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건설사, 작년 서울 분양실적 ‘0’…지방·정비 사업으로 활로 찾기 안간힘

[비즈니스 포커스]
대형 브랜드 아파트 전성시대…중견 건설사의 생존 비결은 ‘틈새시장·리뉴얼’
브랜드 아파트의 전성시대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들어선 GS건설의 반포 자이와 DL이앤씨의 아크로리버파크는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두 단지는 피트니스센터·수영장·카페테리아·스카이라운지 등 입주민을 위한 최고급 커뮤니티 센터를 갖춰 지역을 대표하는 동시에 ‘고급 아파트’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2000년대 초반부터 대형 건설사(시공 능력 1~10위)를 중심으로 한국에 브랜드 아파트가 등장했다. 삼성물산의 래미안이 2000년 처음 브랜드 아파트란 개념을 도입했다. 이후 대형 건설사는 잇달아 프리미엄 브랜드 아파트를 선보였고 서울을 중심으로 신규 분양하는 아파트의 대부분을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가 차지했다.

정점은 2015년이다. 당시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38개 단지 중 10대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 몫은 29개(76.3%)였다. 중견 건설사(시공 능력 11~50위)는 6개(15.8%)만 따냈다. 나머지 3개(7.9%)는 50위권 외의 중소 건설사들의 소규모 아파트였다.

지난해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분양한 33개 아파트 단지는 18곳(54.5%)이 10대 건설사 브랜드다. 중견 건설사는 3곳(9.1%)만 따내 2015년보다 6.7%포인트 줄었다. 중견 건설사의 서울에서의 입지가 더욱 좁아진 것이다. 실수요자가 대형 건설사 아파트를 선호하는 현상이 과거부터 더욱 크게 나타나면서 중견 건설사가 서울에서 신규 분양을 따내는 것은 이제 ‘언감생심’이다.
대형 브랜드 아파트 전성시대…중견 건설사의 생존 비결은 ‘틈새시장·리뉴얼’
높은 서울의 벽에 틈새시장 노린다

대형 건설사가 브랜드 아파트를 내세워 서울 신규 분양 건을 대부분 따내자 중견 건설사는 경기도 등 외곽 지역의 틈새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올해 하반기 태영건설·호반건설·반도건설 등 중견 건설사가 전국에서 분양하는 물량은 1만6953가구다. 대부분 서울이 아닌 지역이다.

7월 분양 계획만 보면 중견 건설사 8개사가 8개 사업장에서 총 7159가구를 공급한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 2333가구, 강원 1520가구 등이 분양될 예정이다. 반면 서울은 ‘0’이다. 중견 건설사는 높은 서울의 벽에 막혀 지방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태영건설은 경남 양산 사송신도시 B9블록에 있는 ‘사송 더샵 데시앙 3차’ 분양 일정을 시작했다. 7월 16일 사이버 모델하우스를 개관하고 본격적인 분양에 나섰다.

사송 더샵 데시앙 3차는 지하 4층~지상 18층, 9개 동, 총 533가구 규모로 조성된다. 앞서 성공적으로 분양을 마친 사송 더샵 데시앙 1·2차의 후속 단지로 3차까지 분양이 완료되면 총 4329가구의 양산을 대표할 랜드마크 단지가 완성된다.

호반건설은 7월 말 대전의 첫 공공 지원 민간 임대 아파트인 ‘호반써밋 그랜드파크’를 공급할 예정이다. 대전 유성구 용산지구 2·4블록에 들어서는 이 단지는 총 1791가구 규모다. 지하 3층~지상 35층, 14개 동, 전용면적 59·84㎡로 구성된다.

반도건설은 올해 11월부터 본격적인 하반기 분양에 나선다. △대구 대한적십자사 부지 115가구 △부산 광안지역주택조합 525가구 △충남 내포신도시 RC-2블록 955가구 △신경주역세권 B-4·5블록 1503가구 등이 계획돼 있다.

또한 중견 건설사의 ‘곳간’으로 꼽히는 지방 소규모 정비 사업에도 더욱 집중하고 있다. 올해 지방 소규모 정비 사업 물량이 늘어나면서 서울 분양에서 밀린 중견 건설사의 생존 활로가 되고 있다.

소규모 정비 사업은 △가로 주택 정비 △소규모 재건축 △자율 주택 정비 사업 등이 있다. 가로 주택 정비는 노후 불량 건축물이 밀집한 가로 구역에서 종전의 가로를 유지하면서 소규모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1만㎡ 미만의 가로 구역을 대상으로 최소 사업 규모는 단독 주택 10가구 이상 및 공동 주택 20가구 이상이면 추진할 수 있다.

소규모 재건축은 정비 기반 시설이 양호한 지역에서 추진하는 소규모 공동 주택 재건축 사업이다. 면적 1만㎡ 미만 200가구 이하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자율 주택 정비는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소규모 주택 정비 사업이다. 단독 주택·다세대주택·연립 주택 등을 스스로 개량이나 건설하는 것이 핵심이다.

A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소규모 정비 사업은 일반 재건축·재개발과 비교해 수익성이 낮은 편에 속한다”며 “하지만 서울 대단지 분양 등 소위 대박을 노릴 수 있는 사업을 따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건설사의 브랜드와 기술력, 이익을 얻기 위해 소규모 정비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브랜드 아파트 전성시대…중견 건설사의 생존 비결은 ‘틈새시장·리뉴얼’
놓칠 수 없는 브랜드 아파트에 리뉴얼 박차

중견 건설사가 지방 분양 물량과 소규모 정비 사업에 집중하고 있지만 브랜드 아파트를 선호하는 실수요자의 트렌드를 외면할 수는 없다. 건설사의 핵심 수익 모델은 여전히 주택 사업이다. 현재 분양 경기가 호황인 만큼 브랜드 로고나 디자인을 변경해 반전을 꾀하는 중견 건설사가 많다.

(주)한양은 최근 2012년 이후 10여 년 만에 브랜드 아파트 ‘수자인’의 디자인을 리뉴얼했다. 로고와 디자인 변경을 포함해 상품과 서비스, 브랜드 철학·가치 등을 전면 개편했다.

신동아건설도 브랜드 아파트 ‘파밀리에’의 리뉴얼을 검토 중이다. 파밀리에 명칭을 그대로 두면서 브랜드 이미지(BI)를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르면 오는 10월께 새 단장한 BI를 선보일 예정이다.

계룡건설도 ‘리슈빌’의 새 단장을 준비 중이다. 반도건설도 ‘유보라’의 디자인 리뉴얼 계획을 갖고 있다.

중견 건설사들은 브랜드 개편 취지와 관련해 실수요자의 트렌드 변화에 맞춰 새로운 브랜드 체계를 확립하고 주택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 조사 업체 ‘닥터아파트’가 지난해 말 발표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동일 입지에서 아파트를 구입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요인은 단지 규모(24.2%)나 가격(18.7%)이 아니라 브랜드(40.6%)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건설사가 탄탄한 재정과 풍부한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브랜드 아파트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가운데 중견 건설사도 리뉴얼이라는 승부수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B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1군으로 꼽히는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는 분양가나 매매가가 다른 단지보다 비싼 편”이라며 “하이엔드 브랜드 아파트에 대적하기 위해 중견 건설사가 비용이 많이 투입되는 브랜드 리뉴얼에 나서는 것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