사업자들은 2012년 전국레미콘운송연합회를 조직해 2016년부터 자체적으로 8·5제를 시행하며 집단 운송 거부 사태를 초래한 바 있다.

또 2019년부터 격주 토요 휴무에 이어 올해 3월부터 매주 토요 휴무로 레미콘 제조 기업의 경영 환경 악화와 건설 현장의 공기 지연, 건설 일용 노동자의 일감이 줄어드는 등 문제가 심각해졌다.

믹서 트럭 운송업자는 건설사와 레미콘 기업에 양해 없이 일방적으로 운송 거부를 강행해 왔다. 건설 현장의 공기 차질이 빈번히 발생했고 레미콘 기업에 대한 운송 거부는 급격한 운반비 인상을 관철시켰다.

‘카르텔’이 형성되기도 했다. 운송 거부에 동참하지 않는 선의의 운행업자에게 방해와 협박을 자행해 불법 행동을 지속해 왔다. 또 신규 업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인 만큼 번호판 거래 등 불법 행위를 양산해 지하 경제화와 일자리 대물림 등의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급 제도 시행 후 레미콘 믹서 트럭 번호판에 프리미엄이 붙어 해당 업종에 진입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에게 큰 장벽이 되고 있다”며 “차량 구입비에 평균 3000만원에 달하는 번호판 가격까지 부담해야 한다. 초기 사업 진출비로는 턱없이 높은 가격”이라고 귀띔했다.

레미콘 관련 기업 10곳 중 7곳은 수급 제도가 올해 만큼은 해제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4월 레미콘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관련 조사에 따르면 71.3%가 믹서 트럭 숫자가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수도권 지역에선 부족하다는 응답이 83.1%로 높게 나타났다.

건설 기계 수급 제도를 해제해 신규 차량 등록 제한을 풀어주는 정부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한 응답에는 83.3%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12년째 이어진 믹서 트럭 신규 차량 등록 제한으로 운반비 급등 등 공급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해제 조치가 절실한 상황으로 업계와 국토부 간 정례적 소통 창구를 마련해 현재 상황을 정부가 인식할 수 있도록 대화를 나누고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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