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논란 있지만 국정 현안에 대한 대통령 생각 직접 듣는 것 중요…발언 정제할 필요는 있어

그래도, ‘도어스테핑’은 계속돼야 한다[홍영식의 정치판]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취재를 담당했을 시절에는 그 어느때보다 새벽이 바빴다. 다른 조간 신문에 보도된 기사 또는 현안에 대해 확인하고 취재하려면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당시 취재원인 수석비서관과 비서관들은 매일 아침 7시 20분부터 대통령 또는 비서실장 주재 회의에 참석했다. 아침 6시 조금 넘는 시간부터는 회의 준비에 바빠 이들과 통화하는 게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늦어도 아침 6시 전후에 이들에게 전화를 돌려야 했다. 그래도 대통령 보고 준비 때문에 여간해선 연결되기 어려웠다. 어쩌다 출근 시간 자동차 안에서 전화를 받긴 하지만 깊은 취재는 하기 힘들었다.

수석과 비서관들은 아침 회의가 끝난 다음부터는 국정 현안에 매달리느라 기자들의 전화에 일일이 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청와대 참모들이 근무하는 곳(당시 위민관)과 기자들이 있는 춘추관과는 수백 m 떨어져 있는 데다 기자들은 직접 위민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소통 통로는 주로 홍보수석 또는 대변인이 춘추관에 들러 브리핑하는 것이었는데 이것만으로는 속시원한 얘기를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부럽다. 윤석열 대통령이 매일 출근길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을 통해 현안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취재 전화를 돌려야 하는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질문 2~3개에 5분 남짓 하는 ‘약식 회견’이어서 기자들의 궁금증을 속속들이 풀어주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핵심 현안을 묻고 대통령이 직접 답하는 만큼 이 정도만 해도 역대 정부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꿈도 못 꾸는 일이다.
역대 대통령, 국민과의 소통 강조해 놓고 안 지켜

역대 대통령들은 대선 때부터 한결같이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10월 13일부터 라디오 연설을 시작했다. ‘노변정담(爐邊情談)’으로 불린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하지만 일방적 전달 방식이어서 소통에는 한계가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며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다”고 하는 등 ‘소통 대통령’을 강조했지만 이 약속은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지난 5년간 2차례 ‘국민과의 대화’, 7차례 기자 회견을 하는 데 그쳤는데 ‘불통’이라고 비판한 이 전 대통령(20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다른 대통령들도 1년에 2~3차례 기자 회견과 임기 5년 중 한두 차례 TV 생중계 방식의 국민과의 대화를 가졌을 뿐 수시로 기자들과 만나 소통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반면 미국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이 일상화돼 있다.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와 브리핑룸은 백악관 웨스트윙(서관)에 같이 있다. 대통령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기자들과 마주치고 문답을 주고받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북한의 핵 도발에 대해 “전례없는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이라고 한 것도 도어스테핑을 통해서다.

일본도 ‘부라사가리(매달리기)’로 불리는 도어스테핑을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부터 시작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출퇴근 때 하루 두 차례 즉석 질문을 받았다. 도어스테핑을 파벌 정치 관행을 깨고 국민과 직접 소통을 통한 개혁 작업을 이루기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삼았다. 이후 일본 총리 관저에선 도이스테핑이 관행이 됐다.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도 출퇴근길에 공관 로비에서 도어스테핑을 한다. 지난해 10월 취임 후 지금까지 100차례 넘게 진행했다. 영국 총리는 출근 전 총리 공관인 다우닝가 10번지 문 앞에서 도어스테핑을 한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취임 이튿날인 5월 11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소감을 밝히고 사진을 찍는 일에서 시작됐다. 취임 후 첫 아침 출근 때 하는 의례적인 행사였다. 윤 대통령의 소감을 들은 뒤 기자들이 내친김에 현안에 대해 질문했고 윤 대통령이 대답했다. 이게 좋은 평가를 받자 출근길 도어스테핑이 관례가 됐고 주말과 대통령의 해외 방문 등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첫 도어스테핑에서 “어제 취임사에 통합 이야기가 빠졌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데 (통합은)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통합은 우리 정치 과정 자체가 국민 통합의 과정”이라며 적극 해명하기도 했다. “영세 자영업자 숨넘어간다”는 애드리브성 발언도 나왔다.

역대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잘 나타나지 않고 웬만한 참모들도 좀체 만나기 어려웠던 것과 달리 대통령이 매일 직접 기자들과 현안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것은 파격이라고 할 만하다. 궁금한 국정 주요 현안에 대해 매일 대통령의 즉석 답변을 듣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금까지 그런 기회가 없었던 것이 비정상일 수 있다.

다만 도어스테핑이 전부는 아니다. 복잡한 국정 현안을 간단한 질문과 답변을 통해 속시원하게 들을 수는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정식 기자 회견을 통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또 하나 즉석 문답을 하는 과정에서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국정 혼선을 오히려 부추기는 사례가 여럿 있었던 것은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생각 일방적 전달 아닌 쌍방향 소통 중요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주52시간 근무제 유연 적용’ 방침에 대해 윤 대통령이 “보고 받지 못했다”고 말해 혼란을 빚은 게 대표적인 예다. 정부 요직에 검찰 출신이 전진 배치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과거에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말을 전한다면서 “더 이상 검사 출신을 기용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지만 윤 대통령은 “필요하면 또 (기용)해야죠”라고 엇박자를 내 혼선을 더한 일도 있었다. 고물가와 가계 부채 문제 등 해법에 대한 질문에 “근본적 해법을 내기는 어렵다”고 말한 것과 “제가 대통령은 처음이라”는 답변도 솔직하다는 반응과 함께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7월 5일엔 부실 인사 논란 질문에 대해 언성을 높이며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해 보세요. 사람들의 자질이나 이런 것을…”이라고 한 뒤 다른 질문을 받지 않고 집무실로 향한 것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도어스테핑이 자칫 대통령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려는 취지여선 곤란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대통령의 발언을 정제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야당에선 국정 난맥상을 부추긴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나마 길을 연 도어스테핑은 계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물론 시행착오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필요하다면 방식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비록 실수와 논란이 있지만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매일 듣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수십 개의 예상되는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새벽부터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정 현안에 대한 공부를 하나라도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통해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