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공유자 달라진 경우 관습법적 법정 지상권 불인정…“부당 이득 반환 소송으로 따져야”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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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같았지만 증여나 매매 등의 이유로 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땅 주인이 허락하지 않아도 건물 소유주가 건물을 계속 쓸 수 있을까. ‘법정 지상권’이 인정된다면 가능하다.

토지와 건물이 동일인에게 속했다가 그중 어느 하나가 소유자를 달리하게 되면 건물주에게는 건물을 위한 토지 사용권인 법정 지상권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법정 지상권이 인정된다면 토지 소유자는 건물 소유자에게 철거를 명령할 수 없고 그 대신 토지 사용의 대가로 지료를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법정 지상권이 언제나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은 공동 소유 토지 위에 공유 건물이 있는 상황에서 증여 또는 매매로 건물의 일부 공유자가 변경됐다면 새 공유자에게는 관습법상 법정 지상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대법원이 이처럼 판단한 근거는 무엇일까.

공유 토지 위 건물 소유자 변경


A 씨는 1991년부터 조부 B 씨와 서울 종로구 소재 76㎡ 토지와 그 위에 세워진 단층 주택 건물을 절반씩 나눠 보유해 왔다. 그러다 A 씨는 2005년 6월 자신의 건물 50% 지분을 숙부인 C 씨에게 증여했다. 토지의 공유자와 건물의 공유자가 처음으로 달라진 것이다. 이제 토지는 A 씨와 B 씨가 절반씩, 건물은 B 씨와 C 씨가 절반씩 갖게 됐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2006년 11월 B 씨는 D 재단에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건물 50% 지분을 증여했다. B 씨와 C 씨였던 건물 공유자가 C 씨와 D 재단으로 바뀐 것이다. 이후 B 씨의 사망으로 B 씨가 보유하고 있던 토지 50% 지분은 2012년 10월 C 씨에게 상속됐다. 2013년 4월 C 씨는 이 토지 지분을 D 재단에 증여했다. 결과적으로 토지는 A 씨와 D 재단이 절반씩, 건물은 C 씨와 D 재단이 절반씩 갖게 됐다.

A 씨는 C 씨와 D 재단이 관습법상 법정 지상권을 취득했다고 보고 이들을 상대로 지료를 달라고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동안 대법원은 토지와 그 지상 건물이 동일인에게 속했다가 매매 등 기타 원인으로 각각 그 소유자가 달라진 경우 그 건물을 철거한다는 특약이 없었다면 법정 지상권을 인정해 왔다.

1심은 A 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고 2심은 A 씨가 주장한 지연 손해금 일부만 기각했을 뿐 C 씨와 D 재단이 지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토지와 건물 모두 A 씨와 B 씨가 공유하고 있다가 이후 달라진 경우여서 관습법상 법정 지상권의 성립 요건이 충족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지료 청구가 권리 남용이라거나 지료채권 포기약정이 있었다는 등의 피고 측의 주장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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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법정 지상권 인정 못 해”


하지만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2022년 8월 말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공유 토지 위에 공유 건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토지와 건물의 일부 공유자가 달라진 경우 관습법적 법정 지상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토지 및 건물 모두 각각 공유되는 경우 토지 및 건물 공유자 중 1명이 건물 지분만을 증여해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진 경우를 예로 들었다. 대법원은 “이 경우에도 토지 전부에 대해 법정 지상권이 성립한 것으로 본다면 토지 공유자 1명이 다른 공유자 지분에 대해서까지 지상권 설정의 처분 행위를 허용하는 셈이 돼 부당하다”고 했다.

이 같은 법리에 따라 대법원은 C 씨에게 법정 지상권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 사건 토지 및 건물 공유자 중 1인인 원고(A 씨)가 피고(C 씨)에게 건물 공유 지분을 이전해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졌다고 해서 피고에게 이 사건 토지에 관한 관습법상 법정 지상권의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A 씨가 C 씨에게 건물을 증여했다는 이유로 D 재단이 가진 토지 지분에 대해서까지 지상권 설정을 C 씨에게 허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D 재단의 법정 지상권도 인정하지 않았다. D 재단이 건물 공유 지분을 이전받았을 때 토지와 건물이 이미 동일인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전 당시 토지는 A 씨와 B 씨가 2분의 1씩, 건물은 C 씨와 B 씨가 2분의 1씩 갖고 있었다.

대법원은 “피고들에게 이 사건 토지에 관한 관습법상 법정 지상권이 성립했음을 전제로 지료 지급을 명한 원심 판단에는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파기 환송했다.

B 씨와 D 재단은 A 씨 소유의 토지에서 합당한 권리 없이 건물을 위해 토지를 이용한 것이 됐다. A 씨가 대가를 받는 것은 합당하다는 의미다. 다만 법적으로 건물을 철거하라고 청구할 수는 있지만 D 재단이 토지와 건물의 지분을 절반씩 갖고 있어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관계자는 “A 씨로서는 대가를 받고 싶다면 부당 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A 씨는 관습법적 법정 지상권에 따른 토지 사용료를 달라고 했으니 이번 소송은 청구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돋보기]
대법 “토지·건물 소유주 달라질 때 법정 지상권 인정”


대법원은 단독 소유 토지에 공동 소유 건물이 있는 경우 토지 주인이 바뀌어도 법정 지상권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토지 소유자 E 씨가 건물 소유자인 F 씨 등을 상대로 낸 토지 인도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에 따르면 소송의 대상이 된 토지의 원주인은 토지 위에 건물을 새로 지은 후 1994년 사망했다. 토지는 배우자인 G 씨에게 단독 상속됐고 건물은 G 씨와 그 자녀들에게 공동 상속됐다. G 씨는 2010년 8월 자녀인 F 씨에게 토지를 증여했고 2012년 사망했다. 토지 위 건물은 G 씨 부부의 자녀들인 F 씨 등이 공동으로 상속받았다.

E 씨는 2014년 1월 부동산 임의 경매에서 토지를 낙찰받았다. E 씨는 토지 위 건물을 철거하고 건물 사용료 명목의 임대료를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F 씨 등은 관습법상 법정 지상권이 있으므로 철거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맞섰다.

원심은 E 씨의 청구를 인용해 F 씨가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를 인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관습법상 법정 지상권이 인정되려면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동일인이었다가 변경돼야 하는데 G 씨가 F 씨에게 이 사건 토지를 증여할 당시 토지 소유자였던 G 씨는 건물 공동 소유주였기 때문에 토지와 건물이 동일인에게 속한 상태였다고 볼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관습법상 법정 지상권이 법적 규범의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재확인하면서 건물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 경우라고 해서 관습법상 법정 지상권 인정 여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토지 소유자가 건물을 공동 소유하면서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매도한 경우에도 건물 공동 소유자들은 모두 법정 지상권을 얻는다는 1977년 대법원 판결을 유지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는 관습법상 법정 지상권을 인정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재형 대법관은 “우리 사회에는 실제로 법정 지상권에 관한 관습이 존재하지 않았다”며 “관습법상 법정 지상권을 인정하는 것은 당사자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고 토지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고 거래의 안전과 법적 안정성을 해치며 거래 비용을 증가시켜 사회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린다”고 소수 의견을 냈다.


최한종 한국경제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