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시장 규모 1조원까지 ‘점프’…2007년 이후 성장 멈췄던 것 따지면 ‘주의’ 필요

‘2022 화랑미술제’를 찾은 관람객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한국경제신문
‘2022 화랑미술제’를 찾은 관람객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한국경제신문
“우와. 이게 무슨 일이야.” 지난 3월 16일부터 5일간 강남구 세텍(SETEC)에서 2022 화랑미술제가 열렸다. 윤현정(38) 씨는 세텍 출입구부터 끝없이 늘어서 있는 긴 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VIP들만 참석할 수 있는 전시 첫날이라 여유롭게 입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전혀 달랐다.

윤 씨는 꽤 쌀쌀한 날씨를 버티며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며 ‘다들 VIP스럽다’고 생각했다. 언뜻 보기에도 대부분 사람들의 패션이 남달랐다. 눈에 띄는 점은 20, 30대가 꽤 많이 보였다는 것. 윤 씨는 그간 시간이 허락하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나 화랑미술제 등 대형 미술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꾸준히 참석했다. 과거 전시회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50대에서 60대였다. 참석하면 자신이 ‘젊은이’가 된 기분이라 으쓱했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에선 달랐다. 젊은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십여 분을 줄을 서 기다리던 윤 씨는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300만원 그림이 1000만원 되다

“작가님. 줄이 너무 길어 약속 시간에 맞출 수가 없겠어요. 어쩌죠. 나와 줄 수 있나요.” 윤 씨는 그날 화랑미술제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와 전시장 안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작가와는 7년 전 작가의 그림을 사면서 인연을 맺었다. 당시 작가는 이름이 막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알음알음으로 작가의 작품을 300만원에 구입한 7년 전의 그날, 윤 씨는 행복했다. 자신도 이제 ‘컬렉터’가 됐다는 뿌듯함이 가장 컸다.

그림을 집 안에 들인 이후 윤 씨는 작품을 보며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 풍성한 나무 위에서 새들이 놀고 있는 작품을 보면 항상 편안해졌다. 내친김에 한두 해 지나 작가의 그림을 하나 더 샀다. 두 개의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을 보면서 더 행복해졌다.

최근 윤 씨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작가가 유명세를 타면서 처음 산 그림 크기 만한 작품이 1000만원을 호가한다는 것이다. 좀 더 크기가 큰 둘째 작품은 얼마일지도 가늠이 안 된다. 몇 년간 즐거움도 얻고 돈도 벌었으니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요즘 미술 시장은 좀 무서워요.” 작가는 요즘 미술 시장 분위기가 정말 뜨겁다고 했다. 너무 뜨거워 작가도 좀 겁이 날 정도였다고 했다. 작가는 20년이 넘게 별생각 없이 그림을 그려 왔다. 컬렉터와의 관계도 소소히 친구처럼 지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친구도 맺고 말이다. 윤 씨도 그런 친구 중 하나다.

그런데 2~3년 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돈이 몰려들기 시작하니 화랑과 컬렉터들이 그림을 그려 달라고 난리다. 돈이 움직이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다. 하나하나 부탁을 받다 보니 앞으로 3년 치 그림이 밀려 있다고 했다. 작품이 인정받는 것은 좋은데 무슨 빚을 진 것처럼 그림을 쏟아내야 하니 부담감도 커졌다고 했다. 돈으로만 평가받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했다.

작가를 만나고 온 윤 씨는 고민이 하나 생겼다. 새로운 작가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전시회에서 만난 작가와 함께 예전부터 눈여겨보던 그림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등으로 유명해지면서 가격이 ‘넘사벽’이 됐다.
사실 지난해 윤 씨가 투자했던 주식과 암호화폐는 말 그대로 ‘죽’을 쑤고 있다. 마음을 다스려 줬던 그림은 돈도 벌어 줬는데 돈을 보고 투자했던 것들은 가정 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최근 소문을 들으니 요즘 미술계에선 도자기가 유행을 타고 있다고 한다. 손해는 크지만 눈 딱 감고 주식과 암호화폐를 팔아 치운 후 다른 작가의 그림 혹은 도자기를 살까 한다. 분명 몇 년 후에는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2022 화랑미술제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있다./한국경제신문
2022 화랑미술제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있다./한국경제신문

미술 시장 열기, 작가들도 두렵다

윤 씨의 사례는 요즘 미술 시장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한국 미술 시장의 열기는 뜨겁다. 한국 미술 시장은 최근 급격히 팽창해 매출 1조원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2020년 시장 규모 3277억원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커졌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집계에 따르면 2021년 한국 미술 시장 규모는 약 9157억원이다. 미술 시장을 파악하는 핵심 지표는 화랑 판매액, 주요 경매사 낙찰 총액, 아트페어 매출이다. 화랑 판매액은 4372억원을 기록했다. 주요 경매사 낙찰 총액은 3242억원이었다. 아트페어 매출은 1543억원 규모였다. 이는 국립미술관 등 공공 영역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민간 유통 시장 규모를 추산한 수치다. 2020년 화랑·경매사·아트페어 판매액은 각각 1057억원·1152억원·468억원 수준이었다.

미술 시장이 급성장한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코로나19 사태와 ‘보상 소비’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도 길어졌다. 인테리어 소비가 대폭 늘면서 동시에 그림을 집에 두고 즐기는 문화가 성장했다. 여기에 작년 봉쇄가 느슨해지면서 미술품의 ‘보상 소비’가 시작됐다. 중단됐던 미술 전시회가 북새통을 이루는 배경이다. 미술품은 아무래도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다. 실제로 봐야 ‘아우라’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려는 투자자들의 열망도 한몫했다. 부동산과 주식이 오를 만큼 오르자 수익률이 좋은 미술 작품으로 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술품은 취득·등록세나 보유세가 없을 뿐만 아니라 6000만원 미만 작품과 한국 생존 작가의 작품은 양도세도 면제된다.

아시아의 중심이었던 홍콩 미술 시장이 정치 상황으로 위축되면서 한국이 새롭게 부상한 것, 이건희 컬렉션의 여파로 수집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 등도 영향을 미쳤다.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 등 유명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수시로 미술관을 방문하며 화제를 끈 것과 NFT 예술이 세계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 것 등도 미술 시장에 관심을 두게 된 요인이 됐다.

실제 미술 작품의 투자 수익률도 괜찮다. 미술 투자 자문사 마스터웍스가 현대 미술과 금융 투자 자산의 25년간(1995~2020년)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현대 미술(1945년 이후 제작 작품) 수익률(14.0%)의 안정적·전통적 투자품인 ‘금(6.5%)’보다 높았다.


문제는 앞으로다. 일단 관련 전문가들은 올해 미술품 시장은 괜찮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아트페어 부문의 성장이 기대된다. 한국 최대 아트페어인 KIAF가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와 공동 개최되기 때문이다. 경매 시장도 들썩인다. 올해 1분기 미술 경매 낙찰액은 785억3000만원으로 지난해 1분기 대비 48.8% 증가했다. 글로벌에서도 세계 최대 경매사인 소더비의 재상장이 논의될 정도로 전망이 좋다.

하지만 이 같은 예상은 그저 예상일 수도 있다. 실제로 2007년 6000억원까지 성장했던 한국의 미술 시장은 2008년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2020년까지도 그 당시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랬던 시장이 한 해 만에 세 배 커진 것이다. 언제든 이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미술품에 투자하려면 중요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사라’는 것이다. 문화 콘텐츠 투자 자문을 하는 김종범 디인베스트랩 대표는 “미술 컬렉션은 영혼이 있는 황금을 수집하는 헌팅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매한 작품의 값이 올라 투자 수익을 거두는 게 최상이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샀다면 심미적 만족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품은 귀로 사지 말라’는 것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당부다. 스스로 차분하게 공부해 자신의 안목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다. 주식에 투자하기 위해 기업 내용을 속속들이 살피는 것처럼 미술품도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도록 작품의 가격 추이, 유행하는 화풍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오랜 시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음의 평화와 투자 수익을 동시에' 미술 시장에 돈 몰린다

[돋보기] 경매 사상 가장 비싼 그림 2위는 피카소 작품, 1위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30대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약 5500억원에 구매한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작품이다. 프랑스 미술 시장 조사 업체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역대 미술품 경매가 상위 5개 중 1위는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회화 작품 ‘구세주(Salvator mundi)’로 알려졌다 ‘구세주’는 2017년 11월 15일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4억5031만 달러(약 5568억원)에 낙찰돼 세계 예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구매자는 바드르 빈 압둘라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문화부 장관 및 사우디 왕세자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제7대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조카다.

세계에서 둘째로 비싼 그림은 2016년 5월 11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1억7936만 달러(약 2217억원)에 판매된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이다. 3위와 4위는 이탈리아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누드 그림이다. 작품인 ‘누워있는 누드’는 2015년 11월 9일 1억7040만 달러(약 2107억원)에 판매됐다. 이후 ‘어깨 너머로 시선을 둔 누드’는 2018년 5월 14일 1억5715만 달러(약 1943억원)에 낙찰돼 4위를 차지했다. 5위는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시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으로 1억4240만 달러(약 1760억원)에 2013년 11월 12일 판매됐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