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펀더멘털에도 계속되는 52주 신저가…성장 동력 논란에 ‘임금·문화’ 불만까지

[스페셜 리포트] 삼성전자, 어디로 가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한국 경제의 쌍두마차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직원만 수십만 명에 이르고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한국 경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주식 시장에서는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올 들어 주가가 ‘52주 신저가’를 기록하거나 ‘박스권’에서 맴돈 영향이다. 삼성전자는 18%, 현대차는 1.85%밖에 안 된다. 두 회사가 시가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 아래로 내려왔다. 개미는 사고 외인은 팔았다. 실적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미래 성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소액 주주는 삼성전자가 500만 명, 현대차가 100만 명에 이른다. 600만 명 주주들의 속앓이는 언제쯤 해소될 수 있을까.
삼성전자, 어디로 가나
“지하실 어디인가…삼성전자 또 52주 신저가” (2022년 4월 18일 한국경제TV)
“언제까지 ‘6만전자’…코스피 시총 비중 3년 만에 최소” (2022년 4월 21일 한국경제TV)
“삼성전자 임원들 ‘6만전자’ 샀다…올 들어 자사주 5만여주 매수” (2022년 4월 24일 한국경제TV)


삼성전자 주가는 연일 하락 중이다. 4월 27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장중 6만5000선도 무너졌다. 장중 6만4900원을 기록해 다시 52주 신저가 기록을 깼다. 종가는 6만5000원. 4월에만 반갑지 않은 52주 신저가 기록을 수없이 고쳐 썼다(29일 종가 기준 6만7400원). 투자자들은 ‘도대체 바닥이 어디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어떤 이들은 매일 계속되는 신저가 기록에 울분을 토했다. “십만전자 간다며!” 어닝서프라이즈와 52주 신저가 삼성전자 주가는 올 들어 계속 내리막이다. 지난해 12월 28일 8만300원을 기록했던 이 회사의 주가는 연초 들어 7만원 후반대에서 하락세를 탔다. 3월 들어 ‘6만전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4월엔 6만전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주가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자 한종희 부회장, 노태문 사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임원 21명이 보통주 5만2553주, 우선주 2000주 등 총 5만4353주를 장내 매수했다. 금액으로 셈하면 약 39억원이다. 특히 삼성전자 주가가 7만원 밑으로 내려온 3월에 임원들의 삼성전자 매수가 집중됐다.

하지만 하락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기관과 외국인의 매도가 결정타였다. 올 들어 개인이 삼성전자를 10조1334억원어치 순매수할 동안 기관과 외국인은 각각 6조3498억원어치, 3조9594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삼성전자, 어디로 가나
실적에 문제가 있었을까. 삼성전자가 4월 7일 발표한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잠정 매출은 77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76%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4조1000억원으로 50.32% 증가했다. 증권가 전망치(컨센서스)인 매출 75조2565억원과 영업이익 13조1106억원을 웃돈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다.

실적과 대비되는 부진한 주가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이 엇갈린다. 대체적으로는 기업 외부 변수인 시장 상황에서 문제를 찾았다. 황승택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는 한국 시장의 체질을 반영하는 인덱스인 코스피 그 자체”라며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현 상황에서 외국인들은 삼성전자와 같은 대형주를 중심으로 매도할 가능성이 당분간 높다”고 말했다. 기업의 외적 변수인 매크로 우려로 경기 민감주에 불안감이 큰 상황이고 대장주인 삼성전자에 타격이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문제를 찾는 이들도 있다. 성장에 대한 의심이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실적은 좋지만 성장에 대한 의심이 남아 있다”며 “(우리의) 생각보다 시장은 한국의 반도체·전자 업종에 그렇게 큰 점수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매크로 우려로 경기 민감주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쯤 되면 단순히 체계적 위험에 따른 영향만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견조한 실적과 대비되는 부진한 주가로 (기업의) 미래에 대한 의심이 싹트고 있다”고 말했다. 펀더멘털을 의심하라 삼성전자의 사업은 크게 4개 부문으로 나뉜다. CE와 IM을 통합한 DX(TV·모니 터·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을 담당하는 CE와 스마트폰·네트워크 시스템·컴퓨터 등을 맡은 IM) 부문 △D램·낸드플래시·모바일 AP 등의 제품을 담당하는 반도체 사업과 디스플레이 패널을 생산·판매하고 있는 DP 사업으로 구성된 DS부문 △ 텔레매틱스·스피커 등을 담당하는 하만(Harman)부문이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사업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DS부문이다. 2021년 연간 매출 기준으로 부문별 비율은 DS(44.7%), IM(39.1%), CE(20.0%), 하만(3.6%) 순이다. 영업이익으로 보면 반도체의 힘은 더욱 커진다. 지난해 영업이익 기준 부문별 비율은 DS부문이 65.3%로 가장 높았다. DP사업을 뗀 반도체 사업 비율만 56.6%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반도체사업부가 벌어들인 셈이다.

그런데 이 반도체 사업에서 최근 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이 2021년부터 2022년 1분기 누적 주가 상승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미국의 엔비디아 108%, 대만의 TSMC 14%, 미국의 인텔 2%로 상승률을 기록한 반면 삼성전자는 마이너스 14%를 기록했다. 동일한 업황에서 전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 중 삼성전자만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전 세계 반도체업계를 강타한 인플레이션으로 야기된 경기 둔화 우려, 그로 인해 가계의 비필수재인 정보기술(IT) 내구재 소비 둔화를 차치해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어디로 가나
시장의 가장 큰 우려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의 미래다.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선 글로벌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지만 파운드리 사업은 만년 2위다. 파운드리는 4차 산업혁명의 필수품인 시스템 반도체를 외주 생산하는 사업으로, 이 시스템 반도체가 들어가는 5세대 이동통신(5G),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이 부상하며 슈퍼 호황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파운드리 1위 사업자인 TSMC와 2위인 삼성전자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대만의 반도체 전문 시장 조사 기관인 트렌드포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TSMC의 올해 시장점유율(매출 기준)은 지난해보다 3%포인트 오른 56%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 반면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18%에서 2%포인트 하락한 16%로 전망했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TSMC와 삼성 간 기술·설비 투자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며 “하이엔드 시장에서는 TSMC가 독주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인텔의 2위 경쟁이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최근 공급망 공포에 반도체 패권 경쟁이 커지면서 미국이 인텔 등 자국 반도체 기업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애널리스트는 “인텔의 대규모 투자 계획도 불안한 변수”라며 “만약 미국의 반도체 대전략이 아시아 의존도 축소로 방향을 튼 것이라면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 반도체 산업과 경제 전반에 부담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맏이’만의 문제일까. 반도체 다음으로 삼성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IM부문과 CE부문도 최근 브랜드 신뢰에 금이 가는 일이 생겼다. 올 초 스마트폰업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게임 최적화 서비스(GOS)’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GOS는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게임 등을 실행할 때 기기 성능을 인위적으로 낮춰 스마트폰의 과열을 막아 주는 기능이다. 삼성전자는 최신형 스마트폰인 ‘갤럭시 S22’를 출시하면서 GOS를 실행하지 않은 최적의 환경에서 성능을 테스트해 이를 토대로 광고한 대신 실제 소비자들이 사용할 때는 이 기능을 비활성화하거나 삭제할 수 없도록 했다.

이용자들은 ‘소비자 기만’이라며 거세게 항의했고 수천 명의 갤럭시 구매자들은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에선 지나친 원가 절감이 이러한 논란을 야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발열을 막는 데 방열판을 확충하거나 내부 설계 변경을 고려하는 대신 소프트웨어로 성능을 제한하는 것을 선택해 원가 절감에 나섰다는 것이다.

한종희 부회장이 직접 나서 사과했지만 브랜드 신뢰도는 이미 추락한 뒤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유튜버 ‘네모난꿈’이 8700명의 갤럭시 사용자를 대상으로 “이번 GOS 문제로 추후 갤럭시에서 아이폰으로 기종을 바꿔 구매할 것”인지 묻자 전체 응답자 중 56%가 ‘GOS 없는 아이폰으로 넘어가겠다’고 답했고 ‘기존대로 갤럭시를 사용하겠다’는 응답은 21%에 불과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타깃층이 되는 ‘팬덤’이 흔들린 것이다. 황민성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GOS 이슈로 일부 소비자가 소송을 진행하는 만큼 삼성전자의 브랜드에 심각한 훼손이 있을 수 있다”며 “(삼성의) 미온적인 대처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CE부문의 자체 생산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병행 전략도 브랜드 신뢰를 떨어뜨리는 부분 중 하나로 꼽힌다. 예컨대 동일한 비스포크 라인에서도 에어컨은 자체 생산이지만 식기세척기 제품은 중국의 가전 제조 업체인 메이디가 OEM 방식으로 생산한다. 삼성전자는 병행 전략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하지만 소비자들은 “삼성이란 브랜드를 믿고 구매하는데 사실상의 택갈이(동일한 상품에 브랜드 상표와 가격표를 다르게 붙여 판매하는 것)가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삼성 자부심 옛말, 특단 조치 취해야 ‘파란 피’로 상징되는 이른바 ‘삼성맨의 DNA’도 점점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 삼성전자의 가장 핫한 이슈는 임금 협상이다. IT업계가 인재 경쟁에 파격적인 연봉 인상에 나선 가운데 삼성전자는 지난 4월 29일에서야 올해 연봉 인상률을 평균 9%(고과 차등)로 결정했다. 통상적으로 임금인상을 2~3월에 실시했지만, 4월까지 미뤄진 적은 올해가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그간 경쟁 업체보다 1.5배 정도 높은 연봉을 유지하며 핵심 인재의 이탈을 방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SK하이닉스·DB하이텍 등 한국의 경쟁사마저 삼성전자의 연봉 인상률을 추월하거나 동급으로 맞추면서 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삼성전자 직원 A 씨는 블라인드 애플리케이션에서 “더 이상 업계 1위 대우가 아니다”며 “SK하이닉스에 한참 밀리는 급여에 자부심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업계 최고 보상은 옛말이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조직도 늙어 가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40대 이상 임직원의 비율은 2010년 11.7%(2만2313명)에서 2020년 23.1%(6만1878명)로 10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20대 임직원의 비율은 55.7%에서 37.3%로 18.5%포인트 줄었다. 특히 10년째 삼성전자에서 최다 인력을 차지했던 20대 비율(37.3%)이 2020년 처음으로 30대(39.6%)에 역전됐다.
삼성전자, 어디로 가나
내부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혁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블라인드 등에선 ‘미래를 볼 줄 모르고 원가 절감에 사람 쥐어짜는 회사’, ‘경영진이 장기 계획을 갖고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 ‘FAANG 수준의 엔지니어를 원하지만 문화·급여·대우 어느 하나 그 수준을 충족하지 못함’ 등 현 직원들의 부정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경제계에선 최근 삼성전자 위기 원인을 ‘리더의 부재’에서 찾으며 5월 8일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복권을 기대하고 있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 부회장은 오는 7월 가석방 형기가 만료되지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향후 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해외 현장 경영을 위한 출장 때도 일반인보다 절차가 복잡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인수·합병(M&A)이나 대규모 투자와 같은 중요한 사업을 타진할 때 상대 측에서 실무진보다 이 부회장과의 만남을 선호한다”며 “글로벌 네트워크 확보나 현장 경영에 걸림돌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의 대규모 M&A는 2016년 하만 이후 찾아보기 힘들다. 이 사이 인텔과 TSMC가 무서운 속도로 몸집을 키우며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위기의식을 갖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시기라고 말한다. 이승우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주가 상승을 위해서는 투자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파운드리에서의 파격적 진전이나 의미있는 M&A를 통힌 새로운 성장 동력을 장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단의 조치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애플처럼 적극적인 주주 친화 정책을 펴거나 대만의 TSMC처럼 주식의 일부를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하는 방법 등이다.

이남우 연세대 객원교수는 최근 ‘이남우의좋은주식연구소’ 유튜브에서 삼성전자가 구조적인 레벨업을 하는 방법으로 자사주 매입과 소각, 미국 나스닥에 일부 주식 상장, 글로벌 스탠더드 정립 등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삼성전자는 성장·주주 환원·주가 레벨업이 모두 가능한 초우량 기업임에도 전 세계 반도체 회사 중 주가수익률(PER)이 제일 낮다”며 “자사주를 지속적으로 매입·소각하고 미국 나스닥에 일부 주식을 상장해 이사회를 글로벌 관점에서 업그레이드하는 등 대만의 TSMC에 한 수 배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