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이어 태양광도 과감한 철수…3월 24일 주총에 ‘블록체인’ 사업 목적 추가

[비즈니스 포커스]
LG전자는 지난 2월16일 세계적 디지털아트 플랫폼 업체 블랙도브와 손잡고 LED 사이니지에 대체불가능토큰(NFT) 예술 작품 감상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사진=LG전자
LG전자는 지난 2월16일 세계적 디지털아트 플랫폼 업체 블랙도브와 손잡고 LED 사이니지에 대체불가능토큰(NFT) 예술 작품 감상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사진=LG전자
LG전자의 거침없는 변신이 주목받고 있다. 실적이 개선되지 않는 사업들은 정리하고 될성부른 미래 신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결단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LG그룹의 경영 이념을 대표하는 것은 서로 아끼고 화합한다는 ‘인화(人和)’였다. 인화를 중시하는 만큼 다른 기업들에 의사 결정이 더디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LG전자는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데 적극적인 모습이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시장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이 뒷받침된 것이다. 지난해 스마트폰을 철수한 데 이어 최근 태양광 사업까지 철수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금 LG전자는 블록체인, 대체 불가능한 토큰(NTF) 등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분야에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변화하고 있다.
돈 안 되면 접는다, 구광모식 ‘선택과 집중’
2월 23일 LG전자는 6월 30일 태양광 패널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공시했다. 2010년 첫 생산 라인을 가동한 이후 12년 만에 태양광 셀과 모듈 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단, 에너지 저장 장치(ESS)와 빌딩 에너지 관리 솔루션인 ‘LG 비콘(BECON)’을 포함해 진행 중이던 에너지 관련 사업과 연구·개발(R&D)은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LG전자의 태양광 사업은 구본무 전 회장이 LG전자의 미래를 이끌 ‘그린 신사업’으로 강조해 온 사업이다. 그만큼 LG전자로서는 그동안 들인 공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 철수를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태양광 사업 부문의 실적 악화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LG전자는 N타입 양면형 등 고효율 프리미엄 태양광 모듈 위주로 사업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시장에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이어지며 고효율 프리미엄 모듈을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해 온 LG전자로서는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현재 LG전자의 태양광 패널 시장점유율은 1%대다. 설상가상으로 폴리실리콘 등 원자재 비용이 상승하면서 회사 내부적으로도 사업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비판이 이어져 왔다. 지난해 3분기에는 원재료인 웨이퍼 평균 가격이 전년 대비 29% 상승한 반면 패널 평균 판매 가격이 5% 하락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기도 했다. 이에 따라 태양광 사업 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도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2019년 기준 1조1000억원대였던 매출은 2020년 80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회사 전체 매출 비율의 1.5%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번 LG전자의 태양광 사업 철수는 구광모 회장이 지난해부터 강조해 온 ‘덧셈 경영’과 맥을 같이한다. 구 회장은 지난해 1월 내부 최고 경영진 회의에서 “미래 성장을 위해 역량 강화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더 과감한 결정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며 ‘덧셈 경영’을 처음 언급했다. ‘돈 안 되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한편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분야는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선택과 집중’을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 실제로 LG는 구 회장 취임 직후부터 2018년 9월 LG서브원의 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 사업 부문을 분할 매각한 것을 시작으로 LG의 품을 떠난 사업들이 적지 않다. 특히 지난해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철수가 대표적인 예다.

LG전자는 지난해 오랫동안 ‘아픈 손가락’이었던 MC사업(모바일·스마트폰)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뗐다. 26년간 이어져 온 휴대전화 사업은 가전·TV와 함께 LG전자의 3대 사업으로 꼽힐 만큼 ‘상징성’이 큰 대표 사업이었다. 철수 직전까지 24분기 연속 적자가 나고 누적 적자가 5조원을 넘어서고 있으면서도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악화가 지속되자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부 교수는 “LG는 잘하는 분야에서 깊이 있는 사업을 추구하는 예측 가능한 기업이었다”며 “구 회장 취임 이후 개방적 역동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LG DNA를 만들면서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의 폭을 넓혀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LG 제공
사진=LG 제공
블록체인과 스마트 TV의 만남, 신사업에 역량 집중
이에 따라 LG전자는 스마트폰에 이어 태양광 패널 사업까지 철수하며 미래 먹거리 분야인 전장 사업(VS)을 제외하고는 적자 부문을 모두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태양광 패널 사업이 속한 B2B 사업을 담당하는 BS사업본부는 IT(모니터·노트북 등), ID(사이니지·상업용 TV 등), 로봇 사업 등에 집중하기로 했다. 또 사업본부와 전사 차원의 신사업을 검토, 육성한다. 신사업은 사내벤처·사내회사(CIC) 등 혁신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역량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 전략적 협력 등도 검토할 계획이다.

김동원 KB증권 애널리스트는 “LG전자가 태양광 패널의 사업 종료를 결정함에 따라 MC 사업 종료와 유사하게 저수익 사업 조정에 따른 선택과 집중의 구조 효율화가 기대된다”며 “지속 가능 및 사업 고도화를 목표로 성장성이 분명한 미래 사업 중심의 투자를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LG전자가 향후 전통적인 하드웨어 제조에서 벗어나 블록체인 사업을 통해 소프트웨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엿볼 수 있는 것이 3월 24일로 예정된 정기 주주 총회다. LG전자는 이번 주주 총회에서 △블록체인 기반 소프트웨어의 개발·판매 △암호화 자산의 매매·중개업, 의료 기기 제작 판매업 등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는 정관 변경안을 결의한다.

의료 기기와 화장품 판매업은 기존 홈뷰티사업부가 판매 중인 미용 관리 기기 ‘프라엘’과 관련된 내용이고 LG전자가 정관에 블록체인 사업을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LG전자 관계자는 “추진 중인 신사업과 기존 사업의 변동 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정관에 회사의 목적 사항을 추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LG전자의 사업 목적 추가가 LG전자의 핵심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전·TV 사업을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블록체인과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TV와 가전은 LG전자가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대표적 사업으로, 스마트 TV 등에 NFT 플랫폼을 탑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LG전자는 최근 지속적으로 블록체인 시장 진출을 위한 움직임을 보여 왔다. LG전자는 2월 21일 카카오의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와 협업해 카카오의 디지털 지갑 클립(Klip)에 구매 보관 중인 NFT 작품을 TV에서 감상할 수 있는 드롭스갤러리(Drops Gallery)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 밖에 지난해 미국 법인을 통해 블랙도브(Blackdove)와 손잡고 프리미엄 가정용 사이니지 디스플레이에 NFT 아트 컬렉션을 추가했고 NFT 기반의 예술 작품 전시회에 시그니처 TV를 선보이기도 했다.
혁신 DNA 품은 LG전자…구광모식 ‘덧셈 경영' 주목
구 회장이 꾸준히 공을 들이고 있는 전장 사업 또한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그동안 과감한 M&A와 합작 법인 설립 등을 바탕으로 ‘성장 잠재력’을 키워 왔다. 애플을 비롯한 대형 전자 업체들이 잇달아 완성차 시장에 직접 진출할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지만 LG전자는 부품 업체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고객사들과 협력 확대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2018년 8월 오스트리아 차량용 헤드램프 기업 ZKW를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1월 스위스 소프트웨어 기업 룩소프트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합작사 알루토를 설립했다. 얼마 뒤인 4월 스마트폰 사업 철수를 밝힌 LG전자는 3개월 뒤인 7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 업체인 마그나인터내셔널과 손잡과 전기차 파워 트레인 분야 합작 법인 LG마그나이파워트레인을 설립한 바 있다. 지난 연말 기준 LG전자의 전장 사업 수주 잔액은 60조~70조원에 달한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태양광 사업 중단 발표로 LG전자의 적자 사업은 전장 사업만 남았다”며 “전장 사업은 성장 사업으로 올해 분기 단위로 흑자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