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면서 미국 채권에는 큰 관심을 보였다. 베선트 장관은 매주 연설과 인터뷰 등을 통해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을 낮은 상태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선 ‘베선트 풋(Bessent Put)’이라는 말도 나왔다. 과거 ‘그린스펀 풋’(당시 미국 중앙은행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이 주식시장 하락 시 개입하던 관행에서 유래)처럼 정부가 채권 금리 상승을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한다는 기대가 반영됐다는 의미다.
재정 지출과 감세까지 중첩된 정책으로 험난한 길이 예상됐던 미국 채권시장은 일단 금리가 잡힌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3월 4일)에서 미국 국채금리가 “아름답게 하락했다”고 콕 집어 언급했다.
◆희비 엇갈린 채권과 주식시장
새해 첫날부터 까맣게 타들어갔던 채권 개미(개인투자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 채권 금리의 기준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연초 연 5%선 가까이 치솟았다가 최근 연 4.3%대로 내려왔다. 채권 금리가 내려가면 채권 가격은 올라간다.
국내 투자자들은 3월 들어 미국 채권 매수를 늘렸다. 3월 26일 기준 채권 보관 금액은 지난 2월 말 136억8000만 달러에서 144억8000만 달러로 증가했다(한국예탁결제원).
반면 미국 주식시장은 반대 모습을 보였다. 뉴욕증시의 간판 지수 S&P500은 지난 2월 19일 사상 최고치인 6144.15포인트(종가 기준)를 기록했으나 이후 10% 하락하며 조정 국면에 진입했다. 골드만삭스, RBC캐피털마케츠, 야르데니리서치 등 주요 기관들은 S&P500 연말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S&P500 목표가를 6500에서 6200으로 낮춰 잡았고 RBC는 6600→6200, 야르데니는 7000→6400으로 내렸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2017~2021년) 땐 주식이 꾸준히 상승했지만 이번(2기)엔 그 흐름이 완전히 반대가 됐다”고 진단했다. S&P500 지수는 트럼프가 2017년 1월 첫 임기를 시작한 이후 약 1년 동안 23.7% 상승했고 전체 임기 동안 약 70% 급등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주식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사실은 의도된 것?
1월 미 국채(10년물) 급등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과 주요국 긴축재정, 중동전쟁이 맞물렸던 2023년 10월 정도의 상승폭이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진 데다 미국 내 노동시장이 완전고용 수준의 예상 밖 호조가 영향을 줬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으로 재정 지출과 감세·관세정책이 예견된 탓도 있었다. ‘대대적인 감세→세수 부족→국채 공급 증가→채권 금리 급등(채권 가격 하락)’ 공식이 적용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지난해 10월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듀케인 패밀리오피스 창업자)는 “미국 국채를 공매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향후 채권 가격이 떨어지는 데 베팅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분위기는 전환됐다. 그는 캐나다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기존에 예고한 25%보다 두 배 높은 50%로 올리겠다고 했다가 5시간여 만에 이를 철회하는 등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보이며 세계를 뒤흔들었다. 관세 부과와 유예, 취소를 거듭하는 미국의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시장의 불안은 커졌고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채권으로 투자 수요가 몰렸다. 채권 가격은 올라가고 금리는 떨어졌다는 얘기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지점장은 “트럼프 1기와 2기 정책이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진행 순서가 바뀌었다”며 “1기 때는 먼저 규제를 완화하고 법인세를 인하한 뒤 관세 카드를 썼다면 2기는 관세 폭탄부터 터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가가 요동치고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자금이 미 국채로 몰리는 상황이다. 의도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달라진 상황
‘연 2.4%.’ (트럼프 1기 미 국채 10년물 평균 금리)
‘연 4.3%.’ (트럼프 2기 미 국채 10년물 3월 25 금리)
8년 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2%대의 채권 금리를 경험했다면 2기는 약 두 배 정도 높은 4%대의 금리를 맞닥뜨렸다. 다른 행정부와 비교해도 2기 트럼프 체제가 받아든 금리는 매우 높은 측이다. 4년 전 조 바이든 행정부는 1%대였고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대였다.
국채금리 상승은 정부의 이자 지급 부담을 늘리는 요인이다. 특히나 올해는 만기가 도래하는 약 9조 달러의 국채 중 70%가 6월 안에 종료된다. 미 국채가 높은 상황을 유지하면 채권을 롤오버(만기 연장)할 때 더 높은 금리를 받아들이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미국은 어마어마한 부채와 이자 부담을 지고 있다.
올해 2월 기준 연방정부 부채는 36조2000억 달러다(미국 재무부). 지난해 7월 35조 달러를 돌파한지 반년 만에 1조 달러 넘게 더 늘었다. 코로나19로 돈이 풀리고 인플레이션 감축법(2022년)을 통해 제공된 세금공제 수요도 예상보다 많아 재정적자가 확대됐다. 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도 이 기간 2배 이상 뛰었다. 올해 2월 기준 연방정부의 누적 부채 평균 이자율은 연 3.28%다. 연간 이자 부담은 1조1580억 달러(2024년 9월 기준)로 지난해 국방예산(8860억 달러)을 넘어섰다. 트럼프 행정부가 채권 금리가 높아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배경이다.
“월스트리트보다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가 중요하다”는 베선트 장관의 태도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스탠스를 엿볼 수 있다. 미 국채 금리는 실물경제와도 강하게 연동된다. 미국 은행들이나 금융회사들은 미 국채 10년물을 기준으로 모든 금리를 결정한다. 국채 금리가 하락하면 그만큼 미국인들의 이자 부담이 덜어진다. 실제 연초 7%선 위로 치솟았던 주택담보대출 금리(30년 만기 고정)는 최근 6.85%로 소폭 하락했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은 “그럼에도 오랜 세월 연 2~3%대 모기지 금리에 익숙했던 미국인들에게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박 PB지점장은 “당장은 미 국채금리가 떨어진다고 해도 결국 트럼프 정책들이 실현된다면 미국으로 자금이 모이고 경제성장률도 더 올라갈 확률도 있다. 미 국채를 샀던 큰손들도 수요를 줄이고 있어 장기적으로 미 국채(10년물) 금리가 드라마틱하게 떨어지기는 힘들다”며 “채권 투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바닥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투자자 시각에 따라 시기의 차이는 약간 있겠지만 최근 미국 주식 조정이 있던 만큼 이제는 주식 비중을 조금씩 늘리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