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고 행정·국제 복합지구로...전문가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가장 중요"

[편집자주]모두 기대하는 개발 사업은 제대로 시작도 못했다. 하지만 이미 용산 곳곳은 새로운 시대 흐름을 타고 변신 중이다. 한남동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부촌으로 자리 잡았고 이태원 뒷골목에서 시작된 핫 플레이스는 경리단길·해방촌·열정도·용리단길까지 뻗어 나갔다. 한강로와 그 주변에는 대규모 주상 복합 빌딩, 유명 기업의 사옥과 호텔이 들어서며 풍경을 바꿔 놓고 있다. 이제 서울 도심에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 두 곳이 움직일 차례다. 용산 미군기지는 공원으로 탈바꿈을 시작했다. 여의도 2배 면적의 용산정비창 지구에 대한 개발 계획도 발표됐다. 이 밖에 용산에는 다양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수많은 역사적 스토리를 갖고 있는 용산, 그곳은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써 가기 작했다.
지난 8월 10일 전날 서울에 내린 폭우로 서울 용산 정비창 부지에 물이 고여 있다.[이승재 기자]
지난 8월 10일 전날 서울에 내린 폭우로 서울 용산 정비창 부지에 물이 고여 있다.[이승재 기자]
8월 10일 서울 용산구 시범아파트 6층 높이에 올라가자 눈앞에 허허벌판이 펼쳐졌다. 전날까지 이틀 연속 폭우가 내려 빈 땅에는 물이 가득 차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거대한 호수가 생긴 것 같았다. 텅 빈 부지 곳곳에 포클레인과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주변에 아모레퍼시픽 본사와 주상 복합처럼 높은 건물이 없고 N서울타워가 보이지 않았다면 서울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공터였다. 이곳의 정체는 서울에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인 용산정비창 부지다. 다섯째 마스터 플랜 나온 용산
마지막 ‘금싸라기 땅’ 용산, 15년 만에 승천할까[알쓸신잡 용산①]
‘한국판 센트럴파크를 품은 아시아의 실리콘밸리.’
오세훈 서울시장이 7월 26일 용산의 새로운 미래를 발표했다. 서울 노른자위 땅인 용산의 개발 계획이 발표된 것은 이번이 다섯째다. 오 시장에게는 둘째 도전이기도 하다.

이번에 발표된 국제업무지구 계획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롯데월드타워보다 높은 초고층 빌딩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도심항공모빌리티(UAM)가 하늘길을 달린다. 가까운 미래에는 비행기를 타고 인천·김포공항에서 내려 UAM을 타고 용산을 거쳐 고속철도(KTX)나 수도권 광역 급행철도(GTX), 지하철을 갈아타면 수도권은 물론 전국으로 환승 이동이 가능해진다. 실리콘밸리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입주한 업무지구와 상업 시설, 거주지가 합쳐진 ‘직주 혼합’ 도시다. 여기에 부지의 50%는 푸르른 녹지로 조성된다. 마천루·한강·공원이 조화를 이루는 서울의 중심이 완성된다.


용산 개발 계획은 15년간 실패로 돌아간 좌절의 역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산의 잠재력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다. 뒤로는 남산을, 앞으로는 한강을 끼고 강남과 강북의 중심에 있는 용산은 예로부터 명당으로 꼽혀 왔다. 일본과 미국이 군사 기지로 용산을 택한 것도 뛰어난 입지 때문이었다.

입지가 뛰어난 만큼 개발은 난항을 겪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부동산 시장이나 경기에 따라 개발 계획이 백지화되거나 보류돼 왔다. 하지만 이번 정권에서 여당 출신인 오 시장이 다시 키를 잡으면서 용산 개발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란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용산정비창 부지 소유권을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코레일(72%)과 국토부(23%)가 갖고 있는 만큼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중앙 정부와 시의 의견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용산정비창 부지를 국제업무지구로 만들겠다는 계획과 함께 미국이 반환하고 있는 미군 용산 기지는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바뀐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용산 개발에 대한 기대감과 집값 자극에 대한 우려가 함께 커지고 있다.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에 힘입어 사업성이 높아지면서 재건축·재개발 동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용산에서는 중산아파트·북한강성원아파트·대림아파트·한강삼익아파트·이촌시범아파트, 정비창 전면 1·2·3구역, 용산역 전면 1·3구역, 신용산역 북측 1·2구역, 청파1구역 등 40여 개의 구역이 정비 사업을 추진 중이다.용적률 1500% 이상 초고층 건물 들어선다
용산 정비창 부지에 포크레인과 화물 트럭이 세워져 있다.[이승재 기자]
용산 정비창 부지에 포크레인과 화물 트럭이 세워져 있다.[이승재 기자]
원효로 3가에 있는 A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예상된 개발 호재’였던 만큼 투자 열기가 뜨겁지는 않다고 말했다. A 공인중개업소는 2020년 국토부가 용산정비창 부지에 1만 가구를 공급해 미니 신도시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 이어지는 문의에 사람들을 모아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었다.

2020년 국토부가 1만 가구에 달하는 공급 계획을 발표하면서 ‘로또 분양’과 용산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조성됐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발표된 개발은 주택 공급이 아닌 국제업무지구 조성이 핵심이다. 서울시는 용산정비창 부지 일대를 국제업무지구로 만들기 위해 용적률과 토지 용도 등에 대한 규제를 푼다. ‘입지 규제 최소 구역’으로 지정해 용적률을 법적 상한인 1500% 이상으로 높인다. .

전체 부지의 70% 이상은 업무·상업 등 비주거 용도로 채우도록 정했다. 또 전체 부지의 40% 내외는 도로·공원·학교 등 기반 시설을 들인다. 토지 용도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토지 용도를 주거용·공업용·산업용·녹지용 등으로 구분하는 기존의 ‘용도지역제’를 전면 개편해 복합적인 기능 배치가 가능하게 할 방침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만들어지면 용산은 서울 교통 계획의 중심이 된다. ‘장기전’ 용산 개발, 지속성이 가장 중요
마지막 ‘금싸라기 땅’ 용산, 15년 만에 승천할까[알쓸신잡 용산①]
서울의 노른자위 땅이라는 별칭답게 개발 계획은 화려하다. 용산을 국제 도시로 만들겠다는 거대한 계획은 2007년 처음 수립됐다. 2005년 철도청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 전환하면서 발생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용산정비창 부지를 상환하기로 하면서 잠들어 있던 용산이 깨어났다.

2007년 서울시와 코레일이 용산 개발 마스터 플랜을 처음 확정하면서 용산은 날아오를 준비를 했다. ‘단군 이후 최대 개발사업’, ‘마지막 기회의 땅’이라는 별칭이 뒤따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2009년 용산 참사 등의 악재가 이어지며 결국 2013년 사업이 백지화됐다. 이 과정에서 용산 개발 사업 시행자로 선정됐던 ‘드림허브’가 52억원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이자를 내지 못하고 부도를 맞기도 했다.

조용하던 용산이 다시 한 번 주목받은 것은 2018년 7월이다. 싱가포르 출장 중이던 박원순 전 시장이 ‘여의도 용산 통개발’ 구상을 발표하자 용산과 여의도는 물론 목동·마포 등 주변을 비롯해 서울 전역으로 집값이 상승했다. 박 전 시장의 발언이 서울 집값 상승에 불을 지른 모양새가 됐다. 박 전 시장은 결국 “집값이 안정될 때까지 사업을 무기한 보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용산 개발은 15년간 부침을 겪었다. 개발 계획은 발표됐지만 정부의 의지, 경제 상황,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 등의 상황에 따른 변수가 많다. 시는 과거 실패 요인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번 용산정비창 개발 계획에 보완책을 담았다. 우선 보상 계획이 필요한 서부이촌동을 부지에서 제외했다. 2012년에는 서부이촌동이 개발 구역에 포함됐었다. 또 부동산 경기를 탈 수 있는 민간 업체 대신 공공 기관인 코레일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공동 사업 시행자로 나선다.
전문가들은 15년째 답보 중인 용산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라고 조언했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용산 개발은 정비창과 전자상가, 이촌동 일대 수변 공간, 재건축 단지 등 여러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이해관계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5년이 아니라 20년을 고려하고 계획해야 한다”며 “서울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서 중요한 입지인 만큼 통일 이후를 생각하고 대륙으로 가는 철길이나 교통 연계성을 염두에 두고 일부 유보지를 남겨둘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