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여소야대 상황에서 임대차3법 폐지 어려워"
분상제 개편안에 ‘택지비’ 산정 방식 변경 빠져
윤석열 정부가 대선 때부터 일관되게 부동산 시장의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를 내걸었던 만큼 이번 정책에 큰 관심이 쏠렸다.
정부는 대선 당시 임대차 시장 안정화를 두고 ‘임대차 3법’에 대해 “폐지에 가까운 전면 개편”을 약속했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폐지에 가까운 근본적인 개선”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정책은 대선 당시 약속한 것처럼 파격적인 개편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부는 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임대차 3법을 뜯어고치는 대신 당장 가능한 세법 시행령 개정과 대출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임대차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부작용을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택했다. 임대차 3법 개정, 8월 이후 ‘전세 대란’ 막는 데 초점 2020년 8월 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제(2년+2년)와 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시 임대료 최대 5% 인상) 시행 직후 계약을 갱신한 전월세 물건이 오는 8월부터 시장에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을철 계절 수요가 중첩되면서 임차를 앞둔 임차인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었다. 이에 따라 전셋값이 폭등할 가능성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정부는 우선 전월세 계약 갱신 때 세입자가 내는 전세나 월세 인상 폭을 5% 이내로 맞춘 이른바 ‘상생 임대인’의 요건과 혜택을 완화하기로 했다. 현재는 임대 당시 기준 시가 9억원 이하 1주택자만 상생 임대인으로서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서울특별시와 세종특별자치시, 부산 해운대구 등 조정대상지역 1주택자가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이 집에 2년 이상 실제 거주해야 하는데 상생 임대인은 거주 요건이 1년으로 완화된다.
정부는 7월 안에 소득세법 시행령을 고쳐 1주택자뿐만 아니라 향후 1주택자로 전환할 계획이 있는 다주택자에게도 상생 임대인 혜택을 주기로 했다. 또 양도소득세 비과세를 위한 2년 거주 요건을 전면 면제하기로 했다. 최대 40%의 장기 보유 특별 공제 혜택도 추가된다.
계약 갱신이 만료되는 임차인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 지난 4년동안 전셋값 상승 폭을 감안해 버팀목 전세 대출의 보증금과 대출 한도를 확대한다. 8월부터 버팀목 전세 대출(수도권 기준)의 보증금이 3억원에서 4억5000만원으로, 대출 한도는 1억2000만원에서 1억8000만원으로 늘어난다. 임차인의 주거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현재 최고 12%인 월세 세액 공제율은 최고 15%로 올리기로 했다. 전세 자금 대출 원리금의 소득 공제 연간 한도는 3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확대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당장 관련 법을 개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본다.
다만 전월세 대책의 핵심인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완화는 빠져 있어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임대인 혜택이 1주택자와 거래세에 한정되기 때문에 다주택자의 매물 출회 방안이 없다. 서울 등 수요가 많은 지역의 공급 부족 문제도 여전하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부가 여소야대 속 모법 개정 없이 시행령 개정을 통해 움직일 수 있는 가용 정책 카드를 총동원해 기민하게 대책을 준비한 점은 긍정적”이라며 “다만 다주택자를 임대인으로 변환시키기 위해 아파트 매입 임대 사업자 세제 혜택 유인을 재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생 임대인 양도세 특례를 다주택자에게 확대하더라도 세제 혜택이 1가구 1주택 양도세 비과세 2년 거주 요건 면제 등으로 제한되면서 다주택자가 실질적 혜택을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전셋값이 급등했는데 실거주 요건 완화 등이 집주인에게 임대료를 5% 이내로 올리는 유인책이 될지도 미지수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전셋값은 전국 평균 27% 올랐고 서울은 36%나 뛰었다. 일각에선 “정부 대책이 근본적인 장기 대책이라기보다는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한 고육책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생 임대인 혜택 확대, 서민 임차인 지원 강화 등은 모두 필요한 대책이지만 향후 임대차 3법을 전면 재검토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임대차 3법 전면 개정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국회 전체 300석 중 170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전 정권부터 야심차게 추진한 임대차 3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 정부 내부에서도 시행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법을 다시 바꾸면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분양가 상한제 개선, “정비 사업 동력은 글쎄” 매매 시장의 주택 공급을 위해서도 분양가 상한제 ‘폐지’ 대신 ‘개선’을 택했다. 최근 급격한 원자재 값 인상과 공사 현장 인건비 상승에 대한 변화를 반영한다는 취지다. 재건축·재개발 조합과 건설사들의 수익성을 높여 공급을 늘리기 위한 방안이지만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양가 상한제 개편은 인상 효과가 최대 4%, 평균 2%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원자재 값 인상, 대출 금리의 가파른 인상 등 시장의 변화를 반영한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조합 등이 강하게 요구해 온 택지비 산정 방식 변경이 제도 개선에 빠져 있어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김영한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6월 20일 “분양가 상한제 개선은 임의적으로 분양가를 높여 분양가 인상에 따라서 (정비) 사업을 추가적으로 촉진한다는 목적이라기보다는 사업 필수 비용을 분양가 상한제에서 반영”하는 것이라며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는 방안은 전혀 검토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분양가 상한제의 급격한 변화가 오히려 집값 상승 등 시장의 혼란을 자극할 수 있어 상황을 고려한 점진적인 수정을 택했다고 분석한다.
분양가 상한제는 택지비에 건축비를 더해 상한선을 두는 제도다. 현재 서울 13개 구와 재개발이 진행 중인 50개 동에 적용된다. 정부는 이번 정책을 통해 택지비와 건축비 말고도 세입자 주거 이전비, 명도 소송비 같은 비용을 분양가에 반영해 주기로 했다. 또 현재 1년에 두 번 공시하던 건설 자재비도 15% 이상 오르면 수시로 건축비에 반영해 주기로 했다.
분양가 상한제는 신축 아파트의 급격한 분양가 상승을 억누름으로써 주변 시세의 하락을 도모하기 위한 취지였다. 하지만 자재 값 상승 등으로 건축비가 오르고 규제 환경이 달라지면서 사업이 지연돼 조합 운영비가 늘어나는 등 달라지는 시장 상황을 분양가 상한제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공급 차질이 발생했다. 분양가는 못 올리는데 건축비 등이 급등하자 서울의 재개발·재건축 구역 10곳 중 6곳의 공사가 지연됐다. 지난 정부부터 계속된 재건축·재개발 사업 차질로 올해 하반기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6년 반 만에 최저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정책 목표인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선 결국 대규모 주택 공급이 현실화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정부의 정책 방향은 ‘시장 상황을 반영한 완급 조절’로 봐야 한다”며 “분양가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택지비는 놓아 두고 비율이 낮은 가산비 등만 미세 조정해선 당장 정비 사업 활성화에 큰 추진 동력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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