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경영인 최윤범 부회장
비철금속 강자 넘어 수소·배터리 소재로 제2 도약 이끈다

[비즈니스 포커스] CEO 탐구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 사진=고려아연 제공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 사진=고려아연 제공
‘은둔의 강자’ 고려아연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3세 경영인인 최윤범 부회장이 신재생에너지, 그린 수소, 2차전지 소재를 중심으로 미래 사업 추진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고려아연은 본업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기업 가치 높이기에 주력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미국 애머스트대 수학과,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2007년 고려아연에 입사해 온산제련소 경영지원본부장으로 근무했다. 2010년부터 페루 광산개발을 위한 현지법인 ICM 파차파키의 사장으로 자원개발 사업을 총괄했다.

최 부회장은 2014년부터 호주 아연 제련소인 선메탈(SMC)의 사장을 지냈다. SMC 사장 재임 시기인 2014년 기술 개발과 공정 개선으로 적자 상태였던 SMC를 흑자 전환시켰고 2018년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아연괴 생산 효율을 높이는 조업 합리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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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수소·배터리로 탈탄소 시대 대비

최 부회장은 고려아연의 신성장 엔진 육성과 함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0년부터 2차전지와 신재생에너지 등 신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2022년 신년사에서도 “그린수소·리사이클링·2차전지를 삼두마차로 삼아 2022년을 고려아연의 제2 도약기로 만들겠다”며 신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폐기물 리사이클링·2차전지 소재 등 신성장 동력을 집중 육성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최 부회장이 특히 힘을 쏟는 분야는 2차전지 소재 사업이다.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과 탄소 중립 기조에 따라 2차전지 소재 사업이 급부상하고 있고 이 분야는 고려아연이 본업의 강점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미래 성장 산업으로 꼽힌다.

동박, 전구체 생산, 폐배터리 재활용 등 신사업과 고려아연이 영위하는 제련 사업 사이에는 기술적인 유사성이 있다. 고려아연은 자회사 코리아니켈과 경제적 니켈 제련 공법 등에서 공동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고려아연의 호주 제련소 선메탈(SMC)의 태양광 설비 전경. 사진=아크에너지 제공
고려아연의 호주 제련소 선메탈(SMC)의 태양광 설비 전경. 사진=아크에너지 제공
고려아연은 2017년 2차전지용 황산니켈을 제조하는 자회사 켐코를 설립하면서 2차전지 소재 사업에 진출했다.

2020년 전해동박을 생산하는 자회사 케이잼을 설립해 울산 온산 제련소 부근에 연간 1만3000톤 규모의 전해동박 생산 공장을 건립 중이다. 전해동박은 전기·전자 제품 회로 기판의 재료로 쓰이며 리튬 이온 전지 등 2차전지 음극재로 사용되는 핵심 소재다.

LG화학과는 2차전지 양극재 원료인 전구체 생산 합작회사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LG화학은 켐코의 지분을 10% 보유하고 있다. 전구체 합작회사를 설립하면 고려아연은 황산니켈·전해동박·전구체 등 2차전지 소재 사업 라인업을 갖추게 된다.

본업의 경쟁력과 기술 유사성을 기반으로 폐배터리에서 동·니켈·코발트·리튬 등 유가 금속을 뽑아내는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 진출도 타진하고 있다.

ESG 경영 기조와 탈탄소 시대를 맞아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도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고려아연은 최 부회장의 주도로 호주 자회사 아크에너지를 설립하고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진출했다.

최근 아크에너지를 통해 현지 신재생에너지 개발 전문 업체 에퓨런의 지분을 100% 인수했는데 이를 통해 2025년까지 현지 자회사 선메탈(SMC)의 재생에너지 전력 비율을 8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고려아연은 2021년 9월 한국의 금속 기업 중 처음으로 RE100에도 가입했다. RE100은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것을 약속하는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수소 경제 활성화와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수소기업협의체로, 현대차그룹·SK그룹·롯데그룹·포스코그룹 등 15개사가 참여하는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의 회원사에도 이름을 올렸고 글로벌 그린 수소 동맹 ‘GH2’ 이사회에도 합류해 그린 수소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잇단 산재는 ESG 옥에 티…해결 과제

고려아연의 ESG 경영은 잇단 산재 사망 사고로 ‘반쪽짜리’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2021년 상장 기업 ESG 평가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ESG 점수는 사회부문(S)이 ‘C’ 등급으로 환경(E), 지배구조(G)의 ‘B+’보다 한 단계 낮아 사회 부문에서 취약성을 보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발생한 온산 제련소의 산재 사고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려아연 온산 제련소는 2016년부터 5년여 동안 11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 이에 따라 2019~2020년 2년 연속 원·하청 통합 사고 사망만인율 상위 사업장에 포함됐다.

원·하청 통합 사고 사망 만인율은 원청과 하청을 합한 노동자 중 사고 사망자의 비율로, 노동부는 이 비율이 원청의 사고 사망자 비율보다 높은 1000인 이상 사업장의 명단을 해마다 발표한다.

이 명단에서 상위권이라는 것은 하청 노동자의 사망 사고 빈도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잦은 산재 사고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중대 재해 발생 사업장’에 지정되기도 했다.

고려아연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속 가능 경영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 부회장은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2021년 5월 발생한 온산 제련소 산재 사고로 노동자 2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을 계기로 ‘중대 재해 제로 경영’을 선언하고 스마트 안전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기업의 사회적·법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ESG 경영 전담 조직인 ‘지속가능경영본부’, ‘지속가능경영위원회’도 신설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돋보기]
‘3대째 한 지붕 두 가족’
고려아연 홀로 서기는 언제쯤?


고려아연은 1974년 설립된 글로벌 종합 비철금속 제련회사로, 연산 5만 톤 규모의 아연 제련 공장을 시작으로 금·은·동·납(연)·인듐 등 희소 금속까지 18종류의 비철금속 120만여 톤을 생산하고 있다.

금속별 매출은 아연 32.5%, 연 17.5%, 금 11.0%, 은 30.3%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고려아연은 직접 침출법 도입, 2차 원료 투입 비중 상승, 자체 발전 설비 도입 등을 통해 글로벌 경쟁사 대비 원가 경쟁력이 높다.

고려아연은 재계 30위 영풍그룹의 주력사다. 영풍그룹은 재계에서 유일한 ‘한 지붕 두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949년 장병희·최기호 창업자가 공동 창업해 장 씨와 최 씨 일가가 3대째 공동 경영을 이어 가고 있다.

장 씨 일가는 (주)영풍을 비롯한 전자 계열을, 최 씨 일가는 고려아연을 포함한 비전자 계열을 맡고 있다. 시장에서 고려아연의 계열 분리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도 이 같은 독특한 경영 체제에서 기인한다.

최근 두 가문에서 각각 3세 경영이 본격화하면서 계열 분리설이 또다시 힘을 받고 있다. 최 씨 일가 후계 1순위는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으로 최기호 창업자의 장남인 최창걸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장 씨 일가 후계 1순위는 장세준 코리아써키트 사장으로 장병희 창업자의 차남인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의 장남이다. 영풍그룹은 최 부회장과 장 사장을 통해 3세 경영을 본격화했다. 고려아연을 중심으로 하는 최 씨 일가가 독립하는 시나리오가 유력시되지만 아직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두 가문의 지분율과 매출 격차 때문이다. 지분율은 장 씨 일가가 월등히 높지만 장 씨 일가가 맡은 전자 계열사와 최 씨 일가가 맡은 고려아연의 매출 격차가 크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영업이익의 80%를 내는 알짜 계열사다.

이 때문에 고려아연이 계열 분리한다면 영풍그룹의 외형은 급격하게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최 씨 일가도 계열 분리 시 (주)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27.49%를 넘겨받기 위해선 2조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하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