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출판사' 도서출판 책과함께 인문교양팀 이정우 팀장
이정우 팀장이 추천하는 휴가철 책 한 권

[어느 출판사 편집자의 편지] 도서출판 책과함께 인문교양팀 이정우 팀장
“인문서 읽는 것은 도보 여행과 비슷…여유와 여백, 독서의 본령”
최근 한 출판사가 화제가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린 사진 한 장에 이 출판사가 펴낸 책이 있었고, 이 책이 입소문을 타며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이다. 출판사는 갑작스러운 판매량 폭증에 문 전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진중한 인문서를 만든다는 것이 이 시대에 어떤 의미인지를 회의적으로 고민하던 차였는데 대통령님이 ‘실크로드 세계사’를 읽으시는 모습을 보며 더 나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누리꾼들은 편집자의 메시지에 진정성이 느껴진다며 책 홍보를 보탰다. 다음은 그 화제의 출판사 ‘책과함께’ 편집자가 전하는 이 시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저는 20대 초에 두 달 반 동안 국내 무전 도보 여행을 다녔습니다. 이를 들은 분들의 공통 질문 중 하나가 ‘왜 하필 도보냐’라는 것입니다. ‘무슨 재미로 하느냐’고 묻기도 하죠. 우리는 여행이라고 하면 보통 잘 알려진 명소를 찾아가 그곳을 느끼고 즐기는 일로 여깁니다. 이때 그곳까지 가는 일은 가능한 한 빠른 이동 수단으로 최대한 시간을 적게 들여야 하는, ‘아까운’ 시간입니다. 제가 받은 질문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겠지요.

도보 여행은 정반대예요. 걷기는 가장 느린 이동 수단입니다. 하루 종일 걸어도 50km를 넘지 못하는, 일견 아주 비효율적인 일이죠.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느 수단이라면 스쳐 지나갈, 새로운 것들과 시시각각 만나고 느끼게 되지요. 과정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낯선 나’를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사실 살아온 환경과 조건, 주변 사람들에 의해 ‘구성된 나’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완전히 다른 조건에서 다만 며칠만이라도 홀로 걷다 보면 아주 낯선 나와 마주하게 됩니다. 가끔은 나의 언행이 스스로 놀랄 만큼 ‘평소의 나’와 달라서 곤혹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를 거치고 나면 오히려 스스로를 아주 잘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어, 자기 삶을 더욱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나를 찾는 여행’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말은, 바로 이런 과정 속에서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책, 특히 인문서를 읽는 것은 곧 도보 여행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인문서를 읽는 일이 고리타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되니까요. 심지어 스마트폰 안에서도 글보다 영상을 먼저 찾아보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편하게 찾아 얻는 정보가 과연 나의 삶을 얼마나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줄까요.

단편적인 정보의 습득은 나의 지식량을 늘려줄 수는 있을지언정 나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키워 주지는 못합니다. 그것들은 나 스스로 무언가에 대해 고민하고 궁리하는 과정에서 함양되기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가장 좋은 수단은 곧 책을 읽는 것입니다. 독서는 느린 행위일 뿐만 아니라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백이 많고 스스로를 개입시키기 좋은 행위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오랫동안 숙성한 글을 천천히 음미하고 곱씹다 보면 나 자신의 생각도 시나브로 자라납니다. 그렇게 생겨난 스스로의 생각을 관찰하고 이어 나가다 보면, 문득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가 한층 넓어지고 깊어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책은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독자와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책을 애써 ‘빨리’ 읽으려는 조급함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유와 여백, 그것이 곧 독서의 본령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정우 편집자의 휴가철 추천 도서>
“인문서 읽는 것은 도보 여행과 비슷…여유와 여백, 독서의 본령”
인간의 조건: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


이 사회와 내 삶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땀과 눈물에 얼마나 많이 기대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책입니다. 자기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살아가는지를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직접 그 일들을 (잠입 취재 따위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서 했기 때문입니다. 작가 한승태는 몇 해 뒤 후속작 《고기로 태어나서》로 2018년 한국출판문화상(교양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로마 시티
이상록 글·그림 | 책과함께 | 2021


일러스트레이터·컨셉아티스트이자 로마·역사 매니아인 작가 이상록은 15년에 걸친 연구·집필·그림 작업을 거쳐 2천여 년 동안의 로마 역사를 일목요연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풀어냅니다. 로마 곳곳을 담은 아름다운 일러스트는 사진보다도 근사하고, 화려한 색감으로 재현된 역사 속 장면은 생동감을 더하죠. 로마 거리를 거닐듯 황홀하고 재미있게 읽다 보면 어느새 유럽 문화의 정수, 나아가 오늘날 세계 문명의 근원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술탄 셀림: 근대 세계를 열어젖힌 오스만제국 최강 군주
앨런 미카일 지음 |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2


우리는 웬만하면 콜럼버스를 압니다. 그의 대담한 모험심으로 말미암은 대서양 개척이 대항해시대와 서양 중심의 근대 세계를 열었다고 말이죠. 이 책은 그 이면에 강대한 이슬람 제국 오스만이 있었다는 획기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16세기 초에 전 세계를 호령한 오스만제국이 지중해 동쪽을 장악하고 있어서 유럽인들이 반대쪽 바닷길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역사관과 세계관이 어떻게 규정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책입니다.
“인문서 읽는 것은 도보 여행과 비슷…여유와 여백, 독서의 본령”
희망 대신 욕망: 욕망은 왜 평등해야 하는가
김원영 지음 | 푸른숲 | 2019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아야 하고, 이동권 보장 등 그들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장애인 분들이 많겠지요. 그러면서도 장애인들의 교통수단 점거 시위 등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것은, 어쩌면 장애인에 대한 또 다른 편견, 즉 ‘장애인은 선하고 순수한 존재’라는 선입견이 깨지는 데 대한 불편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같은 사람’으로 본다는 것은 ‘정의와 희망’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욕망’도 동일하게 가진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김원영 변호사의 이 자전적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그러한 선입견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인종 토크: 내 안의 차별의식을 들여다보는 17가지 질문
이제오마 올루오 지음 | 노지양 옮김 | 책과함께 | 2019


흑인 여성인 지은이의 자전적 에세이와 사회비평서의 성격을 함께 갖춘 지침서로, 인종주의에 대해 말하지만 실은 모든 마이너리티 문제에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어떤 면에서 소수자성을 느끼지만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면, 그 측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진 어떠한 정체성이 곧 다수자의 정체성인 사회에서라면, 그 자체로 나는 구조적 우위를 가진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쉼 없이 나의 특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