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수십조원 공약 경쟁…재원 대책 없이 앞에선 뿌리고 뒤로는 미래 이들에 빚 안겨

[홍영식의 정치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왼쪽부터), 추미애, 김두관, 이재명, 박용진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9월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100분 토론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낙연(왼쪽부터), 추미애, 김두관, 이재명, 박용진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9월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100분 토론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대선판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단어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20~30대를 뜻한다. 전체 유권자에서 이들은 약 35% 정도 차지한다. 역대 선거에서 이들은 낮은 투표율로 인해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변화가 생겼다. 지난 4·7 재·보궐 선거 때 이들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1980년대 이후 20~30대는 대체로 진보 성향을 보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는 것도 한 특징이다. 최근 여론 조사의 흐름을 보면 20대는 국민의힘 후보 지지 성향이, 30대는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가 다소 우세한 경향을 보인다. 20~30대를 통틀어 MZ세대가 진보, 보수 어느 한쪽으로 확 쏠리지는 않고 있다. ‘스윙보터(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없이 그때그때의 정치 상황과 이슈에 따라 투표)’ 특성도 가지고 있다. 다만 20대는 최근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의 지지세가 과거보다 두드러진 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JTBC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 9월 11~12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신뢰 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이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20대(만 18세 이상)의 경우 홍 의원이 36.0%로 가장 높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15.9%), 민주당 소속 이재명 경기지사(15.3%), 국민의힘 소속 윤석열 전 검찰총장(13.8%) 등의 순이었다. 30대는 이 전 대표가 24.2%, 이 지사 22.3%, 윤 전 총장 20.3%, 홍 의원이 18.4%를 각각 기록했다.

20대 보수, 30대 진보 성향…한쪽으로 확 쏠리진 않아

OBS 의뢰로 미디어리서치가 9월 7~8일 만 18세 이상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 후보 적합도 여론 조사(신뢰 수준 95%에 표본오차 ±3.1%)에서 윤 전 총장이 28.6%, 이 지사가 26.1%, 홍 의원이 13.8%를 각각 얻었다. 20대에선 홍 의원이 26.6%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었고 윤 전 총장 18.5%. 이 지사가 16.9%를 각각 나타냈다. 30대에선 이 지사 23.4 %, 홍 의원 19.4%, 윤 전 총장 13.7%를 각각 기록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의 의뢰로 지난 8월 20~21일 실시한 여론 조사(신뢰 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20대의 지지율은 윤 전 총장 24.0%, 홍 의원 18.8%, 이 전 대표 15.2%, 이 지사 9.8%로 나왔다. 30대는 이 지사 27.8%, 윤 전 총장 18.1%, 이 전 대표 17.1%, 홍 의원 10.0%로 나타났다

20~30대의 평균으로 따지면 어느 당 우위를 예상하기 어렵다. 다른 여론 조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MZ세대의 특성을 단정적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보수든, 진보든 관계없이 각 대선 후보 캠프들은 이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공약 마련에 몰두하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을 찾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부분의 대선 주자 캠프는 이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일단 퍼주고 보자는 것이다. 수천억원, 수조원은 기본이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공약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야 모두 재원 대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라 빚으로 해결해야 할 공산이 크다. 결국 이 빚은 세월이 지나 MZ세대가 짊어져야 한다. 앞에선 뿌리고 뒤로는 이들에 빚을 떠안기는 것이다.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상하탱석(上下撑石)’ 식의 ‘조삼모사(朝三暮四)’ 행태다.

이 지사는 2023년부터 19세부터 29세까지 청년에게 연간 100만원의 청년 소득 지급 방안을 제시했다. 보편적 기본 소득과 합산하면 임기 말에 1인당 연 200만원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임기 안에 모든 국민에게 해마다 100만원을 나눠 주는 것도 공약했다.

이 지사는 19~34세 청년에게 신용을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연 이율 3%에 1000만원까지 빌려 주고 이후 전국민에게 확대하는 기본 대출도 제안한 바 있다. 2019년 기준 만 19~34세 청년은 1019만 명에 달한다. 연체 이자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지역 신보가 감당해야 하는데, 결국 부실을 민간 금융사와 국민에게 떠넘기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게 금융권의 주장이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발생 가능성도 높다.

이 전 대표는 군 복무를 한 남성들이 제대할 때 사회 출발 자금으로 300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장병들의 월급을 올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현재 시행 중인 ‘내일준비적금’을 활용해 비과세 등 인센티브 확대 등 방안을 제시했다. 그런 방법을 활용하더라도 3000만원 지급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이 역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민의힘 주자들도 마찬가지다. 윤 전 총장은 가정양육수당 월 10~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 만 5세 전면 무상보육 공약을 내놨다. 유승민 전 의원은 군 복무를 마친 청년에게 주택자금 1억원 한도의 무이자 융자를 제시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청년의 대학 등록금과 직업교육훈련비, 창업·창직 준비금으로 쓸 수 있게 2000만원을 지급하는 ‘청년교육카드’를 내놓았다.

국민의힘은 ‘원가 주택’ 등 청년 주거 공약 잇달아 내놔
지난 9월 7일 서울 강서구 ASSA빌딩 방송스튜디오에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체인지 대한민국, 3대 약속’ 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9월 7일 서울 강서구 ASSA빌딩 방송스튜디오에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체인지 대한민국, 3대 약속’ 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주자들은 특히 청년 주거 공약 경쟁이 치열하다. 윤 전 총장은 임기 내 청년과 신혼부부, 무주택 가구 등에 건설 원가로 총 5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10만 가구는 대도시 역세권의 용적률 규제를 300%에서 500%로 완화해 주는 대신 늘어난 용적률의 50%를 공공 기부채납 받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10만 가구는 국공유지를 개발해 원가로 분양한다.

30만 가구는 ‘청년 원가 주택’으로 공급한다고 약속했다. 무주택 청년 가구가 건설 원가의 20%로 주택을 분양받으면 나머지 80%는 30년 동안 낮은 이자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게 했다. 5년 이상 거주하면 국가에 팔 수 있게도 했다. 매각할 때는 애초 구매 원가와 차익의 70%를 더한 금액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해 수익을 보장하겠다고도 했다. 20·30대 무주택 청년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한 뒤 40·50대 무주택자에게로 범위를 넓혀 간다는 것이 윤 전 총장의 구상이다. 신혼부부·청년층 등에 대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80%로 상향, 저리 융자 등 금융 지원도 약속했다.

홍 의원은 도심을 초고층·고밀도로 개발해 청년들에게 저렴하게 공급해 직장과 주거가 근접할 수 있게 하면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교통량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토지임대부 분양 방식의 ‘반값 주택’을 내세우고 있고 유 전 의원은 생애 최초 및 신혼부부에 대해 LTV 규제 대폭 완화 및 개인당 2억원 한도 내에서 저리 대출 등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청년이 진짜 원하는 것은 돈 몇푼을 쥐여 주는 것이 아니라 월급이 제대로 나오는 질 좋은 일자리다. 대선 주자들은 이에 대한 방안은 내놓지 않고 눈앞의 ‘사탕발림’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