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락 있지만 꾸준히 우상향 하는 코스피처럼 리서치도 함께 성장…1998년 첫 시작된 베스트 증권사·애널리스트 조사
애널리스트는 자본 시장의 꽃이다. 한경비즈니스는 1998년부터 베스트 증권사·애널리스트 조사를 통해 한국 증권사 리서치센터와 법인영업부의 경쟁력을 평가하고 있다. 당시는 증권업계가 구제 금융의 위기 속에서 좀 더 선진화된 투자 문화를 만들기 위해 리서치센터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할 때였다.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이 독주했다. 대우증권은 지금과 같이 각 영역별로 전문화된 모습을 가진 리서치센터를 처음 탄생시켰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주도 아래 그룹의 브레인인 대우경제연구소 출신들과 인적 교류도 이뤄졌다. 김 회장과 경기고 연세대 동창이자 ‘7연임’의 기록을 세운 김창희 전 사장이 리서치센터의 육성을 적극 지원했다. 강창희 전 미래에셋증권 부회장은 초대 센터장을 맡아 애널리스트들을 키웠다. 당시 대우증권 출신 애널리스트들은 이후 20여 년간 증권업계 곳곳에서 핵심적인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1999년 11월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증권 리서치센터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2000년 산업은행이 대우증권을 인수하면서 ‘공중분해’되는 위기는 넘겼지만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다른 증권사로 떠나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한다. 주목할 사실은 대우증권을 떠난 애널리스트들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 증권사 전체의 리서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는 역할을 한다.
현재 애널리스트의 ‘종가’로는 크게 세 군데 정도가 꼽힌다. 하나는 대우증권이고 다른 하나는 LG증권(현 NH투자증권) 그리고 대신증권이다. LG증권은 LG그룹이라는 탄탄한 배경을 갖추고 있었다. 글로벌 사업을 하는 LG인 만큼 리서치도 해외 증권사들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대신증권은 전업 증권사임에도 리서치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대신증권은 산하에 대신경제연구소를 두고 있는데 리서치와 인적 교류를 하며 서로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이런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 중인 김영익 서강대 겸임교수다.‘절대 강자’ 대우증권과 춘추전국시대
리서치센터의 역사를 보면 삼성증권과 현대증권도 빼놓을 수 없는 증권사들이다. 2001년부터 베스트 증권사 1등은 LG증권과 삼성증권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차지한다. 대우증권은 슬슬 뒷걸음질했고 그 자리를 현대증권과 대신증권이 치고 올라간다. 현대증권은 2002년 상반기 조사에서 베스트 리서치센터를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현대증권은 은행·증권·보험 등을 싹쓸이한 금융 분야 3관왕이던 조병문 애널리스트가 선두에 섰다. 대신증권에는 이른바 ‘뉴 웨이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2000년 입사한 ‘전략가’ 조윤남 애널리스트(현 대신경제연구소 사장)를 비롯해 정연우(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양지환·전재천·최정욱 애널리스트들이 줄줄이 합류한다.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였다.
2005년께 대우증권은 화려하게 부활한다. 리서치센터장 출신인 손복조 사장이 대우증권의 수장이 되면서 리서치에 대규모로 투자한다. 여기에 전병서 애널리스트가 센터장을 맡으며 ‘명가의 재건’에 시동을 건다. 특히 이 시기 타 증권사의 수많은 베스트 애널리스트들이 대우증권에 합류한다. 지금도 전설처럼 들리는 ‘대우증권 드림팀’이다. 최고의 애널리스트들이 모였으니 최고의 성적은 당연하다. 대우증권은 2005년 하반기 조사에서 전체 평가 부문의 절반 정도를 독식하며 파워 하우스로 거듭난다.
2000년대 초반 데이비드 베컴, 루이스 피구, 호나우두 등 함께 모였던 유명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도 그랬지만 개성 강한 슈퍼스타가 모이는 ‘갈락티코 정책’은 양날의 검이다. 대우증권 드림팀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주춤하던 드림팀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홍성국 센터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홍 센터장은 스타들의 맨파워에 시스템을 더했다. 그러자 더 강해졌다. 그 후로 약 4~5년간 대우증권의 시대가 다시 열렸다.
물론 다른 증권사들도 슬슬 리서치센터의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당시는 코스피지수가 2000을 막 넘보기 시작한 시기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또 펀드가 대중화되면서 자산 운용사도 늘어났다. 개인 투자 중심에서 기관투자가의 시대로 무게가 옮겨졌다. 당연히 기관투자가들의 리서치 수요도 늘었다. 대형 증권사뿐만 아니라 중소형 증권사들도 ‘생존’을 위해 리서치에 과감히 투자했다.
결국 2009년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은 대우증권을 제치고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베스트 증권사에 오르는 좋은 성적을 냈다. LG증권에서 이름을 바꾼 우리투자증권도 대우증권을 턱밑까지 쫒았다.
이 시기 주목받은 중소형 리서치센터는 토러스투자증권(현 DS투자증권)·유진투자증권·KTB투자증권(현 다올투자증권)이다. 물론 이들 증권사들은 강력한 대형 증권사들이 버티고 있어 베스트 증권사엔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각자 영역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토러스투자증권은 당시 40대 초반의 김승현 센터장이 이끌었다. 오태동(현 NH투자증권 센터장), 이경수(현 메리츠증권 센터장), 이원선(현 트러스톤자산운용 CIO), 박중제 애널리스트를 포함해 당시 내로라하는 전략 부문 최강자들이 한 리서치센터로 모였다. 이른바 ‘독수리 오형제’다. 유진투자증권은 조병문 애널리스트가 센터장을 맡으며 강해졌다. 그를 중심으로 김미연·주익찬·서보익·변준호 애널리스트 등 기업 분석 부문의 에이스가 많았다. KTB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자산운용 출신 박희운 센터장이 맡으며 정용택·최찬석 등 여러 애널리스트들이 합류한다. 펀드매니저 출신이 많아 좀 더 ‘수요자 시각’에 특화된 리서치를 펼쳤다.
대형사 중에선 한국투자증권이 눈에 띄었다. 은행업 베스트 애널리스트 출신인 이준재 센터장이 이끌던 한국투자증권은 대우증권을 제치고 3년여 만인 2012년 베스트 증권사를 재탈환한다. 당시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은 한경비즈니스 베스트 증권사·애널리스트 시상식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을 10여 년간 이끌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1등을 해봤다. 권위 있는 상도 여러 개 받았다. 그런데 정말 받고 싶은 상은 ‘베스트 증권사’ 상이었다. 2009년은 잘 몰랐는데 베스트 증권사에 또 선정되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다시 받을 수 있게 돼 너무 기쁘다. 그래서 오늘은 넥타이도 한국경제미디어그룹을 대표하는 진한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왔다.”
하나증권과 신한금융투자의 양강 시대
수년간의 난전 후 2013년 한국 리서치업계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바로 신한금융투자의 등장이다. 당시 신한금융은 비은행 부문을 키우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 증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 시도한 방법은 리서치센터의 강화다. 신한금융은 이를 위해 과감한 영입을 시도한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인 양기인 센터장을 스카우트한 것. 양 센터장은 신한금융투자에 취임하자마자 ‘매직’을 부렸다. 불과 6개월 만에 10위권 밖에 있던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의 순위를 2위까지 끌어올렸다. 특히 최중혁·하준두 등 30대 초·중반의 젊은 애널리스트들이 훨훨 날았다.
신한금융이 움직이자 또 다른 금융지주도 움직였다. 하나금융이다. 하나금융은 이번엔 신영증권 조용준 센터장을 하나금융투자(현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에으로 영입한다. 조 센터장은 6개월 새 아예 순위권 밖이던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를 5위 안으로 들였다.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의 특징은 기존 애널리스트와 신인 애널리스트의 조화였다. 신한금융투자와 하나금융투자의 이 같은 ‘드라이브’는 이 두 곳의 리서치센터를 현재까지도 ‘명가’로 불리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2016년 등장한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도 조용하지만 한두 명의 에이스들이 꼭 탄생하는 ‘알짜 하우스’였다. 하지만 당시 메리츠증권의 사세가 커지면서 리서치에 대한 투자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경수 센터장의 영입이다. 한국의 대표적 투자 전략가 중 한 사람인 이 센터장은 토러스증권을 떠나 친정인 대우증권에 있었다. 메리츠증권의 콜을 받은 그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애널리스트 육성에 쏟아부었다. 그 후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는 베스트 증권사 조사에서 회사 규모에 비해 항상 훨씬 높은 순위에 올라 있다.
IBK투자증권·키움증권·이트레이드 리서치센터도 조용하지만 항상 눈여겨볼 만한 곳들이다. 규모는 대형 증권사에 비해 못 미치지만 베스트 증권사 조사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냈다. IBK투자증권의 특징 중하나는 유명 애널리스트들이 센터장을 맡는 것이다. 대형 증권사에 비해 인원이 적기에 에이스들의 경험을 더 활용하는 전략이다. 초대 센터장은 제약바이오 부문의 베스트 애널리스트 임진균 센터장이었다. 또 KTB증권을 이끌던 정용택 센터장도 이 회사로 옮겨 센터장을 맡았다. 특히 IBK투자증권은 1세대 애널리스트 중 한 사람인 신성호 전 사장이 회사를 이끈 시기도 있다.
키움증권과 이트레이드도 특징이 있다. 이 두 회사는 증권사 수익 구조에서 타 증권사에 비해 브로커리지(주식 거래) 비율이 높은 증권사다. 이 때문인지 애널리스트들이 항상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재미있는 시도도 한다. 실제로 이 두 증권사는 유튜브 등 애널리스트들의 동영상 강의를 가장 먼저 시작한 증권사들이다.
가장 최근 베스트 증권사 조사의 관전 포인트는 '거함' NH투자증권의 움직임이다. NH투자증권은 2021년 하반기 조사에서 오랜만에 하나증권과 신한금융투자의 양강 구도를 깨고 1위에 올랐다. 특히 투자 전략 부문의 강자인 오태동 센터장이 리서치에 새 드라이브를 걸면서 오랜만에 왕좌에 복귀했다.
또 눈여겨볼 곳은 KB증권이다. KB증권은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증권사다. 또 신한금융투자·하나증권과 같이 금융지주 산하이기도 하다. 그런데 베스트 증권사 조사에선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이유는 있다. KB증권 리서치센터는 거의 10여 년간 제대로 힘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 구 KB증권과 한누리 증권의 합병 그리고 현대증권과의 합병 또 KB증권으로 사명 변경 등이 줄줄이 이어지며 ‘시동이 걸릴 만하면 꺼진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는 분위기다. 중소형사 중엔 전략 부문에 강자들이 포진한 현대차증권이 눈에 띈다.
항상 그렇듯이 역사는 흘러간다. 지금도 역사는 흐르고 있다. 미래에는 또 어떤 리서치센터가 두각을 나타내며 베스트 증권사 선정의 견인차가 될까. 벌써부터 2022 하반기 베스트 증권사·애널리스트 조사가 기대된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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