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5개 단지 5년 실거래가 전수조사...올해 20개 단지가 하락
성동구 ‘트리마제’가 5년간 가장 많이 올랐고 은평구 ‘래미안베라힐즈’는 전년 고점 대비 가장 많이 떨어졌다. 한경비즈니스가 서울 25개 자치구 내 ‘대장주’의 5년간 실거래가 추이를 조사한 결과다.올 들어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분위기는 완전히 뒤집혔다. 지난해까지 ‘불패’일 것 같았던 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들면서 부동산 거품론이 힘을 얻고 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올해 아파트 매매 거래에서 ‘하락 거래’ 비율이 상승 거래보다 많았다. 올해 3분기까지 하락 거래의 비율이 54.7%를 기록했다. 하락 거래 비율이 50%를 초과한 것은 최근 10년 동안 이번 분기가 처음이다. 집값 하락에 대한 데이터도 연일 쏟아져 나온다.
그럼에도 집값 하락을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소수 단위의 백분율과 평균치로 나오는 숫자를 보고는 수요가 몰리는 단지의 하락세를 가늠하기 어렵다.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오른 가격에 비하면 더 떨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지난 5년간 집값은 얼마나 오르고 올해 들어 얼마나 떨어졌을까. 한경비즈니스가 지역 내 랜드마크, 일명 ‘대장주’라고 불리는 아파트를 하나씩 골라 5년간의 실거래가 변화를 살펴봤다. 지역 시세는 일반적으로 대장주 아파트를 기준으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25개 자치구 내 대장주 중 ‘국민 평수(전용 면적 84㎡)’를 보유하고 있는 단지 중 한 곳을 선정해 조사했다. 올해 거래는 가장 최근 이뤄진 매물을 기준(9월 1일 기준)으로 했고 2021년부터 2017년까지는 최고가로 비교했다. 같은 단지 안에서의 층·향·구조·리모델링 유무에 따른 차이는 고려하지 않았다. 가족 등 특수 관계인 간의 ‘증여성 거래’일 수 있는 직거래는 제외했다. 송파구 대장주마저 14% 하락 지난해 고점과 비교해 최근 거래에서 집값이 상승한 대장주는 25곳 중 5개뿐이었다. 압구정 현대(35%), 반포자이(6.6%), 트리마제(11.1%), 경희궁자이 2단지(0.3%), 신동아1(0.4%) 등 서울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자치구 내 대장 아파트는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는 와중에도 상승세를 이어 갔다.
나머지 20개 단지는 집값이 모두 하락했다. 지난해 최고가와 비교해 가장 많이 떨어진 단지는 은평구 ‘래미안 베라힐즈’였다. 래미안베라힐즈는 대규모 신축 아파트단지로 구성된 녹번동 소재 단지다. 래미안베라힐즈 역시 2018년 말 입주를 시작해 이 일대 대장주로 거듭났다. 지난해 9월 14억4000만원(14층)에 거래됐던 34평형이 올해 7월에는 11억6000만원(12층)에 거래되며 19.4% 하락했다.
‘강남 3구’ 중에서는 송파구가 유일하게 1년 하락률 톱5에 들었다. 지난해 최고가인 26억2000만원(22층)에 거래됐던 잠실 리센츠는 올해 5월 22억5000만원(29층)에 거래되며 14.1% 하락했다. 올해 4월 손바뀜한 26억5000만원과 비교해도 약 15.1% 떨어지며 한 달 만에 4억원이 빠졌다.
자치구별 대장주 아파트 가격마저 줄줄이 하락하자 부동산 가격이 조정을 받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하락세는 2019년부터 폭등한 부동산 가격에 강력한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이 맞물리면서 거래가 급격하게 줄어든 때문이다.
집값은 수요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올 1분기 서울 지역의 주택구입부담지수는 203.7을 기록했다. 지수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200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수가 200을 넘으면 소득의 절반 이상을 주택 담보 대출을 갚는 데 쓴다는 의미다.
소득 상승률에 비해 집값이 폭등하면서 중산층이 구입할 수 있는 주택이 2015년 대비 1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중산층이 구입할 수 있는 아파트 수는 2015년 56만1000가구에서 올해 1분기 3만9000가구로 줄었다. 여기에 대출 이자가 뛰며 자금줄이 막히면서 ‘거래 절벽’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639가구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5개 대장주, 5년간 모두 상승 지난해 고점과 비교하면 대장주의 하락세가 뚜렷하지만 25개 단지 모두 지난 5년간 꾸준히 상승해 왔다. 5년간 2배 넘게 뛴 단지도 있다. 2017년 15억5000만원(23층)이 최고가였던 성동구 트리마제는 2020년 30억원을 넘어섰고 올해 5월 38억9000만원(33층)에 거래됐다. 5년간 150% 상승하며 ‘40억원’ 진입을 앞두고 있다.
광화문 직주근접으로 희소성이 높은 종로구 경희궁자이 2단지는 5년간 112% 뛰었다.
각종 호재가 얽혀 있는 용산구 내 대장주 ‘신동아아파트’ 역시 2017년 10억6000만원(3층)에서 올해 4월 22억1000만원(1층)원으로 12억원 가까이 올라 5년간 108.5% 상승했다. 용산구 일대 대장주 아파트들은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어 올해부터는 거래마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강남구 대장주로 꼽은 압구정현대14차 역시 5년 동안 20억원 넘게 뛰며 2배 올랐다. 올해 하락한 20개 단지도 5년으로 기간을 넓히면 모두 상승했다. 전년 고점 대비 하락률이 셋째로 높은 잠실 리센츠는 5년 동안 48% 올랐다. 지난해 고점 대비 16.6% 빠진 도봉구 동아청솔은 5년 새 81.8% 뛰었다.
하지만 올해 부동산 시장이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면 강남이나 용산 등 수요가 몰리는 지역의 집값도 철옹성일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금리 인상과 같은 시장 위험이 커지면 대장주여도 당연히 수요가 줄 수밖에 없다"며 "서초구처럼 특수한 수요가 몰리는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대장주는 당분간 조정을 겪겠지만, 시장 회복시에는 다른 단지보다 회복이 빠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대출 규제가 완화되거나 취득세가 줄지 않는 이상 내년 1분기까지는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직방 관계자는 “금리 인상과 같은 대외 여건들로 인해 아파트 가격 하락과 거래량 감소가 발생하는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며 “상승 거래만큼은 아니지만 하락 거래량 또한 같이 줄어들고 있는 점을 보면 주택 보유자들이 시장 상황을 관망하는 경향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2~3년 간 부동산 시장이 조정에 들어갈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한 교수는 "정부의 대책으로 기술적 반등은 있을 수 있으나 단기에 그칠 것이고 향후 2~3년간 조정을 받을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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