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와 유한양행 대표 사례…세상에 긍정적 변화 일으켜
[경영 전략] ‘기업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이 질문은 ‘경영학 원론’ 첫 수업에서의 단골 질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주주 이익 극대화’라고 답해 왔다. 한국으로 치면 전국경제인엽합회(전경련) 격인 미국의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1978년부터 기업 경영의 원칙을 정기적으로 발표해 왔는데 1997년 이후부터 ‘주주 이익 극대화’ 기조를 유지했다.
2019년 BRT에서는 ‘기업의 새로운 목적’을 선언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는 고객에 대한 가치 제공, 둘째는 직원에 대한 투자, 셋째는 파트너에 대한 공정하고 윤리적인 대우, 넷째는 지역 사회에 기여, 다섯째는 장기적인 주주 가치 창출 등 모든 이해관계인들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기업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애플의 팀 쿡,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배라 등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 최고경영자(CEO) 181명이 해당 성명에 서명한 바 있다.
이것은 주주 자본주의 모델의 종식이자 이해관계인 자본주의 모델의 출범을 의미한다. 실제로 당장 눈앞에 이익만 좇는 주주 자본주의는 글로벌 금융 위기, 환경 파괴, 소득 양극화, 차별이나 갈등과 같이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기업의 생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에 따라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기업의 ‘목적’이 떠오르고 있다.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히는 파타고니아와 유한양행은 창립 때부터 목적을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이들 기업의 창립자는 어떤 목적으로 기업을 운영했고 그 목적은 현재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100% 유기농 면 사용하는 파타고니아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사명은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다. 이런 파타고니아의 사명에는 경영자이자 등반가와 서퍼로도 유명한 파타고니아의 창립자인 이본 쉬나드의 경영 철학이 담겨 있다.
쉬나드 창립자는 산·강·바다를 다니며 자연환경에서 배운 것을 경영에 녹여 낸 경영자다.
파타고니아는 1988년 미국 보스턴에 셋째 매장을 열었다. 며칠 뒤 직원들이 두통과 구토를 호소하기 시작했는데 원인은 포름알데히드였다.
면 옷의 구김이나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포름알데히드가 가공 공정에서 사용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쉬나드 창립자는 면 생산 방식을 자세하게 조사하기 시작했고 목화 농사의 실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목화밭에 생기는 벌레를 없애기 위해 뿌리는 화학 살충제가 흙 속의 미생물을 모두 제거하고 심각한 토양 오염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살충제는 인간의 중추 신경계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물질이었다. 쉬나드 창립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기업을 운영한다면서 이런 식으로 지구를 파괴하는 제품을 만들어도 될까.”
그 뒤 쉬나드 창립자는 파타고니아의 모든 면 옷의 소재를 100% 유기농 목화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변화에 대한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전 직원을 기존 목화밭과 유기농 목화밭으로 데리고 가 직접 비교해 보도록 했다.
농약 냄새가 진동하고 눈이 따가운 기존 목화밭을 본 직원들은 크게 충격을 받았고 왜 100% 유기농 목화로 바꿔야 하는지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잎과 줄기가 많고 진딧물로 인해 끈적이는 유기농 목화를 가공하기 꺼리는 기존 협력사를 대신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협력사를 찾았다.
화학 물질을 쓰지 않고 면 옷의 변형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도 개발했다. 이런 노력 끝에 파타고니아는 1996년 모든 면 의류를 100% 유기농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지구를 살리는 일이라면 새로운 길도, 어려운 길도 마다하지 않고 가는 쉬나드 창립자의 경영 철학은 그가 경영 일선에 떠난 지금도 파타고니아의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기업 활동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옷을 자주 살 필요가 없도록 튼튼한 옷을 만들기 위한 제품 혁신에 집중한다. 그리고 한 번 구매한 옷은 오래 입을 수 있도록 평생 무료 수선 서비스를 제공한다. 1986년 창립 이후 연매출의 1% 이상을 환경 보호에 기여하고 있고 2002년에는 ‘지구를 위한 1%(1% For The Planet)’를 설립해 전 세계 환경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창립자 경영 철학 계승한 유한양행유한양행은 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하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조사에서 19년 연속 제약부문 1위 자리를 지켜 왔다. 1위라는 숫자 뒤에는 창립자 유일한 박사가 영면한 후에도 그의 경영 철학을 계승해 온 유한양행의 노력이 있다.
아홉 살에 미국 유학을 떠난 유 박사는 미국에서 식품회사를 설립해 큰 성공을 거뒀지만 식민지 지배하의 참담한 고국의 상황을 보고 귀국을 결심했다. 미국 회사를 넘기며 받은 돈으로 많은 의약품을 구입해 한국에 돌아온 온 유 박사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제약 사업을 시작했다.
1926년 설립한 유한양행은 당시 한국 국민에게 꼭 필요했던 결핵 치료제와 항생제를 수입해 오고 구충제와 피부병 약 등 가정 상비약을 판매해 국민 보건 향상에 앞장섰다. 여기에는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유 박사의 신념이 담겨 있다. 유 박사는 10년 뒤인 1936년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기업을 공개했다. 1939년 한국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해 본인 지분의 52%를 직원들에게 나눠 줬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경영 철학 아래 회사가 안정기에 접어든 1953년부터 궁극의 꿈이었던 교육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 박사는 고려공과기술학원·유한중·유한공고를 설립했고 개인 주식과 재산을 교육 사업에 기부했다. 그는 한국이 부강해지려면 기술 교육을 받은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고 한다.
유 박사의 경영 철학은 오늘날 유한양행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 숨 쉬고 있을까. 유한양행은 1969년부터 전문 경영인을 통한 투명한 지배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부터 환경부가 지정하는 녹색 기업에 계속 선정됐고 300인 이상 제약 회사로서는 최초로 무재해 16배수도 달성했다. 최근에는 친환경 포장재 개발에 나서 제품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파타고니아와 유한양행에 대해 살펴봤다. 두 기업의 공통점은 더 높은 목적을 추구하는 창립자의 경영 철학과 그 정신을 계승하는 구성원들이다.
다음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면 잠시 멈추고 ‘목적’을 생각해 보자. 위대한 목적은 창립자나 경영자 본인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계속해 목적에 집중하도록 만들 것이다.
백재영 IGM세계경영연구원 프로그램·컨텐츠 기획팀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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