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옮겨 간 국방부 벙커, 청와대보다 뛰어나고 재해 재난 통신망 갖춰 안보 이상無

홍영식의 정치판
국가 안보의 핵심 ‘지하 벙커’의 모든 것[홍영식의 정치판]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자마자 벌어진 정치권 논란이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안보 공백 이슈였다. 윤 대통령은 3월 9일 당선 직후 청와대 이전을 선언했다. 당초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이전을 공약했지만 경호 등 여건상 무리라고 보고 대체 후보지로 찾은 게 용산 국방부 청사였다. 청와대엔 아예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대통령에 취임하는 두 달 내에 대통령실을 이전하겠다고 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안보에 구멍이 생긴다며 거세게 공격했다.

안보 논란 이슈 중에서도 중심에 올라온 것이 지휘 통제 시스템, 즉 지하 벙커다. 청와대 지하 벙커와 대통령이 활용할 국방부·합참 지하 벙커의 기능이 달라 위기관리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이 줄기차게 비판한 근거다. 대통령실이 국방부 청사로 옮기고 국방부는 그 옆에 있는 합동참모본부(합참)로 당장 들어가고 합참은 추후 관악산 수도방위사령부로 이전하면 혼란을 틈 타 안보 공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 관계 장관회의에서 “한반도 안보 위기가 고조돼 안보 역량 결집이 필요한 교체기에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와 국방부, 합참 이전은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무엇이 진실일까.

국방부·합참 지하 벙커, 핵공격·강진에도 견뎌

남북한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서울과 인근에 지하 벙커들을 여럿 두고 있다. 남북한 분단 상황 때문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 여러 곳에 지하 벙커들이 있다. 알려진 대규모 지하 벙커만 7곳에 달한다. 대표적인 곳이 청와대 지하 벙커(정식 명칭은 국가위기관리센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5년 전시대피실로 만들었다. 전화선이 연결된 사무실 정도의 기능밖에 하지 못하던 것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내부를 완전히 바꿨다.

안보 위기, 재난·재해 발생 시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고 군과 행정 기관에 지시할 수 있는 시설로 개조한 것이다. 이후 여러 번의 개·보수를 거쳤다. 한쪽 벽면에 수십 개의 작은 화면으로 나눠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이 있다. 육·해·공군 지휘부, 각급 부대는 물론 중앙 및 지방 행정 기관, 전국에 설치된 CCTV와도 연결해 안보 상황과 산불 등 재난·재해를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할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1월 해군 특수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하는 과정도 이곳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인공위성을 통해 들어오는 북한의 군 공항과 군항 등 움직임도 거의 실시간 파악할 수 있다. 북한 핵실험·미사일 등 도발 시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여는 곳도 이곳이다. 대통령실 이전으로 이곳은 기밀 시설과 자료를 옮긴 뒤 국민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국방부와 바로 옆 합참 지하에 각각 설치된 벙커는 평시 안보 상황을 관리하는 곳이다. 육·해·공군 본부와 작전사령부, 각급 부대와 연결된 한국군합동지휘통제체계(KJCCS)를 통해 각군을 총괄한다. 미국 합참과 태평양사령부, 한·미연합사 등과 군사 정보와 작전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한·미연합전구지휘통제체계(CENTRIXS-K), 화상 지휘 시스템을 갖췄다. 24시간 운용하며 북한 도발 상황도 실시간 점검해 청와대와 군 주요 지휘부에 보고하고 작전을 지휘한다. 북한의 핵 공격과 리히터 규모 8.38의 강진, 전자기파(EMP) 공격도 견뎌낼 수 있다.

길이 900m 관악산 B-1 벙커, 전시 행정부 가동

가장 중요한 지하 벙커는 수도방위사령부 관할의 관악산 B-1이다. 전쟁 바로 직전인 데프콘(전투준비태세)2가 발령되면 이곳에 전시행정부 가동 준비에 들어가고 전쟁이 발발하는 데프콘1이 되면 전시행정부 가동에 들어간다. 대통령과 청와대 주요 참모, 장차관 등 행정 부처 주요 인사들, 국방부 주요 부서, 합참 지휘부 등이 이곳에 모인다. KJCCS와 전술지휘합동지휘통제체제(C4I) 등을 통해 전장의 데이터와 정보가 집결돼 대통령과 군 지휘부의 작전 지휘를 돕는다. 해군 이지스함과 그린파인레이더 등에서 보내 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 미사일을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고 북한 전역의 주요 군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점검할 수 있는 대형 스크린 등도 설치돼 있다.

국방부와 합참 지하 벙커 기능을 모두 갖춘데 더해 중앙과 지방 행정 기관, 주요국과도 연락망이 가동되고 있다. 평상시 이뤄지는 주요 군과 행정 기관의 업무가 가능한 곳이다. 한·미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지휘가 이곳에서 이뤄진다. 전시 대통령 집무실도 있다.

서울 사수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B-1 지하 벙커의 길이는 900m, 너비는 150m 정도 된다. 웬만한 마을 크기다. 식량만 갖추면 1000여 명이 수개월 동안 생활할 수도 있다. 최근 전시 작전 전환에 대비해 확장·리모델링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군 출신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을지훈련 기간에 가족을 데리고 이곳에서 며칠 지내며 훈련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연합사령부가 운영하는 ‘CP탱고(Theater Air Naval Ground Operation)’는 경기 청계산 지하에 있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이 지하 벙커는 단단한 화강암반 밑에 있어 핵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첩보 위성과 주한미군 U-2 정찰기의 대북 감시 정보, 미국 중앙정보국(CIA)·국방정보국(DIA) 등의 첩보 등을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다.

CP탱고는 존재 자체가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그러다가 2005년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이곳을 방문해 ‘워 게임(war game)’을 하던 군인을 격려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수천 평 규모의 크기로, 수백 명의 군인이 외부 지원 없이 2개월 정도 생활할 수 있다.

민주당의 안보 공백 주장에 대해 군 안팎에선 그리 큰 문제가 안 된다고 반박한다. 군 관계자는 “국방부 청사에는 C4I 시스템 중 국방 통신망과 국가 지도 통신망이 설치돼 있다”며 “청와대에는 있지만 국방부에는 없는 교통·소방 방재 등 재해·재난 안전 통신망도 추가로 갖췄다”고 했다. 안보 공백이 없다는 얘기다.

실제 작전 지휘는 국방부 옆 합참 지하 벙커에서 이뤄지는데 이곳은 24시간 가동되고 있어 청와대의 국방부 이전 과도기에 유사시 작전 지휘 체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군의 시각이다. 합참을 수방사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도 민주당이 반대했지만 오히려 작전 지휘에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많다. 전쟁이 발발하면 합참 지휘부가 수방사 B1 벙커로 이동해야 하는데 전쟁 실행 사령탑인 합참이 이곳에 있으면 그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청와대보다 국방부 청사로 이전한 집무실에서 B1벙커로 더 빨리 갈 수 있다.

지하 벙커 기능 측면에서도 청와대와 국방부·합참 벙커는 비교가 안 된다. 청와대 벙커는 합참 벙커의 15분의 1, 국방부 벙커의 5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미군과의 정보 교환의 질 등을 따져봐도 청와대 벙커가 한참 떨어진다.

특히 청와대 지하 벙커는 노후화돼 북한 탄도 미사일에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있다. 반면 국방부와 합참 건물은 탄도 미사일 공격에도 견딜 수 있어 오히려 안전하다. 특히 국방부와 합참 지하 벙커는 북한의 핵 공격에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B1벙커도 마찬가지다. 다만 윤 대통령의 자택 출퇴근에 따른 안보 공백 논란이 없도록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