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네이버, 구독 서비스 내놓으며 카카오·쿠팡과 맞대결
[스페셜 리포트] 20대 후반 직장인 A 씨가 혼자 사는 집에는 2주에 한 번 생수가 배달되고 한 달에 한 번 유산균과 종합 비타민이 배송된다. 하지만 A 씨는 매번 제품들을 결제하지는 않는다. 매일 섭취하는 상품은 ‘정기 구독’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취미 생활에서도 구독은 이어진다. A 씨의 취미는 넷플릭스와 웨이브를 시청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해외 콘텐츠, 웨이브는 한국 콘텐츠가 위주여서 모두 구독 중인데, 결제일을 딱히 기억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요금이 빠져 나간다.
1인 가구로 비교적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은 A 씨의 생활에도 다수의 구독 경제 서비스가 곳곳에 자리 잡았다. 가족이 많거나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은 더더욱 정기 배송에 기댈 수밖에 없다. 기저귀와 같은 아기 용품은 매번 구매하기 번거롭지만 늘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근 한국에서 구독 경제 시장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구독 경제’가 우리 삶에 파고들고 있다. 기업들도 연달아 구독 경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그간 주춤했던 정기 구독 시장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콘텐츠 등에 국한됐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생필품 위주로 정기 구독 서비스가 확장되는 모양새다.
아마존 업은 SK텔레콤, 포인트 앞세운 네이버
매월 통신요금을 납부하는 통신사는 정기 구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 통신 사업자 1위인 SK텔레콤이 본격적으로 ‘구독 경제’에 발을 들였다.
SK텔레콤은 아마존 해외 직구 서비스를 포함해 18가지의 구독 서비스를 패키지로 이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 ‘T우주’를 론칭했다. 8월 31일부터 구독 패키지 상품인 ‘우주패스 올(all)·미니(mini)’와 함께 다양한 우주 파트너스의 구독 단품 서비스들도 함께 출시했다. 구독 상품의 확장을 위해 SK텔레콤 고객뿐만 아니라 타 통신사 고객들에게도 문을 열었다.
아마존·11번가·배달의민족·웨이브 등 다양한 구독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SK텔레콤은 ‘T우주’의 핵심 상품인 ‘우주패스’ 구독 패키지 미니와 올을 상품을 첫 달에 월 100원과 1000원에 이용할 수 있는 프로모션도 진행한다. 1개월 뒤에는 자동 전환돼 정상 요금이 과금된다. 응모자 9명을 추첨해 아마존 등 글로벌 파트너사가 있는 미국으로 여행을 보내 주는 ‘글로벌 우주 파트너스 투어’, 11번가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에서 장바구니에 제품을 담고 인증하면 쇼핑 지원금을 주는 ‘우주 쇼핑’ 등 혜택도 내걸었다.
동시에 SK텔레콤은 ‘T우주’ 구독 상품을 널리 알리기 위한 구독 전문 매장을 운영한다. 서울 강남 지역의 뱅뱅사거리와 가로수길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향후 고객 이용 편의성을 도모하고 구독 상품을 체험할 수 있게 1000개까지 매장을 늘릴 계획이다. 구독 전문 매장을 방문하면 ‘85인치 대형 터치 테이블(AI 구독 컨설팅 테이블)’을 통해 고객의 관심사와 취향에 맞는 상품 외에도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AI)이 추천하는 상품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구독 혜택 체험존’에서는 자기만을 위한 우주패스 상품을 셀프 디자인하고 그 혜택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SK텔레콤 측은 전 매장 직원들이 구독 상품 컨설팅 교육을 통해 전문 상담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구독 전문 매장 확대와 함께 1200여 명의 구독 전문 컨설턴트를 배치해 언제든 고객의 취향에 맞는 구독 상품을 추천하고 전문적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최적의 구독 서비스와 혜택을 고객에게 제공하겠다는 새로운 목표와 의미를 담아 매장 직원들의 명칭을 ‘T매니저’에서 ‘T크루’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쇼핑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네이버도 8월 19일부터 ‘스마트스토어 정기구독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네이버쇼핑 이용자들은 반복 구매가 필요한 생필품이나 먹거리, 주기마다 교체가 필요한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하고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다. 이에 앞서 네이버는 스마트스토어 법인 판매자들에게 정기 구독 솔루션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판매자들은 자신의 스토어 운영 상황과 상품 소비 주기를 고려해 사전 고객 알림, 자동 결제, 배송 주기를 설정할 수 있다. 솔루션 이후 정기 배송 옵션을 도입하는 판매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고 영양제와 이유식을 포함한 식품과 생필품, 반려동물 용품 등을 정기 구독으로 받아볼 수 있다.
이용자들은 스마트스토어 상품에 활성화된 ‘정기구독’ 버튼을 눌러 원하는 배송 주기와 이용 횟수, 희망 배송일을 선택해 정기 구독을 신청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상품을 구독하면 배송 주기를 상세하게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상품별 맞춤일 배송, 빨리받기·건너뛰기 같은 옵션도 제공해 서비스 편의성도 높였다.
또 정기 구독 이용 시 일반 이용자에겐 총 2%,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가입자에게는 최대 6% 네이버페이 포인트 적립 혜택을 제공한다. 판매자에 따라 회차별 할인 혜택도 제공하기 때문에 반복 구매하는 상품이 있다면 네이버 정기 구독을 이용할 때 훨씬 합리적으로 쇼핑할 수 있다. 특히 10억 개의 상품 데이터베이스가 쌓여 있는 만큼 향후 이용자들이 누릴 수 있는 정기 구독 상품군이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윤숙 네이버 포레스트 CIC 대표는 “네이버의 정기 구독 모델은 판매자와 이용자가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윈-윈 구조로, 이용자는 반복 구매 상품을 저렴하고 편리하게 받아보고 판매자는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축적된 데이터로 사업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며 “압도적인 상품 데이터베이스에 정기 구독 솔루션과 AI 기술을 접목해 이용자에게 새로운 구독 상품을 추천하고 고객 혜택을 제공해 네이버에서만 누릴 수 있는 정기 구독 경험을 완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기업 모두 혜택 분명한 구독 경제
SK텔레콤과 네이버가 정기 구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카카오와 쿠팡과의 ‘맞대결’도 기대되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 6월 정기 구독 플랫폼 ‘구독ON’을 출시했다. 지난해 11월 카카오톡 채널에서 파트너들이 구독 상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한 것에 더해 이용자가 자신에게 맞는 구독 상품을 발견하고 체험하도록 확장했다.
구독ON에서는 식품·가전·생필품 등 실물 상품뿐만 아니라 청소·세탁 등 무형의 서비스까지 다양한 종류의 구독 상품을 만날 수 있다. 카카오는 매주 상품을 업데이트해 라이프스타일 케어 서비스 등 다양한 형태의 정기 구독 상품들을 큐레이션해 선보일 예정이다.
구독ON의 가장 큰 특징은 이용자가 구독을 더욱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편리한 동선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상품 또는 브랜드별로 각각 구독을 관리해야 한 것과 달리 구독ON에서는 ‘마이 페이지’ 메뉴를 통해 구독하고 있는 상품 내역, 결제 스케줄 확인, 해지 신청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이 시장에서 가장 발 빠르게 자리 잡은 곳은 쿠팡이다. 2015년부터 정기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쿠팡은 ‘로켓와우’를 통해 생필품 등 소비자가 정기적으로 필요로 하는 상품을 배송해 왔다.
구독 경제의 판이 갈수록 커지는 것은 소비자와 기업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정기 구독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이용자들의 편의뿐만 아니라 스마트스토어 판매자의 사업 효율도 증대시킬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정기 구독이 늘어날수록 판매자들은 수요를 더욱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고 서비스를 개선하는 등 사업 운영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순환으로 정기 구독 참여자를 늘리고 구독 생태계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빅데이터 확보도 기대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통신 데이터와 정보통신기술(ICT) 패밀리사의 데이터와 함께 다양한 구독 제휴사들이 보유한 데이터까지 더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고객의 선호 콘텐츠, 관심사, 자주 가는 곳, 생활 환경, 교육 수준, 먹거리, 건강 상태 등 다양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고객과 구독 상품을 연결하는 최적의 구독 커머스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한다.
최관순 SK증권 애널리스트는 구독 경제가 기업에 유리한 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기업에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해 안정적인 매출 창출이 가능하다. 또 고객 데이터를 직접적으로 관리해 신규 서비스를 제안하거나 마케팅에 활용할 수도 있다. 정기 배송을 통해 물류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매출 예측이 수월해 재고 관리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구독 경제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가트너는 2023년 전 세계 기업의 약 75%가 소비자와 직접 연결된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아마존과 넷플릭스 등은 구독 경제를 등에 업고 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에서도 잠시 주춤했던 구독 경제는 지난해 기점으로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25조9000억원 수준이었던 한국의 구독 경제 시장 규모는 지난해 40조1000억원까지 커졌다. 4년 사이 약 55%의 성장세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거래가 큰 폭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소비의 방식은 물론 생활 곳곳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구독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소비자들도 비용 절감이 가능하고 별도의 정보 탐색이 가능한 구독 경제의 편리함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생필품은 직접 문 앞에서 배송받을 수 있고 콘텐츠와 음악 등은 스마트폰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만큼의 혜택 주느냐가 관건
‘구독 경제’에 뛰어든 기업들의 속내는 다양하다. 통신사는 정체된 통신 사업과 연계해 새로운 수익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가 외부 업체와 제휴해 구독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매월 요금을 결제하는 통신 기업의 서비스는 구독 경제와 매우 유사하다. 이에 따라 기존 요금제와 결합한 구독 경제 모델을 출시할 수 있다. 최관순 애널리스트는 “통신 업체는 전국 다수의 오프라인 매장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에 강점이 있고 기존 매출이 구독 경제와 유사한 월과금 모델이라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의 ‘T우주’는 AI 기술을 기반으로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분석해 필요한 구독 서비스를 알려준다. SK텔레콤의 자회사들이 운영하는 웨이브와 플로 등 각종 구독 서비스와 연계해 자사의 서비스의 확장성을 꾀했다. 특히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아마존 글로벌 해외 직구 서비스다. ‘우주패스’에 가입하면 구매 금액과 관계 없이 11번가를 통해 아마존글로벌스토어 상품을 무료로 배송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구독 경제 시장이 치열해지는 만큼 얼마만큼의 성공을 거둘 수 있느냐는 미지수다. 생필품 구매는 쿠팡·네이버 등과 겨뤄야 하는데 소비자들이 우주패스를 사용함으로써 얼마만큼의 혜택을 누릴지 납득시키는 게 관건이다. 여기에 SK텔레콤이 운영하는 구독 전문 매장이 구독 서비스와 얼마만큼의 시너지를 낼지도 중요한 포인트다. 론칭 초반 ‘T우주’는 순항 중이다. SK텔레콤 측은 9월 8일 ‘T우주’가 론칭 1주일 만에 가입자 15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정보기술(IT) 기업들은 확장하고 있는 커머스 부문을 구독 경제가 얼마나 확장시킬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이미 콘텐츠와 금융 등에서 큰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어 다양한 서비스와 연계한 구독 경제 모델도 성공적으로 안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손쉽게 구독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이 가진 가장 큰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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