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재팬, 라쿠텐 현지 이커머스 시장 장악…이들 넘기 위해선 협력밖에 답 없어

[비즈니스 포커스]
라인과 야후재팬은 2019년 양사의 경영통합 계획을 처음 발표했다. 올해 3월 이를 완료하며 일본 이커머스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다. 2019년 데자와 다케시 라인 CEO(오른쪽)와 가와베 겐타로 Z홀딩스 CEO가 도쿄 그랜드프린스호텔다카나와에서 열린 양사 간 경영통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 모습.
라인과 야후재팬은 2019년 양사의 경영통합 계획을 처음 발표했다. 올해 3월 이를 완료하며 일본 이커머스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다. 2019년 데자와 다케시 라인 CEO(오른쪽)와 가와베 겐타로 Z홀딩스 CEO가 도쿄 그랜드프린스호텔다카나와에서 열린 양사 간 경영통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 모습.
네이버와 쿠팡이 본격적으로 해외 이커머스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첫 행선지는 양 사 모두 일본이다.

‘스마트 스토어’를 통해 한국 최대 이커머스 사업자 중 한 곳으로 도약한 네이버는 일본에서도 비슷한 서비스를 곧 선보일 계획이다.

쿠팡은 현지에서 주문한 상품을 배달해 주는 시범 서비스를 개시했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치열한 점유율 다툼을 펼치고 있는 두 기업이 일본에서까지 경쟁하게 된 모양새다.

다만 최근 관련 업계에서는 두 기업이 일본 시장에서 ‘경쟁’이 아닌 ‘동맹’을 맺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돼 귀추가 주목된다. 두 기업의 일본 진출 배경에 다름아닌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있기 때문이다. 쿠팡, 일본에서 시범 서비스 개시
현재 네이버는 Z홀딩스를 통해 일본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Z홀딩스는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과 손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의 자회사 야후재팬이 경영 통합을 결정한 뒤 만든 중간 지주회사다.

일본 이커머스 시장 공략을 목표로 지난 3월 경영 통합을 완료하고 Z홀딩스를 출범시켰다.

Z홀딩스의 등장은 일본 현지에서도 크게 주목받았다. 한국으로 치면 네이버와 카카오가 합병해 만든 회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야후재팬은 일본 최대 검색 포털로 꼽히고 있고 라인은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불린다. 포털과 메신저가 가진 막강한 영향력을 활용해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Z홀딩스의 사업 전략이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은 아직 없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은 네이버가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스마트 스토어를 일본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라는 것이다.

스마트 스토어는 소상공인에게 온라인 가게 개설부터 마케팅·주문·결제·배송 등을 할 수 있도록 디지털 툴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이를 앞세워 네이버 역시 한국에서 이커머스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 스마트 스토어를 연 소상공인은 40만 명이 넘는다. 일본 현지에서도 이를 앞세워 이커머스 시장점유율을 높여 나간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손 회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쿠팡 역시 일본 시장 진출을 공식화한 상태다. 쿠팡은 손 회장이 운영하는 비전펀드가 최대 주주(지분율 33.1%)다. 쿠팡은 도쿄에 일본법인 CP재팬을 설립한 뒤 6월부터 시범 서비스에 돌입한 상태다.

최근 글로벌 시장 공략에 집중하기 위해 한국 쿠팡 법인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김범석 전 의장이 일본 시장 진출을 직접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이 일본에서 선보인 시범 서비스는 배달의민족이 제공하는 ‘B마트’와 유사한 형태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생필품을 주문하면 라이더(현지 배달 운전사)가 자전거 등으로 배달해 주는 방식이다.

다만 쿠팡 관계자는 “이 사업 방식을 계속 유지할지는 미지수”라며 “어떤 방향으로 일본 사업을 전개할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에서 쿠팡이 대규모 채용을 진행했던 만큼 머지않아 사업의 윤곽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네이버와 쿠팡 모두 손 회장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손잡고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격이다.“양 사 동맹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 아니야”문제는 네이버와 쿠팡이 각각 사업을 전개해서는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이미 일본 시장 역시 막강한 강자들이 존재한다. 바로 라쿠텐과 아마존재팬이다.

두 기업이 오랜 기간 굳건한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그 뒤를 소프트뱅크의 자회사 야후재팬이 잇고 있는데 앞선 두 기업과의 격차는 상당하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라쿠텐과 아마존재팬의 일본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각각 20%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야후재팬의 점유율은 한 자릿수로 관측되는데 이마저도 계속 하락하는 추세라고 전해진다.

라쿠텐과 아마존재팬의 시장 공략 방식은 한국에서의 쿠팡과 비슷하다. 물류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빠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주력해 나가며 계속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2019년 쿠팡이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20억 달러의 투자를 받게 됐을 당시 김범석 쿠팡 전 의장(오른쪽)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기념촬영을 한 모습.
2019년 쿠팡이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20억 달러의 투자를 받게 됐을 당시 김범석 쿠팡 전 의장(오른쪽)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기념촬영을 한 모습.
업계에서는 이런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Z홀딩스가 물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스마트 스토어’만을 무기로 뛰어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쿠팡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쿠팡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경쟁사들보다 빠르게 선제적으로 물류에 투자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후발 주자로 진입하는 만큼 한국에서 추진해 온 사업 방식이 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네이버, 즉 Z홀딩스와 쿠팡의 전략적 동맹이다. 네이버는 야후재팬을 통한 스마트 스토어 확장에 주력하고 물류 인프라 구축에 일가견이 있는 쿠팡이 여기에 붙어 배송 서비스를 전담한다면 일본 시장의 점유율을 빠르게 키워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까지 보여준 손 회장의 경영 스타일 역시 네이버와 쿠팡의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한 동맹 가능성에 힘을 보탠다.

승차 공유 시장을 예로 들 수 있다. 손 회장은 과거에 우버가 꽉 잡고 있던 승차 공유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우버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던 중국 디디추싱 투자를 통해서다.

이후 디디추싱을 우버에 대적할 정도로 키워 낸 그는 결국 디디추싱을 앞세워 우버의 중국 사업부까지 인수했다. 그 결과 디디추싱은 중국 승차 공유 시장에서 적수가 없는 절대 강자에 등극했다.

동남아 시장도 승차 공유 업체인 그랩에 투자해 추후 우버 동남아 사업부를 인수하는 등 비슷한 전략을 펼쳤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의 경영 스타일은 성장성만 명확하다면 큰돈을 들여서라도 경쟁사를 합쳐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라며 “이런 성향을 가진 만큼 일본 시장에서도 Z홀딩스와 쿠팡이 각각 일본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기보다 힘을 합치도록 해 시장을 공략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승우 SK증권 애널리스트도 “네이버와 쿠팡이 공식적인 방침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쉽게 예상하긴 어렵지만 그간 손 회장의 행보로 볼 때 전혀 가능성 없는 시나리오는 아니다”고 진단했다.
돋보기
네이버와 쿠팡의 이유 있는 일본 진출
네이버와 쿠팡이 여러 국가들 중 가장 먼저 일본에 진출한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 이커머스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기 때문이다. KTB투자증권에 따르면 일본의 이커머스 침투율은 약 8% 수준이다. 중국(29%), 한국(35%) 등과 비교할 때 현저히 낮다.

중국과 한국이 캐시리스(cashless) 사회로 빠르게 전환된 반면 일본은 여전히 현금 중심의 사회에 머무르고 있어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이런 일본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거센 구매 방식의 변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카하시 요시에 코트라 일본 도쿄무역관은 올해 초 펴낸 보고서에서 “한국에 비해 오프라인 매장을 중시하던 일본도 코로나19로 인해 집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지 않았던 고객층이 신규 이용자가 되는 등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역시 이런 추세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올해 네이버와 쿠팡을 일본 시장에 끌어들여 공략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손 회장의 주도 아래 두 기업의 일본 시장 동맹이 현실화할 경우 향후에도 계속 힘을 합쳐 동남아 지역의 해외 국가들을 차례로 공략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