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1번점’·‘명품’ 앞세워 매년 고성장…이대로라면 내년엔 롯데 추월 가능성 ‘솔솔’
[비즈니스 포커스]신세계백화점(이하 신세계)은 한국 백화점의 ‘선발 주자’다. 삼성은 1963년 한국 최초의 백화점인 동화백화점(현 신세계 명동점)을 인수했다. 그리고 상호를 신세계로 변경하며 한국 백화점의 역사를 다시 썼다. 재래 시장과 생계형 소매점이 전부였던 한국 유통 시장에 등장한 신세계는 다양한 상품을 한데 모아 놓은 대형 백화점을 앞세워 유통의 물줄기를 바꿨다. 매장은 연일 소비자들로 붐볐다. 그리고 신세계는 백화점의 ‘대명사’가 됐다. 이후 신세계는 한국 최초로 백화점 직영 체제를 구축하며 점포 수를 하나둘 늘렸다. 그 결과 1980년까지 신세계는 백화점업계 순위 1위를 이어 갔다.
하지만 신세계는 그 자리를 계속 지켜내지 못했다. 롯데백화점(이하 롯데)의 등장 때문이다. 식품업계 최강자였던 롯데의 백화점 진출은 신세계의 단단했던 입지를 빠르게 무너뜨렸다. 롯데는 신세계 명동점 인근에 더 크고 화려한 롯데백화점 소공점을 1979년 오픈했다. 영업 첫해인 1980년 롯데는 백화점 매출 454억원을 기록하며 단숨에 신세계를 꺾고 업계 정상에 올랐다. 이후 롯데는 지금까지도 백화점 1위 자리를 이어 가고 있다.
롯데가 고수해 왔던 백화점업계 1위가 내년에는 뒤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백화점 3사(롯데·신세계·현대)의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이 같은 예상이 힘을 받고 있다.
성장세가 근거다. 신세계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약 1조8200억원이다. 아직 롯데(약 2조3400억원)에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성장세는 압도적이다. 백화점 3사 가운데 가장 높은 31.93%(전년 동기 대비)의 매출 성장률을 올렸다. 반면 롯데는 매출이 1.73% 성장하는데 그쳤다.
이런 모양새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면 내년 말에는 신세계의 전체 매출이 근소하게 롯데를 앞지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롯데에 빼앗긴 백화점 왕좌신세계가 롯데를 앞지른다면 1979년 이후 처음으로 1위 자리를 탈환하게 된다. 40년 만에 백화점업계 순위 1위가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신세계 내부에서도 “내년에는 오랜 숙원이었던 1위 탈환을 반드시 이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신세계의 백화점의 점포 수는 13개다. 롯데(30개)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세계가 롯데의 백화점 1위 자리를 위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신세계가 롯데를 위협하게 된 핵심 요인은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의 ‘지역 1번점 전략’이 빛을 발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 총괄사장은 2015년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에 올랐다. 이후 굵직한 투자를 이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 1번점’ 전략이다. 이 전략은 백화점을 단순히 쇼핑만 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한 지역의 ‘랜드마크’로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백화점에 전국의 유명 맛집들을 유치하고 미술품과 공연 등 각종 전시회 등을 진행해 고객들이 쇼핑 이외에도 다양한 목적을 갖고 매장을 찾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고객이 많이 찾으면 찾을수록 백화점 매출도 늘어난다는 구상이다.
이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선 일단 백화점 면적이 넓어야 한다. 그래서 정 총괄사장은 2016년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창사 이후 최대 규모인 2조원을 투자해 기존 백화점 리뉴얼과 신규점 오픈을 단행한 것이다.
이때만 해도 주요 백화점들의 실적이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특히 온라인 쇼핑의 규모가 빠르게 커지면서 ‘백화점의 시대는 끝났다’는 암울한 전망이 힘을 얻을 때다. 신세계가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과감한 역발상 투자 계획을 발표하자 시장에서는 우려를 쏟아냈다.빛 발한 ‘지역 1번점’ 전략하지만 신세계는 뜻을 굽히지 않고 계획대로 투자를 진행했다. 온라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오프라인 점포의 강점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것이 신세계의 판단이었다.
그렇게 신세계는 2016년부터 강남점과 부산 센텀시티점 리뉴얼·증축, 대구·대전 신세계 오픈 등을 주도했다.
전략은 적중했다. 강남점만 보더라도 백화점의 면적을 넓히는 작업을 통해 더 많은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강남점은 유명 맛집을 한데 모아 놓은 ‘파미에 스테이션’의 문을 열고 고객들이 백화점을 찾아 ‘맛집 쇼핑’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강남점은 여의도 현대백화점의 ‘더 현대 서울’이 2021년 오픈하기 전까지 서울에서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었다.
현재 신세계 강남점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백화점 중 하나로 도약했다. 신세계 강남점은 리뉴얼을 마친 2019년부터 3년 연속 연매출 2조원 돌파를 이어 가고 있다. 올해도 매출 2조원 돌파가 유력해 보인다. 이대로라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계 1등 매출 백화점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유서 깊은 프랑스의 갤러리라파예트, 영국의 해롯백화점도 신세계 강남점보다 매출이 떨어진다.
2016년 12월 문을 연 대구 신세계와 2021년 8월 대전에 최대 규모로 오픈한 대전 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Art & Science)도 지역 최대 규모로 문을 열어 성공한 케이스다.
대구 신세계는 2021년 11월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오픈 4년 11개월 만이다. 종전에 현대백화점 판교점이 세운 최단기간 1조 클럽 가입 기록(5년 4개월)을 5개월이나 단축했다. 넓은 영업 면적을 활용해 아쿠아리움·갤러리 등 차별화된 문화·예술 콘텐츠를 앞세워 관광 명소로서의 기능을 더한 것이 주효했다.
대전 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도 비슷한 전략을 펼쳤다. 개장 1년 만에 2400만 명이 다녀간 랜드마크가 됐다. 이 백화점은 다양한 볼거리를 앞세워 지난해 단숨에 매출 8000억원을 올렸다. 이 같은 추세라면 대구 신세계의 최단기간 매출 1조원 달성 기록을 앞당길 것으로 예측된다.
고급화 전략도 빼놓을 수 없다. 신세계는 3대 명품인 이른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를 모두 유치한 점포가 4개(본점·강남점·센텀시티점·대구신세계)나 된다. 백화점 3사 중 가장 많다. 백화점 실적 개선의 핵심 중 하나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명품 보상 소비가 지목되는 만큼 신세계가 경쟁사 대비 수혜가 컸다. 이 역시 오랜 기간 신세계가 이어 온 ‘명품 강화’ 전략 덕분에 가능했다. 신세계는 1973년 패션 국제화에 발맞추기 위해 해외 패션 기업 등과 기술 제휴하고 해외 브랜드를 처음 도입했다. 당시 낙후돼 있던 한국 의류 시장에 새로운 발전을 가져와 기성복 시대를 열었던 것이 신세계였다.
반대로 롯데는 애초부터 평범한 중산층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토종 패션 브랜드를 주로 입점시켜 왔다. 상대적으로 명품 라인업이 신세계보다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신세계가 고급 백화점 이미지가 강한 배경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명품 소비 열풍이 길어질수록 명품 라인업이 강한 신세계가 가장 큰 수혜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신세계의 매출이 롯데를 따라잡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내다봤다. 내년 백화점업계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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