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 구찌도 ‘서울쇼’에 공들여 …한국인의 브랜드 이미지가 아시아 시장 성패 좌우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의 국내 직진출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진=최수진 기자)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의 국내 직진출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진=최수진 기자)
최근 패션업계에서는 가장 관심을 끄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는 슈프림이다. 전 세계 6개국에만 진출한 슈프림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것인지 관심을 끌고 있다. 슈프림이 지난 9월 특허청에 상표권을 출원하자 직진출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에 첫 매장을 낼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슈프림의 직진출은 최근 패션업계의 흐름과 맥이 같이한다. 지난 2년간 글로벌 브랜드들은 줄줄이 한국에서 직접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 패션 대기업을 통해 파는 것을 중단한 브랜드는 로에베·몽클레르·에트로 등이다. 프랑스 하이엔드 브랜드 셀린느도 직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들은 앞다퉈 서울에 새로운 매장을 열고 한국에서 패션쇼까지 준비 중이다. 명품 브랜드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한국인과 앰배서더 형태로 협업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커지자 패션업계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이 중국은 물론 글로벌 사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울은 관광 도시로는 설명할 수 없는 패션의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아직 6개국만 진출한 슈프림10월 27일 업계에 따르면 슈프림의 상표권 출원에 대해 특허청은 지난 9월 공고 결정을 내렸다. 슈프림 뉴욕 본사인 챕터4가 한국의 특허 법인을 통해 2018년 출원한 데 대한 결정이다.

통상 상표권은 업체가 출원 신청을 하면 공고 단계를 거쳐 최종 등록된다. ‘공고’는 출원 거절의 이유가 없을 때 해당하고 공고일로부터 2개월간 이의 신청이 없으면 등록이 결정된다. 업체가 상표권 등록료를 납부하면 마무리된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슈프림의 상표권 등록은 오는 11월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슈프림은 수요에 비해 부족한 공급으로 샤넬·나이키 등과 함께 리셀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브랜드 중 하나다.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전략으로 ‘희소성’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명품 업체들은 슈프림에 협업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슈프림이 적극적으로 글로벌 사업을 확장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1994년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된 브랜드로, 28년이 지났지만 매장이 있는 국가는 미국·영국·일본·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 6곳에 불과하다. 내년 상반기 중에 슈프림이 직진출해 서울에 정식 매장을 만든다면 한국이 일곱째 국가가 된다.

슈프림 외에도 해외 패션 업체의 직진출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셀린느가 신세계인터내셔날과의 수입 판권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2년 신세계인터내셔날과 계약한 지 10년 만의 직진출 전환으로, 최근 셀린느코리아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본격적인 사업은 내년 1월부터 시작한다.
이에 앞서 이탈리아 하이엔드 브랜드 몽클레르도 직진출을 택했다.

스페인 하이엔드 브랜드 로에베는 지난해 6월 코오롱FnC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로에베코리아 유한회사를 설립한 뒤 자체 운영을 통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로에베는 2016년부터 6년간 코오롱FnC가 한국에서 사업을 전개해 왔다.

또 다른 이탈리아 브랜드 에트로는 27년간 인연을 이어 온 한국 수입·유통 업체 듀오와의 계약을 끝내고 지난해 1월 에트로코리아를 통해 한국 시장에 직진출했다. 이 밖에 골프웨어 브랜드 캘러웨이 어패럴이 한국 직진출을 택하고 지난해부터 자체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슈프림도 온다고?’ 서울로 향하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
한국 인플루언서와의 협업 활발주목할 것은 이들 브랜드가 ‘실패 가능성’에도 한국 대기업과의 안정적인 판권 계약 대신 ‘직진출’을 택했다는 점이다.

실패 사례도 꽤 있다.
이랜드와의 계약을 끝내고 2008년 한국법인을 세운 푸마가 대표적인 직진출 실패 브랜드로 언급된다. 푸마는 당시 연간 기준 2000억원대의 매출을 유지해 왔지만 직진출 전환 이후 실적이 크게 악화되면서 1000억원대로 내려앉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등록된 푸마코리아의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1495억원에 그쳤다.

뉴욕 하이엔드 브랜드 코치는 2012년 신세계인터내셔날과의 계약 종료 후 한국법인 ‘코우치코리아리미티드’를 설립했지만 직진출 직전 700억원대의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최근까지도 당시 매출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코우치코리아의 매출(2021년 7월~2022년 6월)은 655억원 수준이다.

이 밖에 지방시·돌체앤가바나 등이 직진출 이후 매출이 줄었고 골든구스와 롱샴 역시 고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망·마케팅·가격 정책 등 현지화에 필요한 다양한 요인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해 직진출 전략이 성공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 전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가 약화된 것이 영향을 미친 사례도 있다.

이런 실패 사례가 많은 브랜드의 직진출을 막지 못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고전할 수 있지만 한국 시장에서 확보한 이미지가 아시아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한국 시장이 갈수록 중요해지면서 직진출을 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그리고 서울은 패션 브랜드에 아시아에서 상징적 도시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패션 브랜드들이 중요 이벤트를 서울에서 잇달아 개최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은 지난 5월 서울 이화여대에서 ‘2022 가을 여성 컬렉션 패션쇼’를 개최했다. 디올이 한국에서 패션쇼를 연 것은 2007년(60주년 기념 아시아 퍼시픽 패션쇼) 이후 15년 만이다. 이날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디올 수석 디자이너는 이대 ‘과잠’을 입고 런웨이에 서기도 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서울 경복궁에서 알레산드로 미켈레 구찌 수석 디자이너의 ‘구찌 코스모고니’ 패션쇼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취소했다. 당초 구찌는 국내외 500여 명을 초청해 행사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이태원 참사로 300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발생하면서 패션쇼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형태의 매장도 여러 곳에 들어섰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은 올 초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했고 골프웨어 브랜드 지포어는 지난해 글로벌 최초로 서울 강남구에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또한 나이키(서울 마포구), 룰루레몬(서울 용산구), 딥디크(서울 신사동) 등이 지속적으로 서울에 매장을 오픈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과 서울에 대한 관심은 한국인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가 한국인을 앰배서더로 채택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특히 과거와 달라진 점은 한국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코리아 앰배서더’가 아닌 전 전 세계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앰배서더’로 협업한다. 이는 K-컬처가 글로벌 시장에서 확보한 영향력 덕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에는 배우 이정재·정호연·이유미 씨 등과 가수 BTS·슬기(레드벨벳) 등이 브랜드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발탁됐고 올해 가수 지수(블랙핑크)·에스파·엔믹스·아이유, 배우 한소희·수지·전지현 씨, 래퍼 쌈디 씨 등이 글로벌 앰배서더로 선정돼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앰배서더로 기용한다”며 “이는 한국인이 한국 시장에서 브랜드를 알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인지도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그런 의미에서 전 세계에서 K-콘텐츠의 영향력이 높아진 결과라는 설명이다.

패션업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커지는 시장 규모와도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명품 시장은 3495억 달러(약 501조원)인데, 이 가운데 한국 시장은 141억 달러(약 20조원)를 기록하며 전 세계 7위를 차지했다. 전년 대비 시장 규모는 약 5% 확대됐다.

브랜드 개별 매출도 증가 추세다. 서울에서 패션쇼를 개최한 크리스챤디올꾸뛰르코리아(디올)는 지난해 매출 6138억원, 영업이익 211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86.8%, 영업이익은 102.01% 급증했다. 구찌코리아는 한국에서 정확한 매출과 영업이익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구찌 역시 지난해 실적이 크게 좋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주요 유통 업체 매출 동향’ 자료에서도 올해 백화점 해외 유명 브랜드 품목의 전년 동월 대비 매출 증가율은 1월 46.5%, 2월 32.5%, 3월 21.1%, 4월 22.5%, 5월 23.6%, 6월 19.7%, 7월 29.1%, 8월 26.4% 등을 기록했다.

소비도 늘고 있다. 통계청의 ‘2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계 지출은 350만8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0% 증가했다. 특히 의류·신발에 대한 지출은 지난해 2분기 12만9000원에서 올해 2분기 14만5000원으로 12.5% 증가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 등이 서울로 오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 등이 서울로 오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일본은 성숙 시장·중국은 느린 시장전문가들은 한국에 대한 패션업계의 긍정적인 평가가 직진출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패션문화협회장, 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장 등을 지낸 간호섭 패션디렉터 겸 의상학 박사는 “패션업계의 많은 외국 지인들이 코로나19 엔데믹(주기적 유행) 상황에서 서울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며 “가고 싶고 재방문 의사가 있다는 것은 단순히 관광 도시의 기능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이어 “아시아로 국한한다면 일본은 이미 명품 소비에 성숙된 시장이고 중국은 시장 규모는 크지만 감도 있는 제품에 대해서는 반응이 느리다”며 “반면 한국은 명품 소비에 대해 익숙하면서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쉽게 말해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하기에 적격이다. 여기에는 사회 전반에 깊숙이 침투한 정보기술(IT) 네트워크 기술도 빼놓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서울은 세계의 그 어느 도시보다 빠른 결과를 볼 수 있는 도시”라며 “K-코어의 법칙이라고도 할 수 있다. K-팝·K-무비·K-푸드 등 점점 K-코리아의 코어 중심이 커지고 있다. 영향력의 확대가 문화적 자신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서울은 어떤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보이기보다는 문화적 실험이 가능한 도시”라고 진단했다.

간호섭 박사는 브랜드에서 새로운 이벤트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도 중요한 지표라고 설명했다. 간 박사는 “쉽게 브랜드를 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현지화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며 “2007년 펜디가 중국의 만리장성에서 펼친 패션쇼가 대표적인 예다. 이를 계기로 펜디는 중국의 역사성을 존중하는 명품 브랜드로 인식됐고 중국도 모조품 생산국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떠오르는 신흥 명품 소비국으로 거듭 태어났다. 한국의 젊음을 상징하는 대학 그리고 전통을 간직한 궁궐 모두 탁월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앰배서더 채택 역시 문화적 영향력을 고려한 결과라고 말했다. 간호섭 박사는 “브랜드의 앰배서더는 광고 모델과 다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며 “전문 패션 모델보다는 문화적 영향력이 큰 아티스트들을 선정한다. 예를 들어 루이비통의 정호연 씨는 모델로 앰배서더에 선정된 게 아니라 ‘오징어 게임’에 출연한 여배우이기에 가능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포함해 실시간 대중 매체에 노출되는 그들이기에 일상 속에서 보여지는 패션이 더 리얼하고 파급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브랜드의 직진출에 대해서는 “대기업이 가진 유통망과 인력 고용의 노하우를 잘 배운 덕”이라며 “명품 브랜드가 그 노하우를 배우는 사이 한국 소비자들 또한 다양한 명품 브랜드를 접하면서 대중적인 명품 브랜드가 아닌 독창적인 명품 브랜드들을 소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고 한국 시장이 성장했다”고 말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서울이라는 브랜드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단계”라며 “기본적으로 명품들이 서울과 대한민국에 관심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한류의 영향”이라고 평가했다.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도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결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얘기다. 그는 “전 세계 문화 콘텐츠를 리딩하는 사람들이 ‘서울’이라는 도시에 모여 있으니 패션업계도 서울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외국인들이나 외신 기자들을 만나면 서울에 대해 버라이어티하다고 평가한다”며 “모든 것들이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아시아권의 대표 문화를 생각할 때 중국이나 일본을 떠올렸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아시아권의 문화가 한국으로 이전되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세계인들의 관심이 한국과 서울로 향함에 따라 중국이나 일본이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라고 서 교수는 덧붙였다.

이처럼 서울이 세계 패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한국인들의 기질과 맞닿아 있다는 게 서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유행에도 발 빠르게 대처하는 기질이 있다”며 “또 다른 특징은 기존 트렌드를 새롭게 만들어 낼 줄 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특징 때문에 한국과 서울의 유행이 전 세계인들에게 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 그는 “세계적인 패션 도시는 파리·밀라노·뉴욕 등이지만 앞으로 서울은 아시아의 대표적 도시로 더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