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과 세입자·모두에게 이익 안 돼…윤 당선인, 성급한 개정보다 단계적 폐지 ‘가닥’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2020년 7월부터 시행된 임대차 3법은 부동산 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 왔다. 전셋값을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자 집주인들은 월세로 집을 내놓기 시작했다. 세입자는 전세 물량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급기야 ‘전세의 월세화’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한국 부동산 시장에 혼란을 일으킨 임대차 3법에 대한 대수술을 예고했다. 임대차 3법은 △기존 2년 임대차 계약 종료 후 1회에 한해 추가 2년을 보장하는 계약갱신청구권 △임대료 증액 상한선을 이전 계약의 5% 이내로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 △임대차 계약 당사자가 계약 30일 이내 신고하는 전·월세 신고제 등이다.
부동산 시장 휘저은 임대차 3법, 2년 만에 사라지나
가속화되는 ‘전세의 월세화’

문재인 정부는 임대차 3법이 세입자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값 폭등으로 전셋값도 함께 오르면서 세입자가 최소 4년간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도록 만든 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어려움만 남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입법 당시 세입자 쪽에서 보면 전세 기간 2년에 추가로 2년을 보장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반면 집주인 쪽에서 보면 4년 동안 5% 이내에서만 인상할 수 있어 정부가 세입자 편만 든다고 반대했다.

집주인들의 생각처럼 철저히 세입자를 위한 법이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4년’이라는 한계다. 오는 7월이면 임대차 3법 시행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을 한 차례 사용한 세입자들이 대거 다른 전셋집을 찾거나 주택을 사야만 하는 시기가 다가온다. 집주인들은 4년간 전셋값을 제대로 올리지 못한 만큼 이번 기회에 크게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아예 월세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금리 인상으로 월세 거래량이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2011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7만1080건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의 첫 만료 기한이 도래하는 올해 중순부터 월세 물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즉, 세입자들은 높아진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월세에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A(35) 씨는 “4년째 살고 있는 전세 아파트가 올해 7월 만료돼 비슷한 곳에서 같은 크기의 아파트를 찾으러 여러 부동산을 다니고 있다”며 “4년 전 5억원대던 아파트가 지금은 8억원을 훌쩍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늘어난 전세 보증금 만큼을 월세로 낼지 고려해 봤지만 다달이 내야 하는 부담에 경기도나 인천으로 이사 가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A 씨와 같은 사례는 주위에 많다.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임대차 3법이 나은 부작용이다.

2016~2019년 서울 전셋값 상승률은 연간 3% 미만이었다. 임대차 3법이 시작된 2020년 7월 4억6400만원이던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은 올해 3월 6억3300만원으로 36% 올랐다. 집값 상승에 더해 임대차 3법도 전셋값 급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 통의동 회의실에서 열린 경제2분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 참여한 모습. / 사진=한국경제신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 통의동 회의실에서 열린 경제2분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 참여한 모습. / 사진=한국경제신문
세입자 장기 계약 시 세제 혜택 주는 방안 유력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3월 28일 임대차 3법을 축소하거나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세입자 보호를 앞세운 임대차 3법이 전·월세 시장의 불안을 초래했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당선인은 국토교통부 업무 보고에서 “집값의 막대한 상승을 부채질한 것은 시장의 생리를 외면한 정책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장 왜곡을 초래한 부동산 규제를 대대적으로 수술하겠다는 방침을 또 한 번 피력한 것이다.

인수위는 임대차 3법 개정보다 단계적 폐지를 주장한다. 보완과 대응책 없이 관련 규제를 풀어버리면 2년간 해당 법안에 익숙했던 시장에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대책은 세입자와 장기간 계약하거나 인상률을 5% 이하로 제한하는 집주인에게 각종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이다. 전문가들 역시 점진적 축소나 폐지가 옳다고 말한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임대차 3법의 갑작스러운 폐지는 현재 전세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격 급등이나 세입자의 불안감 확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수정·보완을 거치며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임대차 3법은 적용 받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안”이라며 “현재 제기되고 있는 문제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점진적으로 개선하되 최종적으로는 폐지가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공인중개사도 인수위의 행보를 반기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임대차 3법 시행 후 시장에선 갱신 계약과 신규 계약 간의 거래 가격 차이로 이중 가격 문제나 집주인의 전·월세 전환,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 등 부작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며 “임대인·임차인·공인중개사에게 고충만 안긴 임대차 3법 폐지·축소를 위한 인수위의 의견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다만 넘어야 하는 산은 많다. 더불어민주당이 임대차 3법 개정·폐지에 부정적인 방침이어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윤 당선인이 취임해 새 정부가 출범해도 국회는 여소야대 상황이다. 인수위는 민주당을 설득해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현재 국회 상황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인수위 부동산 태스크포스(TF) 팀장인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 3법은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부동산 정책의 실패 사례”라며 “부작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민주당을 설득해 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축소·폐지를 염두에 두고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임대차 3법이 효과가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어 개정하되 축소·폐지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열악한 지위에 있는 세입자의 거주권을 보호하고 주거 안정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 만큼 보완만 하면 된다는 반대 주장을 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 휘저은 임대차 3법, 2년 만에 사라지나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