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벤처스, 글로벌 유니콘 1050곳 분석…대학생 필수 앱부터 중국 아파트 임대 업체까지 ‘상상 가능한 모든 것’

[비즈니스 포커스]
‘당신의 불편함이 우리에겐 기회’…세상을 바꾸는 글로벌 유니콘들
영국에서 공부 중인 박 모 씨가 현지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레볼루트(Revolut)’라는 모바일 뱅킹 업체를 통해 계좌를 개설하는 일이었다. 유학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은행들을 통해 계좌 개설이 필요한데 이 과정이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레볼루트를 활용하면 이 과정이 매우 간편하다. 지점을 직접 방문해 은행원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 없이 그저 신분증 사진을 통한 간단한 검증만 거치면 통장이 만들어지고 ‘온라인 카드’를 발급 받아 현지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다.

환전이 간편한 것 또한 장점이다. 레볼루트의 통장에 한국 통장을 연결해 놓기만 하면 필요할 때 ‘돈 더하기(Add Money)’ 기능을 통해 복잡한 중간 과정 없이 원화를 파운드화로 환전할 수 있다. 방학 기간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도 이 환전 기능은 매우 요긴하다. 논문 작성을 위해 급하게 스페인을 찾은 박 씨는 유로 환전을 못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의 일부를 ‘유로’로 바꿔 놓은 뒤 온라인 카드로 현지에서 모든 결제를 해결했다. 모바일 계좌의 ‘영국 국기’를 ‘유럽연합’ 국기로 바꿔 놓는 것만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간편하게 현지 통화로 결제가 가능한 것이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레볼루트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핀테크 업체 중 하나다. 2015년 설립된 레볼루트는 저축과 같은 뱅킹 서비스 외에도 지출 분석, 예산 관리, 간편 결제 등 금융과 관련된 거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30개 이상의 국가에서 자유로운 환전이 가능한 데다 주식과 암호화폐 투자까지 가능해 ‘금융계의 우버’로 불린다. 2022년 4월 18일 기준 기업 가치 330억 달러(약 41조원)로 전 세계에서 열셋째로 높은 가치를 평가받는 ‘유니콘 스타트업’이다.

한국 벤처 투자사인 패스트벤처스가 최근 ‘CB인사이츠의 유니콘 클럽’에 올라가 있는 글로벌 유니콘 업체들을 분석해 공개했다. CB인사이츠는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22년 5월을 기준으로 기업 가치 10억 달러(약 1조원)를 넘어서는 글로벌 유니콘 스타트업은 1000개를 넘어선다. 미래의 ‘페이스북’과 ‘구글’ 후보들이다. 스타트업은 결국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세상의 불편함’을 찾아 이를 자신들만의 방식과 기술로 해결해 나가는 데 가치가 있다. 1000개가 넘는 글로벌 유니콘들은 세상의 어떤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을까. 불편함은 존재하지만 아직 해결책이 없는 그곳에 ‘투자 기회’가 숨어 있다.

데카콘 가장 많은 분야는 ‘핀테크’

리스트에는 기업 가치 100억 달러(약 10조원) 이상의 ‘데카콘’만 해도 무려 50여 곳 이상, 기업 가치 1000억 달러(약 100조원) 이상의 ‘헥토콘’도 2곳이다. 엘론 머스크의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는 현재 약 1000억 달러(약 124조원) 정도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세계 최초의 상용 우주선 발사, 세계 최초 민간 우주 비행사의 국제 우주 정거장 도킹 등 혁신에 성공했다. ‘우주’라는 무한한 가능성에 기반을 둔 스페이스X보다 더 높은 기업 가치를 평가받는 곳이 있다. 중국의 ‘바이트댄스’다. 쇼트 폼 비디오 콘텐츠인 ‘틱톡’을 운영하는 곳으로 1400억 달러(약 174조원)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틱톡은 2021년 기준 미국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 된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이제는 ‘레드 오션’으로 여겨질 법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여전히 폭발적인 잠재력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특히 기업 가치가 높은 업체들 가운데 가장 자주 눈에 띄는 분야는 단연 ‘핀테크’다. 데카콘 이상의 기업 가치를 평가 받은 52개 기업 가운데 13개 업체가 핀테크다. 기본적으로 규제 산업인 금융은 그만큼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많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살 때 거쳐야 하는 수많은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스트라이프(기업 가치 950억 달러), 신용카드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신용카드 없는 온라인 후불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웨덴 핀테크 업체 클라르나(기업 가치 456억 달러) 등이 핀테크의 대표 주자들이다. 스타트업 급여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스토(기업 가치 100억 달러)도 눈여겨볼 만한 핀테크 업체다. 고객이 원하는 날짜에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유연한 급여(플렉서블 페이)’ 기능을 제공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핀테크 업체 가운데서도 B2C가 아닌 B2B를 중심으로 하는 티팔티(기업 가치 83억 달러)는 주목할 만하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거래와 관련된 대부분의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는 툴을 제공한다. 송장 관리, 공급 업체 관리, 결제 조정, 세금 준수, 구매 주문(PO) 매칭 등 복잡한 결제 시스템을 자동화했다. 트위터·우버·로블록스 등이 고객사다.
‘당신의 불편함이 우리에겐 기회’…세상을 바꾸는 글로벌 유니콘들
‘미묘한 불편 해결사’ 자처한 유니콘들

이커머스와 디지털 헬스케어 또한 유니콘들이 특히 많은 대표적인 업종이다. 기업 가치 390억 달러의 ‘인스타카트’는 쇼퍼가 장을 대신 봐 배달해 주는 서비스다. 외식 비용은 점점 더 비싸지는 데 장 보기는 갈수록 귀찮아진다. 인스타카트는 이와 같은 귀찮음을 공략한 서비스다.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 ‘1시간 혹은 2시간 내 배송’을 앞세우고 있다. 특히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며 ‘아마존 프레시’를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

지역의 소규모 판매상들과 지역 상품 생산자들을 연결해 주는 온라인 도매 마켓 플레이스 ‘페어’도 한국에는 없는 대표적인 서비스다. 자본력이 취약한 소매점과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하는 게 중요한 소규모 제조사들에 모두 ‘윈-윈’이 될 수 있는 사업 모델이다. 온라인 버전의 코스트코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이커머스 업체 싱셩설렉티드(기업 가치 80억 달러)는 신선식품 공동 구매 모델의 스타트업이다. 소비자가 하루 전 위챗 온라인 채팅 그룹을 통해 주문을 하면 다음날 지역 상점에서 물건을 픽업할 수 있다.

미국의 시니어 대상 헬스케어 서비스인 ‘디보티드 헬스(기업 가치 126억 달러)’는 고령자 건강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기존 보험에서 보장하는 서비스 외에 응급 수술, 특정 약품 처방 등 시니어 고객에게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보장한다. 중국의 원격 진료 플랫폼인 ‘위닥터(기업 가치 70억 달러)’는 진찰 예약부터 문진, 의료비 정산을 포함한 모든 의료 서비스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제공한다. 현재까지 등록한 사용자 수만 2억 명을 넘어선다. 하지만 위닥터의 진짜 무기는 ‘방대한 의료 데이터’다. 원격 진료와 온라인 약국 등을 통해 쌓이는 의료 데이터는 클라우드 시스템을 통해 의료 기관과 정부에 전달되는데 이는 의료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는 데 사용되고 있다.

파나틱스는 세계 최대 라이선스 스포츠 용품 공급사다. 미국프로야구(MLB)·미국프로농구(NBA)와 같은 미국 프로 스포츠 리그의 상품 등을 온라인으로 판매한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굿즈나 스포츠웨어 등을 손쉽게 ‘직구(직접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기업 가치 270억 달러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머리(기업 가치 130억 달러)’는 대학생을 비롯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이미 필수가 된 앱 중 하나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개발된 미국의 ‘디지털 라이팅 툴’로, 영어로 에세이를 작성할 때 잘못된 문법을 잡아주고 대체할 수 있는 문구를 제안해 준다. 이 밖에 AI를 기반으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리포트나 논문 등과 비교해 ‘표절’을 잡아주는 기능도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서비스 모델도 눈에 띈다. 미국의 서비스타이탄(기업 가치 95억 달러)은 배관이나 전기 설비와 같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주로 이용하는 매니지먼트 툴이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통해 현장에서 작업 중인 기술자와 의사 소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현장 기술자와 기업 모두 불필요한 작업을 줄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미국의 ‘공(기업 가치 72억 달러)’은 AI 기술을 기반으로 세일즈 부문에 특화된 매출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업 사원들의 전화나 콘퍼런스콜 등에서 수집한 음성 데이터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세일즈와 연관된 패턴을 파악하고 기업의 매출 증대, 고객 이탈 감소,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원격 근무 영업팀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룸(기업 가치 66억원)은 중국 내 아파트 렌털 서비스 업체다. 아파트를 임대해 리모델링한 뒤 다시 장기 세입자에게 임대하는 개념이다. 일종의 에어비앤비·야놀자·직방을 모두 합한 사업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패스트벤처스 측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는 데 한국보다 앞서 나가는 국가들에서 성장하는 회사들을 찾아보고 이와 같은 모델이 한국에서도 가능할지를 고민해 보는 방식은 유용하다”며 “글로벌 유니콘 기업들의 껍데기만 그대로 베낀다면 ‘카피캣’이 될 수 있지만 이들이 어떻게 해당 국가에서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 본질에 집중한다면 관점을 넓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