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몰에 명품 판매 시작한 유통사들…카카오, ‘명품 선물’로 커머스 강화

[스페셜 리포트]
‘오픈런 안 해요’ 판 커지는 온라인 명품 시장
전 세계적인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급격히 성장한 산업 중 하나가 ‘명품 시장’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전 세계 온라인 명품 구매는 2019년 330억 유로(약 44조9304억원) 규모에서 2020년 48% 증가한 490억 유로(약 66조7149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 세계 소비가 얼어붙었지만 명품만은 예외였다. 해외 여행길이 막히자 자금이 명품 구매로 몰렸고 억눌렸던 소비 욕구가 분출되면서 ‘사치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샤넬 가방과 롤렉스 시계는 돈이 있어도 구매하지 못한다는 말도 나온다. 명품관의 문이 열리기 전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을 대행해 주는 아르바이트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온라인 명품 시장도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유통 기업들은 자사 온라인 몰에 명품 판매를 늘리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신성장 동력인 커머스에 명품 구매를 더했다.
‘오픈런 안 해요’ 판 커지는 온라인 명품 시장

‘온라인 명품관’ 문 연 롯데·신세계

‘명품’은 지난해 백화점 매출을 떠받든 일등 공신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신세계 강남점의 명품 매출 증가율은 23.1%를 나타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상반기 전체 매출 구성비 중 해외 명품이 37%의 비율을 차지했다.

‘명품 맛’을 톡톡히 본 유통 기업들은 자사 몰인 롯데온과 에스아이빌리지 등에도 명품관을 열고 있다. 시작은 면세점 재고를 온라인몰에서 판매하면서부터 였다. 높은 판매량을 겪은 유통사들은 최근엔 명품 맞춤 서비스의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롯데온은 지난해 11월 ‘엘부티크 해외 직구 서비스’를 오픈했다. 유럽 현지에 있는 20여 개 부티크가 보유한 생로랑·오프화이트·톰브라운·발렌시아가·페라가모 등 400개 브랜드 2만여 개 상품을 판매하며 현지에서 구매 후 발송한다. 롯데온은 해외 직구 서비스를 론칭, ‘결품률’을 낮출 계획이다. 다품종 소량을 취급하는 명품 특성상 재고 문제로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롯데온은 결품률을 낮추기 위해 정보기술(IT) 기반의 해외 구매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구하다’와 협업했다. 구하다는 유럽 현지 부티크의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어 주문 후 결품 발생에 대한 가능성이 낮다. 또 중간 유통 과정 없이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직접 구매하기 때문에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이점을 갖고 있다. 롯데온 관계자는 “현지 부티크와 연계해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상품을 발굴하고 젊은 고객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한 발 빠르게 소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자사 온라인몰 에스아이빌리지를 ‘럭셔리 온라인 플랫폼’으로 육성하고 있다. 아르마니·브루넬로 쿠치넬리·메종 마르지엘라와 같은 패션 브랜드부터 바이레도·딥디크·산타 마리아 노벨라와 같은 뷰티 브랜드까지 80여 개의 자사 고가 브랜드를 판매한다. 가장 많은 종류의 패션·뷰티 브랜드를 판매하는데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에스아이빌리지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6% 성장했다.

에스아이빌리지는 지난해 6월 한국 최초로 재고 면세품을 발 빠르게 판매하는 것을 시작했다. 올해 3월부터는 재고 면세품 전문관을 상시적으로 운영하며 발렌티노·발렌시아가 등 명품 패션과 톰포드·생로랑·구찌 등 명품 선글라스, 명품 시계, 주얼리 라인을 판매하고 있다.

럭셔리에 집중한 차별화 전략으로 에스아이빌리지는 업계 최고 수준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6년 오픈 당시 27억원이었던 거래액은 매년 두 배 가까이 증가하며 지난해 1300억원을 달성했다.
‘오픈런 안 해요’ 판 커지는 온라인 명품 시장

‘명품 쇼핑 플랫폼’ 변신 나선 네이버와 카카오

커머스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네이버와 카카오도 명품 쇼핑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의 강점은 높은 접근성이다. 이미 검색부터 쇼핑까지 온라인 생태계를 구축한 시점에서 명품 구매로 커머스 부문을 더 키운다는 전략이다.

네이버는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잡은 커머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신선식품, 정기 구독, 렌털과 함께 ‘명품 쇼핑’을 강화한다. 한성숙 네이버 사장은 7월 22일 2분기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명품과 관련한 논의를 추가로 할 예정”이라며 “구체적 시기를 말하긴 어렵지만 신세계 명품과 관련해 개별적으로 브랜드스토어 입점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명품 판매에 앞서 물류도 강화하고 있다. 네이버는 7월 21일 특수 물류 전문 업체 발렉스와 손잡고 프리미엄 배송 서비스 지원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새롭게 출시될 예정인 삼성전자 ‘갤럭시 탭 S7 FE’ 사전 예약 구매자를 대상으로 발렉스와 함께 고품격 프리미엄 배송 서비를 시작한다. 특수 화물 전문 수송 업체인 발렉스는 금고·CCTV·위성항법장치(GPS) 등이 설치된 보안 차량으로 상품을 배송한다. 제품 배송 과정에서 훼손·분실의 우려가 적은 만큼 향후 명품 배송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메신저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모바일 선물’이라는 트렌드를 만들어 낸 카카오톡 선물하기에도 명품 브랜드가 입점했다. 최근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샤넬 뷰티·티파니·구찌·에르메스 뷰티 등이 입점하며 스몰 럭셔리부터 하이엔드급 명품까지 판매하는 플랫폼으로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가 명품 선물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작년부터다. 2019년 8월 명품 화장품 테마를 신설한데 이어 올해 2월 ‘명품 선물’ 테마로 확장해 지갑·핸드백·주얼리 영역을 추가하는 등 상품군을 크게 확대했다.

명품 브랜드들이 연일 카카오커머스에 입점하는 것은 한국에서 모바일 선물이라는 서비스가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거 교환권 위주의 선물에서 점차 가격대가 있는 상품들을 선물로 전달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카카오톡 선물하기 내 명품 패션·잡화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또 젊은 세대 중심의 모바일 선물 시장에 구매력이 있는 40·50대 등 중·장년층 연령대 고객들도 지속 유입됐다.

여기에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명품의 큰손으로 부상하면서 상대적으로 고가의 상품들을 선물로 선택하는 것도 명품 브랜드 입점의 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홈코노미 선물 수요도 늘면서 명품 리빙 수요도 증가했다. 올해 1월에는 리델과 잘토 등 프리미엄 와인잔뿐만 아니라 로얄코펜하겐과 웨지우드 등 유럽 테이블 웨어 브랜드도 입점했다.

선물하기에 입점된 명품 브랜드는 현재 130여 개다. 지난해 카카오톡 선물하기 내 명품 잡화 상품 거래액은 직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고 올해도 2배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현재 카카오커머스가 카카오톡 선물하기 홈 화면 전면에 ‘생일’ 테마에 이어 ‘명품 선물’과 ‘스몰 럭셔리’ 테마를 배치한 것만 보더라도 선물하기 서비스에서 명품 선물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가장 큰 장점은 카카오톡을 통한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이다. 또한 글로벌 유명 브랜드들이 공식 입점하면서 명품 브랜드를 안심하고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다. 카카오커머스 관계자는 “카카오톡 선물하기 플랫폼에서 구입 시 별도의 선물 포장이나 각인 서비스 등이 가능해 비대면 선물도 특별하고 품격 있게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픈런 안 해요’ 판 커지는 온라인 명품 시장

가품 구매 걱정은 옛말…오픈런 안 하려면 이커머스로

명품 쇼핑을 온라인으로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명품 전문 이커머스다. 머스트잇·트렌비·발란 등은 올해 투자금을 모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비교적 후발 주자로 분류되는 기업들의 온라인 판매처보다 더 많은 브랜드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트렌비 관계자는 명품 전문 이커머스의 장점에 대해 “힌국에서 구하기 힘든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고야드 등의 다양한 상품을 ‘오픈런’할 필요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명품 전문 이커머스 ‘머스트잇’은 7700여 명의 판매자가 입점해 1300여 개 명품 브랜드의 상품 110만 개를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거래액은 전년 대비 66% 성장한 2500억원이다. 회원만 약 160만 명이고 2014년 5월 출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약 110만 건이다.

머스트잇의 강점은 가격 경쟁력과 빠른 배송이다. 병행 수입을 활용한 소싱 방식을 통해 백화점 대비 평균 20~25%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명품은 해외 직구를 통해 들여오는 상품들이 많아 배송 기간이 길다. 반면 머스트잇은 한국 배송 비율이 73%에 달해 평균 배송 기간 역시 1.5일로 단축했다.

트렌비는 약 3만5000개의 브랜드와 160만 개 이상의 제품을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휴 업체는 영국의 최대 백화점인 해롯과 하비니콜스, 프랑스의 프랭탕과 르 봉 마르셰, 미국의 삭스피프스애비뉴와 메이시스 등이 있다.

트렌비는 자체 개발한 검색 엔진 ‘트렌봇’의 기술력을 통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명품 세일 정보와 최저가 정보를 발빠르게 제공한다. 또 해외 공식 파트너십과 글로벌 주요 명품 쇼핑 거점에서 직접 운영 중인 해외 물류센터를 통해 가격 경쟁력과 제품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트렌비는 한국 온라인 명품 플랫폼 중 유일하게 ‘직접 중개’ 형식으로 운영한다. 제품 바잉부터 배송까지 명품 쇼핑의 전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

온라인 명품 시장이 성장하면서 투자금도 몰리고 있다. 트렌비는 지난 3월 기존 투자자인 IMM인베스트먼트·뮤렉스파트너스·한국투자파트너스와 신규 투자자 에이티넘 인베스트먼트가 참여해 220억원의 C라운드 투자를 유치했다. 2019년 시리즈A 투자를 시작으로 3년 만에 누적 투자액 400억원을 달성한 것이다.

온라인 명품 구매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가품을 사게 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다. 기다림을 감수하면서 명품 매장 앞에 줄을 서는 소비자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안전한 구매를 위해서’라고 답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최근 온라인 명품 구매는 이러한 두려움을 없애는 데 일조하고 있다. 카카오 선물하기는 명품 브랜드가 직접 입점함으로써 상품을 직배송하고 있다. 에스아이빌리지는 병행 수입 제품을 판매하는 다른 패션몰과 달리 정식 판권을 바탕으로 수입돼 정품을 100% 보장하고 있다.

명품 전문 이커머스는 정품 보증과 관련한 다양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머스트잇은 위조품 구매 시 200% 책임 배상, 배송 지연에 따른 보상, 직거래 신고에 대한 포상 등을 시행하고 있다. 또 소비자는 정품 여부에 대한 의심이 생기면 머스트잇에 신고해 정품 감정을 받을 수 있다. 접수된 건은 머스트잇이 감정사에게 의뢰한다. 이 밖에 머스트잇의 상품기획팀과 판매관리팀에서 유기적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콧대 높은’ 명품이지만 향후 온라인 구매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온라인에 익숙한 MZ세대의 명품 구매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과감히 지갑을 여는 소비 형태인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익숙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실제로 명품 시장에서 MZ세대의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머스트잇에 따르면 주요 고객층은 MZ세대로 1030세대의 고객 비율이 90%를 차지하고 특히 1020세대는 70%에 달한다.

이에 따라 온라인 명품 판매는 다양한 판매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해 12월 자체 스튜디오를 만들고 매주 월요일마다 라이브 방송 ‘에스아이라이브’를 시작했다. 할인율과 구매 혜택에 집중돼 있는 다른 라방과 차별화한 ‘럭셔리 라이브커머스’를 지향한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백화점에서 퍼스널 쇼퍼가 VIP에게 상품을 설명해 주듯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며 에스아이빌리지와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며 “올해는 전문 진행자를 영입해 라이브 커머스의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