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맞서 데이터 동맹 가속
편의점에서 은행 업무도 척척, IT사와 합작사 설립도

[비즈니스 포커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데이터가 자원이다.’ 타업종과 데이터 동맹이 금융사의 새로운 생존 공식으로 부상했다. 유통사 등의 데이터를 확보하면 개인화 서비스의 핵심인 ‘품목 정보’를 알 수 있다. 금융사가 보유한 방대한 금융 정보에 타업종이 보유한 고객 데이터를 결합하면 초개인화된 맞춤형 금융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셈이다.

이는 강력한 플랫폼을 앞세운 네이버와 카카오 등 빅테크(대형 IT 기업)에 맞서기 위한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비금융권과의 동맹으로 데이터가 쌓이고 이렇게 쌓인 데이터는 금융 상품 개발로 이어지며 이는 또 락인 효과(고객 묶어 두기)로 연결돼 이른바 ‘선순환’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은행·편의점 연합 전선 활발
은행들은 최근 편의점과의 연합 전선을 펼치고 있다. 수년 전 은행 점포 안에 카페·빵집·전시관을 들여놓았던 이른바 ‘숍인숍(가게 안에 또 다른 가게가 있다는 의미)’과 다른 모습이다. 당시엔 점점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은행 점포를 임대 수익을 올리는 방향으로 대응했다면 이젠 소비자의 접근성이 높은 편의점과 손잡고 디지털 특화 점포 구축에 한창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오프라인 비율을 낮추면서도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한 전략이다.

선봉에 선 곳은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전국 편의점 채널을 보유한 GS리테일과 함께 인공지능(AI) 행원이 직접 서비스를 공급하는 ‘편의점 혁신 점포’를 연내 선보인다. GS25 편의점에 별도 공간을 마련한 후 디지털 데스크를 설치한다. 디지털 데스크 화면에 은행원의 목소리와 몸짓 등을 익힌 AI가 영상으로 나타나는 방식이다. 신한은행은 강원도 등 은행 지점이 적은 격오지와 도서 지역을 우선으로 시범 점포를 낸다는 계획이다.

하나은행도 업계 1위인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과 손잡고 ‘점포 특화 편의점’을 개설한다. 단순한 숍인숍 개념을 넘어 공간·콘텐츠·서비스를 완전히 결합한다는 구상이다. 편의점 간판 전면에 제휴 은행의 이름을 내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U 편의점 안에 금융 서비스를 위한 전용 공간 ‘하나은행 스마트 셀프존’이 별도로 마련된다. 이곳에서 고객은 지능형 자동화 기기 스마트텔러머신(STM)을 통해 간단한 입출금·송금부터 통장·체크카드·보안카드 발급 업무 등 영업점에 가야만 처리할 수 있었던 업무는 물론 은행원 화상 상담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 이르면 9월 말께 서울 송파구에 있는 CU 점포에 개설할 예정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해당 입지는 인근 500m 내 일반 은행과 자동화 기기가 없어 금융 업무가 필요한 손님들의 편의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금융사와 편의점의 협업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의 ‘고객 데이터’를 활용한 공동 마케팅과 금융 상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신한은행은 GS프레시몰 할인 쿠폰을 주는 6개월짜리 컬래버레이션 적금을 내보였다. 이는 카카오뱅크가 이마트·마켓컬리 등과 협업해 인기몰이에 성공한 ‘26주 적금(6개월)’과 거의 비슷한 구조다. 카카오뱅크가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상품이나 이모티콘을 선물로 제공한 것처럼 신한은행은 라바 캐릭터로 흥미를 끌었다. 여기에 GS리테일이 보유한 전국 1만5000여 소매점의 유통 데이터와 신한은행의 금융 서비스 역량을 결합, 활용하기 위해 전자금융업에 공동 진출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하나은행도 적금에 가입한 손님이 CU를 많이 방문하면 우대 금리나 CU 쿠폰을 주는 상품을 선보인다. CU 편의점 방문 횟수에 따라 ‘포켓CU’ 앱에 적립되는 ‘CU 스탬프’를 활용한다. 또 매달 구독료를 내면 할인 받을 수 있는 CU의 구독 서비스와 하나은행의 금융 상품을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이미 구독 서비스와 금융 상품을 연계한 서비스를 선보인 곳도 있다. 한화생명은 최근 GS리테일‧이마트‧프레시지와 함께 ‘구독 보험’을 출시했다. 이 서비스는 저축성 보험 상품에서 발생하는 중도·만기 보험금을 포인트로 받을 수 있는데, 소비자는 이 포인트로 물품이나 서비스 등을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화생명 ‘라이프플러스 GS25 편맥 구독 보험(무)’의 경우 월 보험료는 9500원인데, 매월 4캔에 1만원 행사 맥주를 9000원에 이용 할 수 있도록 GS25 상품권과 맥주 할인 권을 제공한다.
BGF리테일과 하나은행이 함께 선보이는 ‘금융 특화 편의점’ 모습./사진=BGF리테일 제공
BGF리테일과 하나은행이 함께 선보이는 ‘금융 특화 편의점’ 모습./사진=BGF리테일 제공
금융·IT 혈맹, 비즈니스 개발 몰두
금융권은 IT업계와 동맹을 넘어 혈맹으로 가는 합작법인(JV)을 만들고 있다. 핀테크 플랫폼을 만들거나 투자하는 한편 IT 기업의 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신용 평가 모델 개발에 드라이브를 건다.

KB금융은 엔씨소프트와 손잡았다. KB증권과 게임사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0월 AI 간편 투자 증권사 출범을 위한 합작법인에 참여했다. 각각 300억원씩 총 600억원을 투자했다. AI 간편 투자 증권사 합작법인의 메인 플랫폼으로는 ‘핀트’가 활용될 예정이다. 핀트는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용이 2019년 선보인 AI 비대면 투자 일임 서비스다. 투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투자 성향에 맞춰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 포트폴리오 구성과 운용·입출금까지 AI가 전 과정을 대신해 준다.

‘소버린 사태(외국계 헤지펀드 먹튀 사례)’로 시작된 하나금융그룹과 SK그룹의 20년 인연은 비즈니스 협업으로 더욱 돈독해지고 있다. 특히 하나금융그룹은 SK텔레콤과 절반씩 투자해 2016년부터 핀테크 플랫폼인 핀크를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T스코어’와 ‘대출 비교 서비스’가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T스코어는 SK텔레콤의 통신 데이터(가입 기간, 납부 내역, 로밍, 음성 통화 데이터 사용량 등)를 활용한 대안 신용 평가 모델이다. SK텔레콤의 통신 데이터를 활용해 기존 신용 평가 모델을 대체하는 지표로 활용한다. 올해 7월 기준 핀크 ‘대출 비교 서비스’에서 대출 승인을 받은 전체 고객 중 37%가 T스코어를 통해 최대 1.0%의 금리를 감면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누적 승인 금액 18조4000억원 중 T스코어를 통해 금리 감면 혜택을 적용 받은 금액은 3조6100억원으로 20%를 차지한다. 다만 핀크는 설립 후 계속 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2대 주주와 최대 주주로 인터넷 전문은행(케이뱅크) 사업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KT와 지난해 8월 디지털 동맹을 맺었다. 일례로 우리은행은 펀드 판매 과정에서 쌓아 온 경험을 AI 학습 목적으로 KT와 공유한다. KT는 우리은행의 투자 상품 판매 프로세스에 컨설팅을 제공하는 한편 KT의 IT를 활용해 상품 신규 가입 단계에서 불완전 판매 가능성을 없앨 수 있는 AI 프로세스를 개발할 예정이다. AI 기술력이 금융 투자 상품 완전 판매로 확대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시작하겠다는 포부다. 다만 당초 거론됐던 마이데이터 사업 관련 합작법인 설립 사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신한금융그룹도 올해 9월 KT와 손잡고 디지털 신사업 및 플랫폼 역량 강화에 나선다. KT의 빅데이터 기반 상권분석 서비스 ‘잘나가게’ 플랫폼에 신한은행의 비대면 사업자 대출을 탑재해 소상공인 고객들이 쉽게 대출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 신한카드의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위한 대표적인 마케팅 플랫폼인 ‘마이샵파트너’와 ‘잘나가게’ 플랫폼 간 데이터 협력을 통해 상권분석 서비스도 개선한다.
혈맹 늘리는 금융사…타업종과 ‘협업 또 협업’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